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90 아야츠지 유키토 『십각관의 살인』 40년이 흘러도 반드시 '소설'로 읽어야 하는 이유 “덫은 열 개의 등변과 내각을 가지고 있다.”크리스티를 향한 오만한 도전장, 사후(死後)의 회고에서 살인의 선언으로이 소설의 프롤로그는 미스터리 문학의 고전,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강렬하게 소환하며 시작됩니다. 하지만 아야츠지 유키토가 던진 유리병은 크리스티의 그것과 그 궤를 달리합니다.사후의 기록 vs 살아있는 예고장크리스티의 유리병이 모든 살인이 끝난 뒤 남겨진 '박제된 해설지'였다면, 십각관의 유리병은 이제 막 피의 잔치가 시작될 것임을 알리는 '살아있는 예고장'입니다.심판 vs 지적 유희《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범인이 사법적 정의라는 명분에 집착했다면, 십각관의 진범은 도덕적 위선을 벗어던집니다. 그는 살인을 하나의 정교한 예술이자 완벽한 트릭으로 간주하며, 자신의 설계력.. 2026. 4. 22. 도진기 『4의 재판』 법이라는 이름의 정교한 기만 법은 당신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는다 현직 판사 출신 작가 도진기는 대한민국 형사사법 시스템의 허점과 법의 논리 뒤에 숨은 비정함을 날카롭게 파고듭니다. 이 소설은 단순히 범인을 찾는 미스터리를 넘어, '소외된 피해자의 울분'이 시스템에 의해 묵살당할 때 어떤 비극이 발생하는지를 정면으로 다룹니다.법의 민낯: '정의'가 아닌 '논리'의 세계판사가 진실을 직감하더라도 '증거주의'와 '절차'라는 쇠사슬에 묶여 눈을 감아야만 하는 사법부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4’의 중의적 의미제목의 '4'는 죽음(死)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재판의 3요소(판사, 검사, 변호사)에서 철저히 소외된 ‘제4의 인물(피해자)’을 의미하는 장치입니다.시스템의 경고법이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제3자로 밀어낼 때, 사회는 .. 2026. 4. 9. 피터 스완슨 『살려 마땅한 사람들』 예열만 30분, 폭주하는 노후 경유차의 섬뜩한 반격 당신은 정말 살려 마땅한 사람입니까?피터 스완슨의 전작 『죽여 마땅한 사람들』과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이 시작과 동시에 시속 200km로 내달리는 스포츠카였다면, 이번 신작은 솔직히 말해 '예열만 30분이 걸리는 낡은 경유차' 같았습니다. 이 소설은 '1부: 살인을 저지를 나이', '2부: 세 번째 인물', '3부: 더러운 일'로 나뉩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인물의 시점을 교차시키지만, 초반 전개는 지나치게 느릿하고 불친절합니다. 헨리 킴볼의 교사 시절 트라우마와 조앤의 과거사가 얽히는 과정은 밀도가 낮아 지루함마저 느껴질 정도입니다. 작가는 거대한 음모를 암시하지만, 독자의 갈증을 해소해주기보다 방치하는 쪽을 택합니다. 만약 이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책을 덮으려는 분이 있다면, 일단 2부까.. 2026. 4. 5. 피터 스완슨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죽음을 맞바꾼 가짜 연대, 그 비릿한 끝 제목만 보고 여덟 편의 단편소설을 생각하며 가볍게 들었다가, 고전 추리소설의 뼈대를 처절하게 해체하는 피터 스완슨의 칼날에 당황하게 되는 작품입니다.전작 『죽여 마땅한 사람들』에 이어 이 작품 모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을 뿌리에 두고 있습니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 우연한 만남과 살인 공모를 현대적으로 계승했다면,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은 그 설정을 포함한 여러 고전들을 분석하고 해체하며 독자와 두뇌 싸움을 벌이는 작품입니다.고전의 무덤 위에 세워진 살인주인공 맬컴 커쇼가 과거 블로그에 올린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리스트'가 현실의 연쇄살인으로 재현됩니다. 이 설정은 단순한 모방 범죄를 넘어, 고전 추리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스포일러 테러'라는 양날의 검을 휘두릅니다.. 2026. 4. 1. 공지영 & 츠지 히토나리 『사랑 후에 오는 것들』 두 개의 언어로 쓰인 하나의 이별 한일 공동 집필 프로젝트이 소설은 2005년 한일 수교 40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공동 집필 프로젝트라는 점을 알고 계신가요?단순히 비슷한 이야기를 각각 쓴 것이 아니라, 공지영 작가와 츠지 히토나리 작가가 서로의 원고를 주고받으며 이어 쓰는 독특한 방식으로 완성된 작품입니다.한국에서는 공지영 작가가 ‘홍’의 시점을, 일본에서는 츠지 히토나리 작가가 ‘준고’의 시점을 맡아 같은 시간대의 사건을 각기 다른 시선으로 풀어내며 이야기가 전개됩니다.연재와 출간, 그리고 드라마화2005년 소담출판사2024년 소담출판사 2005년 5월부터 12월까지 한국에서는 『한겨레신문』에서 ‘먼 하늘 가까운 바다’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고, 일본에서도 각기 다른 매체를 통해 연재된 이 작품은 같은 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2.. 2026. 3. 30. 가키야 미우 『70세 사망법안, 가결』 죽음이 ‘구원’이 된 시대, 우리는 존엄하게 늙고 있는가? 국가적 안락사, 판타지가 아닌 '시뮬레이션'이 된 현실2015년 출간 당시 파격적인 설정으로 화제를 모았던 가키야 미우의 소설 『70세 사망법안, 가결』이 2026년 현재, 우리에게 더욱 서늘하게 다가옵니다. 국적자라면 누구나 70세 생일 후 30일 이내에 죽어야 한다는 이 잔인한 법안은 재정 파탄에 직면한 초고령 사회의 비명을 담고 있습니다.소설이 던지는 서늘한 경고장70세 사망법안이 가결되었다.이에 따라 이 나라 국적을 지닌 사람은 누구나 70세가 되는 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반드시 죽어야 한다. 예외는 황족뿐이다.동 법안은 2년 후에 시행을 앞두고 있다. 고령화에 부수되는 국가 재정의 파탄을 해소하기 위해 만든 “70세 사망법안” 본문에 언급된 "이탈리아와 한국은 사태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라는 .. 2026. 3. 24. 이전 1 2 3 4 ··· 3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