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 Review

<설계자들> 김언수 - 다음 생을 위한 마지막 설계

by handrami 2025. 4. 22.

하드보일드 하고 느와르 한 감성의 영화가 떠오르는 소설입니다.

간혹 등장하는 한국적 키워드를 제외하면 소설의 배경이 외국이라도 잘 어울렸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언수 작가의 '설계자들' 책 표지 직접 편집한 이미지
Copyright ⓒ 2010 김언수 출판 문학동네

작품소개

차례

  • 환대에 대하여
  • 아킬레우스의 뒤꿈치
  • 털보네 애완동물 화장장
  • 개들의 도서관
  • 캔맥주를 마시다
  • 푸주
  • 미토
  • 뜨개질하다
  • 개구리가, 개구리를, 잡아먹는다
  • 이발사
  • 왼쪽문

 

작품성을 인정받아 24개국에 번역 출간되었고, 영화 판권도 이미 10여 년 전에 팔렸지만 여러 이유로 아직은 영화화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2020년 허진호 감독 영화화가 거론되었으나 최종적으로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습니다. 진행중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주인공 '래생'은 돈을 주면 누구든 죽여주는 살인자입니다.

자신의 오랜 친구 추를 소각장에 태우며 인생이 뭔가 변하기 시작했다고 느낍니다.

2년간 변화한 것이 키우던 개와 같이 화장해주는 정도였다면 뭐가 변한 것인지 묻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냉소적이던 살인자에게 인간미라는 양념이 조금 뿌려진 상태의 변화를 말하는 듯합니다.

조금 편하게 죽여주는 행동을 했다는 것 자체가 아마도 변화이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결코 용서받을 수 있는 인물은 아닙니다.

 

선(善)의 부재(不在)

소설은 사실 선이 없습니다.

악행의 중심인물들 모두 모호하게 표현됩니다.

그저 있어선 안 될 사람들이 거기 있었을 뿐입니다.

주인공 래생의 상대들 역시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들도 단순히 악당으로 묘사되지 않고, 각자의 상처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로 표현됩니다.

그들은 설계된 존재였고 그 설계를 벗어나고자 할 때 인간적인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선택의 결핍에서 비롯된 그들의 모습에서 인간적인 상처를 보여줍니다.

 

래생(來生)

“영감님이 지어주신 제 이름, 어차피 이번 생은 글렀으니 다음 생에서나 잘해보라는 뜻이었습니까?”

 

래생은 정말 다음 생을 설계한 듯 그렇게 자신의 마지막을 직접 설계합니다.

래생의 마지막은 다른 결말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인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 예상한 결말이었습니다. 어떻게 그 결말로 이어질까가 궁금했던 부분이었습니다.

 

'미토'가 계획한 떠들썩하게 만들겠다는 계획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소설은 응징이나 통쾌함 없이 그렇게 이후의 일은 열린 결말로 마무리됩니다.

 

감상 포인트 : 산타와 함께하는 노인

산타와 노인을 생각하며 ChatGPT로 생성한 이미지
산타와 노인

마스티프 종 산타와 함께하는 노인과 래생의 이야기는 어안이 벙벙한 충격이었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궁금해 졌다.

누군가의 죽음을 계획하고 집행하는 자에게 인간성이 남아있다는 것이 이상한 건가?

노인은 래생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까?

김언수 작가는 이에 대해 직접 말하지는 않습니다.

노인은 군부 시절 장군으로 배후에서 암살 명단을 작성하던 사람이었고, 래생이 열두 살이었을 때 군복을 입고 도서관에 왔던 그를 만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알았다는 근거

  • 노인이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기에 오히려 래생을 향해 전혀 경계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합니다.
  • 누군가 자신을 처리하러 올 수 있다는 것을 모를 수 없는 사람입니다.
  • 그날의 이야기는 래생을 손님으로 받아들인 후 후계자에게 들려주는 유언처럼 느껴졌습니다.
  • 철저한 수용의 자세를 보여줌으로써 자기의 죽음을 인정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이날 래생은 잔잔한 죄책감과 존재의 균열을 느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이 노인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래생이 노인과 산타를 소각장에서 소각할 때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모습은 그들의 존재를 애도하고 해방시켜주는 역할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소설에서 이 장면은 래생이 설계자의 세계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을 키우는 역할로 볼 수 있습니다.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면서 그 안에 숨겨진 인간적인 갈등을 드러내는 장면이라 생각합니다.

 

설계자들에서 가장 충격적이면서 슬픈 장면이었습니다. 산타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래생을 바라보는…….

보통은 저 정도면 살려주고 돌아서지 않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상 깊었던 포인트 :

혼자서 글자를 깨우친 래생에게 너구리 영감은 말합니다.

"책을 읽으면 부끄럽고 두려운 삶을 살 것이다. 그래도 책을 읽을 생각이냐?"  p36

 

부끄럽고 두려운 삶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당당하게 읽겠다고 말합니다.

"눈이 내린 세상은 참 아름답지 않아요?" 미사가 창밖을 보며 물었다.
"아름답지 않느냐......" 래생이 미사의 질문을 중얼거렸다.
”온갖 더러운 것들을 5센티미터쯤 덮고 있으면 그게 아름다운 세상일까?“ 래생이 말했다.
”오빤 뭐가 그렇게 부정적이에요? 저건 그냥 눈이 내린 세상일 뿐이에요.“ 미사가 웃으며 말했다. p343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릅니다.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보는 미사의 순수함과 표면의 아름다움을 보기보다는 그 속에 숨겨진 어두운 면을 보는 냉소적이고 상처 입은 래생의 시선이 슬프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듭니다.

 

이런 독자에게 추천

  • 레이먼드 챈들러, 도스토옙스키, 마틴 스콜세지 류의 범죄 느와르를 좋아하는 사람
  • 무미건조한 도시 속 고독한 인물의 심리에 흥미가 있는 사람
  • 한국 소설에서 보기 드문 비주얼적인 스토리텔링을 기대하는 독자

 

▼ 느와르 적이고 서늘한 분위기의 작품 추천

▷ 집행관들 - 조완선 <집행은 멈추지 않는다>

 

집행관들 - 조완선 <집행은 멈추지 않는다>

역사학자 최주호에게 25년 만에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고교 동창 허동식에게서 전화가 온다.어색한 만남에서 그는 이 땅에 생존해 있는 유일한 칠일파 일제 강점기에 고등계 형사로 악명을

handram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