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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일본소설 - 그 외 작가

가키야 미우 『70세 사망법안, 가결』 죽음이 ‘구원’이 된 시대, 우리는 존엄하게 늙고 있는가?

by handrami 2026. 3. 24.

국가적 안락사, 판타지가 아닌 '시뮬레이션'이 된 현실

2015년 출간 당시 파격적인 설정으로 화제를 모았던 가키야 미우의 소설 70세 사망법안, 가결2026년 현재, 우리에게 더욱 서늘하게 다가옵니다. 국적자라면 누구나 70세 생일 후 30일 이내에 죽어야 한다는 이 잔인한 법안은 재정 파탄에 직면한 초고령 사회의 비명을 담고 있습니다.

카키야 미우의 70세 사망법안, 가결 책표지 편집한 이미지
Copyright ⓒ Miu Kakiya 2015 김난주 옮김 출판 문예춘추사

소설이 던지는 서늘한 경고장

70세 사망법안이 가결되었다.이에 따라 이 나라 국적을 지닌 사람은 누구나 70세가 되는 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반드시 죽어야 한다. 예외는 황족뿐이다.

동 법안은 2년 후에 시행을 앞두고 있다.

 

고령화에 부수되는 국가 재정의 파탄을 해소하기 위해 만든 “70세 사망법안

 

본문에 언급된 "이탈리아와 한국은 사태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라는 설정은 초고령화로 치닫는 우리 사회에 남의 일 같지 않은 경고장을 날립니다.

 

프랑스가 고령화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가는 데 115년이 걸린 반면, 한국은 고작 7년 정도가 걸렸습니다.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속도입니다. 이 추세대로라면 2045년경에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의 고령 국가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효도라는 이름의 굴레, 그리고 '잔인한 구원'

이 작품의 가장 충격적인 지점은 법안 가결 소식에 안도하는 이들이 노인이 아닌 '가족'이라는 점입니다. 13년째 시어머니를 수발하며 자신의 삶을 삭제당한 며느리 '도요코'에게, 국가가 강제하는 죽음은 역설적으로 '해방'이자 '잔인한 구원'으로 다가옵니다.

독박 돌봄의 고통 속에서 "끝이 보인다"며 안도하는 가족의 모습은 도덕적 비난을 넘어 사회적 돌봄 시스템의 붕괴를 날카롭게 폭로합니다. '효도'라는 숭고한 가치가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처참하게 파괴할 수 있는지 작가는 담담하면서도 서늘하게 묘사합니다.

세대 간의 폭탄 돌리기: "우리가 세운 나라" vs "우리의 미래를 먹는 존재"

법안을 둘러싼 세대 갈등은 오늘날의 현실을 그대로 투영합니다. 국가를 일구었으니 보상받아야 한다는 노인 세대와, 노인 부양비 때문에 자신들의 미래와 연금을 저당 잡혔다고 분노하는 청년 세대의 대립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갈등입니다. 인구 구조의 불균형이 초래한 이 '세대 전쟁'은 단순한 이기주의가 아니라 생존을 건 처절한 싸움임을 소설은 보여줍니다.

사지 절단된 삶의 절규  '자니, 총을 얻다' 메탈리카의 'One'

 

작품 속 언급된 1971년 영화 <자니, 총을 얻다>와 그로 인해 알게 된 메탈리카의 'One'은 이 소설의 주제의식을 시각적·청각적으로 극대화합니다.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은 '컬러'로, 고통스러운 현재는 '흑백'으로 묘사한 영화의 기법처럼, 소설 속 인물들 역시 법안 시행까지 남은 2년이라는 유예 기간 동안 비로소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살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고뇌의 정점은 영화 속 자니의 처참한 몰골과 소설 속 병원에서 호스에 연결된 채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겹쳐지는 지점에서 폭발합니다. 전쟁터에서 사지가 절단된 채 의식만 남은 자니의 고통은, 현대 의학의 기계 장치에 매달려 존엄성을 잃어가는 우리 시대 노년의 모습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습니다. 결국, 기계적인 박동만이 울려 퍼지는 병실에서 침묵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살아있음'이 축복이 아닌 형벌이 될 수 있는 초고령 사회의 가장 슬프고도 위태로운 단면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마치 영화 속 자니 처럼, 'I cannot live, I cannot die(살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다)'는 절규가 소설 속 차가운 병실과 영화 속 흑백의 공간을 메우며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메탈리카의 곡 'One'이 수록된 4번째 정규 앨범 <...And Justice for All> (1988)의 앨범 자켓 이미지

 

영화를 찾아보던 중 MetallicaOne이라는 뮤직비디오를 보았습니다. 메탈리카의 4번째 앨범인 ...And Justice for All (1988)에 수록된 곡으로, 밴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명곡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합니다.

메탈리카 멤버들이 영화 <Johnny Got His Gun>의 판권을 직접 사서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고 합니다. 뮤직비디오 중간중간 영화 속 주인공의 절규와 대사가 삽입되어 있어 몰입감이 엄청납니다.

 

"어쩌면 1980년대 헤비메탈의 분노까지 끌어온 것이 소설의 담담한 문체와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과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계에 의지해 생을 붙들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토록 시끄러운 메탈리카의 'One'조차 오히려 고요한 비명처럼 들려왔습니다."

마침표: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 되는 세상을 향해

소설은 가출을 선택한 며느리 도요코의 결단을 통해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결국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죽음의 강제'가 아닙니다. 삶의 끝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 비로소 오늘을 소중히 여기게 된다는 역설,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스스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갈망입니다.

 

오래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회를 반드시 실현해야 합니다.

소설 속 이 문장은 단순히 이상적인 구호가 아닙니다. 초고령 사회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우리가 '효도'라는 개인의 희생에 기댈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묻는 절박한 기도이자 경고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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