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 Review

<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 사형제도를 둘러싼 깊이 있는 고찰

by handrami 2025. 3. 20.

「공허한 십자가」는 죽음의 정의와 진정한 속죄란 무엇인가를 묻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깊이 있는 사회파 미스터리입니다. 읽는 내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긴 정의의 이면을 되짚게 합니다.

 

이혼한 아내가 살해되었다는 경찰의 전화를 받고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가벼운 마음으로 일반적인 추리소설을 읽을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공허한 십자가 책표지 편집이미지
자음과모음 출판 이선희 옮김 2022 / 2014

"그때 이혼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이혼하지 않았다면 또 유족이 될 뻔했으니까요."

 

딸과 아내가 살인범에게 잃는다는 설정,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작품소개 및 리뷰

 

11년 전 업무 시간에 회사로 전화가 걸려왔다.

사요코는 울부짖으며 말을 토해냈다. 그러나 단지 단어를 늘어놓을 뿐, 문장을 만들지는 못했다. 지리멸렬한 단어의 나열에서 그는 어렴풋이 내용을 파악했다. 그와 동시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것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는 휴대전화를 움켜잡은 채,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딸이 죽었다.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공허한 십자가 중에서-

 

사정 청취

형사들의 질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어린아이가 변사한 경우에는 고의 또는 과실이 대부분으로, 부모가 죽인 경우는 결코 드물지 않으니까요."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공허한 십자가 중에서-

 

 

사요코가 집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영혼까지 잃어버린 사람 같았다.

그녀가 전날 사건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내용이 너무나 논리 정연해서 조금 전까지 패닉 상태에 빠져 있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말했으니까."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공허한 십자가 중에서-

 

 

 

6개월 전에 가석방된 빈집털이범에게 8살 딸을 잃었다.

나카하라 부부에게 범인이라는 증오할 만한 구체적인 대상이 밝혀진 것은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 범인에 사형 판결이 내려질 날을 기다린다는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4개월 뒤 첫 번째 공판에서 알게 된 사실에서,

범인이 8살 어린 여자아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목졸라 죽이고 나오자마자 곱빼기를 주문해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상상하니 울분이 치솟았다.

그러나 재판이 거듭되는 사이에 분위기가 미묘하게 바뀌었다. 변호인의 유도에 따라서 범인의 잔인성이 조금씩 희미해지는 것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 공허한 십자가 중에서-

 

하루카와는 재판을 할 때마다 계속 사죄와 반성의 말을 입에 담습니다.

변호인은 피고가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전 무기징역을 받을 때도 그렇게 반성했다고 합니다. 교도소에서도 반성의 기미를 보인 경우 가석방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그 반성은 누가 확인했는지 궁금합니다.

이런 자의 생명을 빼앗아봤자 아무 소용이 없지만 적어도 그 생명을 빼앗지 않으면 내 딸이 너무 불쌍하다.
-히가시노 게이고 공허한 십자가 중에서-

 

 

1심판결은 범인의 반성과 돌발적이고 충동적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여 무기징역으로 판결됩니다.

항소심의 재판과정은 추리소설 느낌이 납니다. 결과는 사형 판결이 됩니다.

변호인이 상고 했지만 범인은 모든 게 귀찮다며 상고를 취합니다.

"가엾게도 얼마나 많이 괴로웠을까? 이렇게 눈물을 많이 흘리다니. 미안해, 널 혼자 둬서 정말 미안해. 아무리 울어도 엄마가 오지 않아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히가시노 게이고 공허한 십자가 중에서-

 

가슴이 메이는 것 같았습니다.

사형이 확정되고 판결이 종결되면, 자신들의 마음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실제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달라지기는커녕 상실감만 더해질 뿐이었다. 그때까지는 범인의 사형 판결을 받는다는 목적으로 살아왔지만, 그것이 이루어진 지금 무슨 목적으로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이 잃어버린 것은 비단 딸만이 아니었다. 크고 작은 소중한 것을 수도 없이 잃어버렸다.
-히가시노 게이고 공허한 십자가 중에서-

 

서로를 보면 사랑했던 딸이 생각나서 괴롭다는 부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아픔이 되어버린 그들이 이혼한 지 5년이 지났습니다.

이혼 후 동물 장례식장을 인수해 일하는 '나카하라'에게 '사요코'의 살해사건으로 형사가 전화 합니다.

얼마 후 사요코를 살해했다고 주장하는 범인이 자수를 합니다.

그리고 범인의 사위가 피해자의 가족에게 사죄의 편지를 보냅니다.

