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의 정체보다는 인물의 심리와 선택에 집중하여 사건 그 자체보다는 인물의 본질을 매개로 접근합니다.
과거의 죄가 현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통해, 범죄의 여파와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보여줍니다.
작품소개
불량스러운 고등학교 2학년 3인방 원택, 필진, 선혁
선혁은 현실을 자각하며 불량스러운 이들과의 관계가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할 즈음, 동네로 야영 온 학생에게 돈을 뺏다가 그만 죽게 합니다. 그리고 9년의 시간이 흐른 후 원택의 부고를 받은 선혁은 고향으로 갑니다.
살해당한 고원택의 입에 물려있던 종이에는 그들만이 아는 이야기가 쓰여있었습니다.
9년 전 너희 삼인방이 한 짓을 이제야 갚을 때가 왔어.
소설을 읽기 시작하고 몇 시간 안 걸린 것 같습니다. 가독성이 좋습니다. 몰입도 좋았으니, 시작과 끝을 한번에 완성했을거라 생각합니다. 홍학의 자리를 추천하는 글을 보고 읽으려고 마음먹은 지가 벌써 몇 년이 흘러버렸습니다. 우연히 본 이 책이 그 소설 작가라는 것을 알고 탐색전 느낌으로 읽은 소설입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아마도 소설을 읽으며 어느 정도 예상하는 그림이 있을 겁니다.
이 소설도 그런 예상이 보입니다. 혹시나 반전이 있을까 했지만, 사실 기대하기는 힘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예상은 독자이기에 가능한 예상입니다. 사건의 흐름으로 예상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독자로서는 더 기대하게 되지만 이 소설은 거기까지였을 뿐입니다.
만약 현실에서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섬뜩하지 않을까요? 죄짓고 못살 거 같습니다.
소설은 다행히 억지스러운 반전을 넣지 않아 좋았습니다. 학창 시절 특별한 죄의식 없이 행해지는 그런 행동들을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그 행동이 가져오는 책임과 고통을 덤덤하게 서술하는 것도 독자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것 같아 괜찮았습니다.
읽고 나서 특별히 인상에 남거나 하는 부분은 없지만 그렇다고 실망한 것도 없었습니다. 다만 조금 아쉬움이 있다면 모를까….
누굴죽였을까를 읽고나서 홍학의 자리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감상 포인트
1) 시간이 죄를 희석시키는 가?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면 죄는 잊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인가?
시간이 지나 죄는 흐려지지만, 피해자의 시간은 거기서 멈췄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우연이라도, 고의가 아니었더라도, 한 사람의 삶을 끊어버린 이들은 9년이라는 시간을 무사히 건너왔을지는 모르지만, 피해자의 가족들은 그날 그 순간부터 멈춥니다. 웃을 수도, 성장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소설 속에서 9년의 시간이 나오지는 않지만 외면하고 살아왔던 시간은 결국 돌아와 그들을 무너뜨립니다.
시간은 죄를 희석하지 않았습니다. 살아 있는 자가 잊어도, 멈춘 시간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었습니다.
2) 대체 우린 누굴 죽인 걸까?
1) 표면적 의미: 직접적인 살인 대상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 죽음을 맞은 피해자를 가리킵니다.
사고였든 고의가 아니였든 결과적으로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은 사건의 피해자를 지칭합니다.
2) 심층적 의미: 자신들의 인간성
우리가 죽인 것은 피해자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살인을 저지른 순간, 그리고 그 죄를 외면하며 살아온 순간들, 그들은 자신의 양심과 인간성을 죽이며 살아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9년이라는 시간이 소설에서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사실 그 시간 그들은 인간으로서 중요한 뭔가를 포기하며 살아왔을 겁니다.
3) 확장적 의미: 피해자와 연관된 주변 가족들
그를 사랑했던 가족들의 삶을 모두 무너뜨렸습니다.
부재를 견뎌야 했던 가족들에게 9년은 끝나지 않은 시간이었고, 기억할 수밖에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살인이라는 행위는 피해자 한 사람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가족들조차 파괴해 버렸습니다.
사건 후 9년이라는 시간을 서술하지 않은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9년이라는 시간에 대해 아무런 표현도 없이 흘려버린 소설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1) 시간의 공허함과 정체성의 상실
공허한 시간과 소외된 시간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의 가족이나 가해자들이 지나온 시간 동안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9년은 그저 흐른 시간일 뿐, 아무런 일도 변화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전달하는 의도였을 수 있습니다.
2) 무의미하게 흘러간 시간에 대한 비판
시간의 무의미함에 대한 비판일 수 있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이 정체되어 있음을 상징합니다.
의도적 생략은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상황에 무력해진 상태, 또는 무감각해진 상태를 전달하려는 의도일 수 있습니다.
3) 자기합리화와 회피의 시간
가해자들에게 시간은 자기합리화를 위한 회피의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흘렀지만 무언가를 해결하거나 대면하는 대신 단순히 흘려보냄으로써 문제를 회피하는 방식으로 직면하지 않는 태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4) 잃어버린 시간이라는 상징적 메시지
짧지 않은 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과거를 돌이킬 수 없다는 상실감과 함께 과거의 잘못을 복구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음을 암시합니다.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시간도 잃어버렸음을 의미합니다.
5)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감정의 무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이는 9년이라는 시간이 가해자나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9년 전 그 시간 이후 멈춰버린 감정의 무게와 갈등이 변하지 않음을 강조합니다.
다른 이들에게는 시간이 지나면 잊히거나 덮어버릴 수도 있지만 가해자와 특히 피해자의 가족에게는 여전히 깊은 상처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을 암시하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9년은 단지 시간이 흘렀을 뿐, 그들에게 고통이나 죄책감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려는 의미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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