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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히가시노 게이고 <그녀는 다 계획이 있다> 화려함 너머의 외로움과 현실을 마주하는 이야기

by handrami 2025. 5. 23.

화려한 겉모습 뒤에 숨겨진 인간 본연의 어두운 면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비극을 미스터리 형식을 빌려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다 계획이 있다'는 표현처럼, 등장인물 각자가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계획을 품고 사건에 얽혀 들어가는 모습이 흥미롭게 그려집니다.

 

인간의 욕망, 특히 부와 성공에 대한 끝없는 욕망이 어떻게 사람을 파멸로 이끌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그녀는 다 계획이 있다' 책표지 편집한 이미지
Copyright ⓒ 1988 Keigo Higashino / 2021년 / 역: 양윤옥 / 출판사: 하빌리스

작품소개

목차

  • 1장 그녀는 다 계획이 있다
  • 2장 삼류 소설 같은 죽음
  • 3장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렸다
  • 4장 합동 작전을 펼치자
  • 5장 중요한 할 얘기가 있어
  • 6장 두 남자의 궤적
  • 7장 너와 함께 비틀스를
  • 8장 페이퍼백 라이터
  • 9장 윙크로 건배

 

교코의 꿈 : 컴패니언 살인사건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에서 1988년에 출간된 작품으로 한국에서는 2021그녀는 다 계획이 있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영화의 쇼윈도 장면 이미지
티파니에서 아침을 영화의 오드리헵번 이미지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작품을 쓰면서 오드리 헵번의 1961년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식했다고 합니다.

오래전, 젊은 시절에 보았던 그 영화는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도 제목만 들어도 자연스럽게 오드리 헵번의 얼굴과 영화의 분위기가 떠오릅니다.

그만큼 제게도 깊이 각인되어 있었던 작품이었나 봅니다.

 

문득, 그때 느꼈던 감성을 요즘의 젊은 세대도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소설의 시작 부분, 교코가 보석 가게 쇼윈도 앞에서 신분 상승을 꿈꾸는 장면이나,

교코의 옆집으로 형사 시바타가 이사 오고, 차임벨을 누르며 전화선이 아직 연결되지 않았다며 잠깐만 전화를 빌려달라고 하는 장면 등은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인상적인 장면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소설 속에 녹아든 것을 보면, 히가시노 게이고가 그 영화의 장면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은 교코와 행사가 끝나고 마지막에 방문을 걸고 함께 나왔던 에리가 그 방에서 시체로 발견되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우연히 교코의 옆집으로 이사 온 형사 시바타로 인하여 교코는 자연스럽게 사건에 개입하게 됩니다.

 

소설 속 교코의 직업 '컴패니언'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 때 행사 안내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접객 매너와 어학 능력이 뛰어난 고급 인력을 별도의 교육을 받아 이른바 컴패니언으로 나섰다.
1980년대에 거품 경제의 광풍을 타고 국제적 행사는 물론 사업 부양을 위한 파티가 많아지면서 컴패니언은 여성들 사이 인기 있는 직업으로 커졌다. -역자 후기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일부 컴패니언 직업은 레이싱 모델, 행사 도우미, 파티 모델과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일본에서 컴패니언이라는 직업은 훨씬 더 복합적이고, 사회적으로도 미묘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접대 여성이나 유흥업소 종사자와 혼동되는 경우가 많았고, 실제로 유사 업계와 연결된 사례도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사회적 인식은 낮았고, ‘몸을 파는 것은 아니지만 경계가 애매한위치에 놓인 직업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소설이나 영화에서 컴패니언 캐릭터는 종종 겉은 세련되고 자유로운 듯하지만, 내면에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홀리처럼, 소설 속 쿄코 역시 자신을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연출하지만, 실제론 신분 상승을 위한 계산된 삶, 그리고 사회적 제약과 과거의 그림자에 여전히 얽매여 있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1988년 작품이다 보니, 소설 속에는 이제는 잊혀져가는 물건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합니다.

비디오 플레이어, CD플레이어, 카세트테이프 등, 익숙하면서도 정겨운 그 시절의 풍경들이 하나둘 떠오릅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듣던 그때의 감성도 함께 떠오릅니다.

 

이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으로, 가볍게 읽기에도 부담 없는 소설입니다.

이야기는 순차적으로 의문이 풀리며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전개되어, 마지막까지 흥미를 놓치지 않게 합니다.

 

소설은 교코의 "일자리나 알아보러 갈래요."라고 말하는 장면과 시바타가 슬쩍 팔을 벌리며 그 팔을 잡는 교코의 모습으로 끝을 맺습니다.

 

주인공 교코의 마지막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작은 안도감을 안겨줍니다.

그들의 세계를 동경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꿋꿋이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작고 조용한 위로처럼 느껴집니다.

 

 

▶ 히가시노 게이고의 데뷔작 『방과후』 리뷰보기

 

그녀는 다 계획이 있다는 이런 독자에게 추천합니다.

  •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을 경험해 보고 싶은 분
  • 1980~90년대 일본의 분위기와 문화에 관심 있는 분
  • 여성 인물의 심리와 현실적 갈등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
  • 가벼우면서도 여운 있는 작품을 찾는 분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교적 이른 시기의 작품이지만,

그 안에는 이미 그의 특유의 섬세한 시선과 사회적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1980년대 일본 사회의 공기 속에서, 자유로운 삶을 꿈꾸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힌 한 여성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외로움과 희망을 함께 마주하게 됩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홀리를 떠올리게 하는 주인공 쿄코는 화려함 뒤에 감춰진 고독을 안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타협하려 애쓰는 인물입니다.

 

카세트테이프와 비디오, CD플레이어가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그리운 시절의 흔적 속에서,

독자는 소소한 향수와 함께 삶의 씁쓸함, 그리고 작지만 단단한 희망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소란스럽지 않지만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

지금 이 순간, 잊고 있던 감정을 조용히 꺼내고 싶다면 이 소설을 펼쳐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