 

"참 슬픈 일이지. 그렇게 환하게 웃는 것은 누가 사형을 받았을 때뿐이니까."
-히가시노 게이고 공허한 십자가 중에서-

 

 

사요코의 장례식장에서 '사오리'의 등장은 궁금증을 키웁니다.

사요코가 남긴 마지막 글이 실린 잡지의 내용에서 사오리가 어떻게 살아왔을지 짐작이 되었습니다.

 

피해자 참가 제도

'피해자 참가 제도'는 피해자나 유족이 재판에 참가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장례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요코'의 어머니와 만난 자리에서 피해자 참가 제도에서 증언을 부탁하며 '사요코'가 집필하던 원고를 건네받습니다.

'사형 폐지론이라는 이름의 폭격'의 제목이었다.
"사형 폐지론자의 눈에는 범죄 피해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사형 판결은 단순한 통과 점……
사형은 무력하다.

 

사요코의 원고를 보던 나카하라는 그녀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딸 재판의 상대 변호사와의 만남에서 범인은 사형 판결 후 2년쯤 지나서 사형이 집행되었다는 사실과 마지막까지 속죄의 마음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문제는 그 감정이 가끔 흔들린다는 거예요.
-히가시노 게이고 공허한 십자가 중에서-

 

작가는 자신의 심정을 소설속에서 표현하는 것 같았습니다.

 

목숨을 소중히 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녀도 알고 있다. 그런데 살아 있는 게 더 괴롭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 생명이니까 어떻게 하든 내 마음이라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의 생명은 당신 한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죽이면 사형에 처한다 _ 이 판단의 최대 장점은 그 범인은 이제 누구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교도소에 들어가도 반성하지 않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요. 그런 사람이 등에 지고 있는 십자가는 아무런 무게도 없을지 몰라요. 하지만 남편이 지금 등에 지고 있는 십자가는 그렇지 않아요. 너무나 무거워서 꼼짝도 할 수 없는, 무겁고 무거운 십자가예요."
-히가시노 게이고 공허한 십자가 중에서-

 

 

소설 속에서 교도소를 공허한 십자가로 표현하거나 살인자의 반성을 공허한 십자가라 표현하였습니다.

아마도 속죄와 뒤늦은 반성은 공허한 몸짓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즐겁게 읽기 위해 책을 들었던 사람이라면 좀 당황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주제의 무게를 느꼈습니다. 사형제도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잠시 생각했을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사형제도의 존속과 폐지

소설을 읽는 동안 계속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나라가 마지막으로 사형을 집행한 것이 1997123023명의 사형 집행이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더 이상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아 국제엠네스티는 우리나라를 '실질적 사형폐지국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사형제도가 범죄억제 효과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완전한 폐지로 진정한 인권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언론을 통해 보이는 범죄자들은 법의 심판을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내려지는 법의 심판이 너무 약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형제도가 있어야 하는지 없어져야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인간 존엄성과 범죄 억제 효과가 없다는 것에도 동의하기 힘듭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에는 피해자가 없습니다. 가해자에 집중되어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일단은 가해자 중심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형식적이든, 상징적이든 그 효과가 미미하다고 해도 누군가에게 티끌만한 두려움이라도 더 느끼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존재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설은 무거운 주제임에도 흡입력 있게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딸과 아내를 잃은 나카하라의 행동들이 너무 차분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딸과 아내를 잃은 나카하라를 통해 바라보는 사형제도

피해자의 유족이기에 사형을 지지해야 하는가라 모습을 보여줍니다.

나카하라는 사형이 과연 진정한 정의인가, 사형이 고통을 끝낼 수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사형이 형벌의 종결일 수는 있지만 상처받은 마음의 치유나 회복은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킵니다.

 

나카하라를 통해 사형제도는 복수의 제도화에 불과하다는 비판적 시선을 제시합니다.

아마도 나카하라가 사형을 옹호하는 입장을 취했다면 복수라는 이미지를 벗기가 힘들었을 겁니다.

 

결론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는 피해자의 고통을 극대화 시킨 나카하라를 통해서 진정한 회복이란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단순히 찬반의 문제가 아닌 정의란 무엇인가, 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도덕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런 분에게 추천합니다

  • 형벌과 정의에 대해 고민해보신 분
  • 단순한 추리 소설에서 벗어나 고민을 같이 해보실 분
  • 인간 심리와 도덕적 딜레마에 관심 있으신 분

▼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작품 리뷰 보기

▷ 히가시노 게이고 <숙명> 리뷰 – 엇갈린 운명과 지울 수 없는 과거

▷ 히가시노 게이고 <마력의 태동> 상처 입은 이들과 함께하는 '라플라스 시리즈' 두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