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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 - 미야베 미유키

by handrami 2025. 3. 14.

시대물 「외딴집」을 읽고 현대물도 궁금해 선택한 소설이다.

쉽게 선택하기에는 소설의 분량이 만만치가 않다.

3권으로 되어 있는데 모두 500페이지가 넘는다. 이만한 분량의 소설을 여러 사람이 추천한다면 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선택했다.

미야베 미유키 모방범 책표지 편집이미지
Copyright © 2001 by Miyabe Miyuki

1

"똑같은 일이 일년 전에도 있었다. 같은 일이 다시 반복된다. 비명과 피, 그리고 멍하니 바라보는 나."
"범죄란 '사회가 갈구하는' 형태로 일어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많은 분량 이었음에도 몰입도가 좋아 지루한 줄 모르고 읽었다.

「외딴집」을 읽을 때도 느꼈지만 소설의 분위기가 독자로 하여금 분노를 유발하게 한다.

추리소설에서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문제를 의식하며 등장인물의 행동에 따라 분노한다.

 

소설은 공원에서 놓인 상자 안에서 사람의 팔이 발견되고, 그 주변에 버려진 또 다른 피해자의 소지품이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수사는 진전이 없고, 그런 수사진을 비웃듯 실종된 손녀를 기다리는 가족에게 범인은 조롱하듯 전화를 걸어 도발한다.

범인은 자신의 범죄를 자랑하듯 방송국에 전화를 해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는 대담함을 보인다.

 

범인에 대한 궁금증을 한층 높여 놓았을 때, 2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자동차 트렁크에서 남자의 변사체가 발견된다.

 

1부는 사건의 발단을 보여주었다.

 

2

교통사고로 죽은 2명의 살인 용의자를 중심으로 그들의 어린 시절 및 가정사와 사건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을 용의자들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소설 속 용의자들의 사이코패스적 성격은 서서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원래 그런 인간이었던 것처럼 표현된다.

"어머니가 지갑의 위치를 바꾸지 않는 것은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날 밤, 당당하게 어머니를 때렸다. 어머니는 울었지만 화는 내지 않았다. 아버지는 못 본 척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둘 다 맛이 갔다."

 

외할머니 사진을 보며 하는 말은 완성형 사이코패스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얘가 남자하고 동반자살했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차라리 남자를 먹어치웠다는 편이 믿기 편하겠어."

 

자신이 그렇게 된 이유가 부모에게 있다고 말한다.

"죽은 누나 생각에만 빠져 지금 눈앞에서 성장해가고 있는 동생의 마음을 조금도 배려해주지 않았던 아버지 어머니가 그런 생각을 갖도록 만들었다."

"부모는 그 여자애를 그리워하면서 단 한번도 그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소설은 문제의 원인이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그 문제는 다시 가정에 피해를 주는 악순환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가정의 불화와 부모의 무책임함이 범죄에 어떤 식으로든 연관을 주고 그 범행은 다시 가정에 상처를 남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녀가 마지막에 하는 독백에서 가정에서 받았을 고통을 생각하니 울분이 치솟았다.

"지금까지 죽지 않으려고 애써왔다. 죽은 진짜 아빠와는 하나도 닮지 않은 그놈, 엄마의 남자 손에 죽지 않으려고 애썼다. 내게 몰래 무슨 짓을 했는지, 오랫동안 무슨 짓을 해왔는지, 입 밖에 내기만 하면 죽여버리겠다고 그놈이 말했다. 더 험한 꼴을 당하기 싫으면 시키는 대로 하라고 했다. 계속 참아왔다. 죽고 싶지 않았다. 나를 죽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엄마의 남자라고 생각했다."

 

"중학생이 여덟시가 지나도록 집에 안 가고 거리를 나다니게 키운 것 자체가 문제야."
"야단은, 지들도 제멋대로 사는 주제에"
"우리 아빠는 날 때리지 않아. 내 노예니까. 아빠가 나를 너무 귀여워하니까, 그것 때문에 할망구가 안달이 났어."
"우리 아빠는 진짜 아빠가 아니라서 편리해.“

 

'문제아'에게는 '문제부모'가 있다고 말하고 싶은가 보다.

 

"너는 여자한테 인기가 있으니까 조심해야 해. 알겠니?“

 

'놈들'은 형사들이기도하고, 매스컴 관계자들이기도 하고,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반 시민들이기도 하다.
'배우'들의 가족도 역시 '놈들'이다.
'배우'란 죽은 이들이다.
"넌 우리가 찾던 여자야. 네가 있을 곳은 여기야. 우리들의······ 여배우야. 그리고 그 애는 쓰레기통 속으로 들어갔다."

 

 

소설 속에 나오는 문장들은 아픈 상처를 가진 평범하고 힘없고 나약한 사람들을 표현하는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그들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호소하다가 별다른 이유 없이 자신들이 왜 그렇게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체 그냥 사라져 버린다.

 

범인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살해당한 소녀에 관한 이야기를 2부에서 자세하게 묘사한다.

죽임을 당하는 이유와 사건과의 관계를 궁금해하며 읽던 나에게 우연히 선택되어 아무런 이유 없이 죽임을 당하는 모습에 허탈함을 느꼈다.

오히려 그런 상황을 시각적인 요소로 묘사하는 느낌이 들었다. 자극적인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이유 없는 죽음에 대한 분노를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진정한 악이란 이런 거야. 이유 따위는 없어. 그러므로 피해자는 자기가 왜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는지 모르는 거야. 원한, 애증, 돈, 그런 이유가 있다면 피해자도 납득을 할 수 있겠지. 자신을 위로하거나 범인을 미워하거나 사회를 원망할 때는 그 근거가 필요한 거애. 범인이 그 근거를 제시해주면 대처할 방법이라도 있지. 그러나 애당초 근거 같은 건 없었어. 그거야말로 완벽한 '악'이야.“

 

소설은 범인이 겪었던 어린 시절의 아픔을 이야기하지만, 그의 행동은 동정이나 이해라는 말을 꺼낼 수 조차 없게 만들었다. 자신이 당했던 것보다 더 끔찍하고 더 아픈 악의로 덮어 버렸다. 더 이상 범인의 아픔은 언급조차 힘들게 되었다. 상상으로도 거부하는 행동은 어떠한 이유도 변명거리가 되지 않는다.

 

사이코패스 범죄자가 이유 없이 자신의 희열을 위하여 사람을 재미 삼아 죽이는 설정에서 왜라는 질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3

용의자 2명의 사망 이후 남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서술된다.

"그 두 사람에게 죽은 여자들의 가족도 아마 지금의 저처럼 스스로를 책망하고 있을 거예요. 저처럼 욕을 먹어 마땅할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어도, 자기 자신을 책망하고 있을 거예요. 근거가 없는 만큼 이런 것 저런 것까지 모두 뭉뚱그려서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죠. 어쩌면 그 사람들이 저보다 더 괴로울지도 몰라요.“

 

3부의 주제는 피해자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은 범인의 체포에서 끝나지 않는다.

범죄에 대한 원인을 범인에 국한하지 않고 가정과 사회로 넓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인간이란 그렇게 독창적인 동물이 아냐. 모두 뭔가를 흉내내면서 살고 있다고."
"당신도 누군가의 흉내를 내면서 살아?"
"특정한 개인은 아냐. 나는 말하자면 개념을 흉내내고 있는 거겠지."
"일반 사회의 통념이라고 할까.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회사에는 다니기 싫고, 아침에 못 일어나고, 간단한 문장을 쓸 수 있고, 기억력은 좋지만 자기 힘으로는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고, 육체노동에는 맞지 않는 남자가 만화나 애니메이션 세계에 들어와서 마흔 가까운 나이가 되면 이런 꼴이 되지 않을까 하는 개념.“

 

시게코와 통화하는 상대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지만  '미야베 미유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매구미가 피해자 아들에게 억지를 부릴 때 유미코는 화를 내며 아무리 그래 봐야 소용없다고 말했지만, 자신의 가족이 범인으로 몰리자 매구미와 비슷한 행동을 하게 된다.

 

나 또한 매구미의 행동에는 화가 나고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했지만, 유미코의 경우에는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한쪽은 범인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다른 한쪽은 범인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피해자들에게는 두 경우 모두 비슷한 행동일 뿐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요시오는 진범이 따로 있다고 믿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였지만 그래도 유미코의 말을 들어주고 용의자인 가즈아키가 어떤 사람인지 들어주고 싶다고 시게코에게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한다.

"살인이 잔혹한 것은, 살인이 피해자를 죽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가족의 생활과 마음까지 서서히 죽여가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 가족을 죽이는 것은 살인자 본인이 아니라 그 가족들 자신의 마음이야."
"진실이란 건 말이지, 네놈이 아무리 멀리까지 가서 버리고 오더라도 반드시 너한테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어."

 

1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이다 보니 결정적인 내용을 최대한 배제한다고 하면서 적은 내용도 생각보다 많아졌다.

 

모방범은 사건을 보는 시각을 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 사건의 수사권자와 기자를 중심으로 진행하며 각각의 입장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였다.

작품 속 인물은 그들 간의 복잡한 인간관계에 중점을 두고 복잡하고 감정적인 플롯을 통하여 나타내고 있다. 특히 그들을 통하여 현실적인 사건이나 사회적 관심사에 대하여 진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모방범'잡지에  5년에 걸쳐 연재되었던 소설이라고 한다.

1부와 2부에 같은 장면을 중복해서 서술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장황하게 설명한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5년간의 연재소설이라는 것을 알고 이해되었다.

 

분량 면이나, 내용 면에서나 여러모로 가벼운 책은 아니다.

그렇지만 읽으면서 분량에 비해서 길다고 느끼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추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그 많은 사람 중에 나도 포함된다.

 

 

누군가에게 진정한 친구가 된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누군가를 향해 손을 내밀고 내가 곁에 있으니 괜찮다고 말을 거는 순간에, 그는 다른 사람이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처음부터 듬직한 인간은 없다. 처음부터 힘 있는 인간은 없다. 누구든 상대를 받아들일 결심을 하는 순간에 그런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