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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손보미 <사라진 숲의 아이들> 잊혀진 고통의 비틀린 표출

by handrami 2025. 5. 27.

도심에서 벌어진 청소년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사회로부터 국가로부터 잊혀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사회파 탐정소설입니다.

단순한 추리소설을 넘어, 현대 사회의 복잡한 문제들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손보미 작가의 '사라진 숲의 아이들' 책표지 편집한 이미지
Copyright ⓒ 2022 손보미 안온북스 출판

 

작품소개

서울 도심 공원에서 열아홉의 여자애와 스물하나의 남자를 각각 스무번씩 칼로 찔러 잔인하게 죽인 열여덟 남자애의 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입양아 출신의 탐사보도 피디 채유형은 이 사건을 취재하던 중, 경찰조직의 내부 부정을 고발한 후 따돌림을 당하고 있던 40대 여형사 진경언의 도움을 받게 되고, 두 사람은 진실을 쫓는다는 목적 하나로 묵묵히 발을 맞춥니다.

 

은 이 소설에서 중요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품 속의 은 생명을 품기도 하지만, 동시에 존재를 감추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중적인 의미를 품은 이 공간은 곧, 사회로부터 사라진 혹은 지워진 아이들의 은유이기도 합니다.

소설은 꽃이 피어 있던 을지로의 숲이라는 모호하고 시적인 단서를 따라 사건을 추적하며, 점차 예상치 못한 진실에 다가가게 됩니다.

 

소설 속 채유형과 진경언은 피해자도 구경꾼도 아닙니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행동하고, 상처 입고, 결정을 내립니다. 서로의 고통을 알아본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단순히 연대를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외로움과 그 극복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사라진 숲의 아이들은 사건 해결이 끝이 아니라, 사건을 통해 드러난 사회 비판, 그리고 인물 심리의 조화를 통해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과연 누구를 기억하고, 누구를 잊고 살아가는가?" 사라진 숲의 아이들은 그 질문에 쉽사리 답하지 않습니다. 다만 진실을 향한 긴 여정 끝에, 이 세계가 놓치고 있던 작은 존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만듭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의미 있습니다.

 

 

채유형의 입양으로 바라본 정체성과 상실의 상처

여섯 살때 지금의 부모님에게 입양된 채유형은 중학교 입학하던 해, 자신의 친부모로 여겨지는 가족사진을 보게 되고, 자신 외에 남자아이가 더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남자아이는 선택되고 자신은 버려졌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날 이후 지금의 양부모에게 부끄럽지 않은 완벽한 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자신의 과거를 스스로 해석하고 상처받는 아이의 심리는, 입양아가 겪을 수 있는 대표적인 정체성 혼란이라 생각됩니다.

이런 아이는 입양 부모의 사랑이 조건적일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된 태도를 취합니다. 실제로도 많은 입양아나 소외된 아이들은 사랑받기 위해 과도하게 착하고 성실할 아이가 되려고 한다고 합니다.

 

'선택되었다'와 '버려졌다'라는 이분법적 감정은 지속적인 비교와 자기검열을 만들어 냈을 것입니다. 그 결과로 소설 속에서 채유형은 진실에 접근하려는 집요함과, 정의감, 그리고 그녀만의 시선을 형성합니다.

 

그녀의 트라우마는 외적으로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보이지만 내면에는 사랑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인간관계에서는 한없이 조심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채유형의 이런 생각은 소설 속에서 심리적 긴장과 설득력을 높이는 중요한 장치이자 캐릭터를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소설은 아이러니하게도 남겨진 오빠 또한 자신이 남겨진 것에 대해 상처를 가지게 됩니다.

“어떤 우연들이 겹쳐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우리는 그냥 보고 싶은 걸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르죠. 멋대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말이예요.”

 

 

전화 선택지는 결국 모두의 명분입니다.

만약 전화 한다면...

채유형의 불안과 도망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아주 작은 용기까지 모두 담겨 있습니다.

내면의 갈등과 책임의 무게를 혼자 감당하지 않으려는 몸짓으로 심리적 출구이자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주길 바라는 희망의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채유형은 이미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기울고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진실을 알고 싶다는 욕망이 있지만, 혼자 결정하기엔 무섭고 불안한 상태로 스스로를 밀어붙일 명분을 찾고 있었고 결국 채유형의 명분이 진 형사에게도 명분이 되었던 것입니다.

 

 

파월 노동자 채불임금

파월 노동자는 베트남 전쟁(1964~1973) 당시 한국 정부와 기업이 미국과 계약을 맺고 건설기술 인력을 베트남에 파견했던 노동자를 말합니다.

이들은 당시의 대형 건설사 소속으로, 주로  미군 기지나 도로, 항만 등을 건설했습니다. 당시 이들에게 지급될 달러 임금을 상당 부분 원화로 환전해 송금한다는 명목으로 일부를 가로채거나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2000년대 이후 파월 노동자 및 유가족들이 정부를 상대로 임금 반환 소송을 제기하며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정부는 임금 지급이 민간 기업과 노동자 간의 계약에 따른 것이며, 정부의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는 입장에 기반하고 있으며, 법원은 몇 차례 노동자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리기도 하였지만, 대법원에서 증거 부족 등으로 원심 파기 또는 배상 기각되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법원은 당시 국가가 외화를 일정 부분 보유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불법적인 임금 체불인지에 대해서는 판단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체불임금은 실재했고, 정부와 기업이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감추고 부정한 부정의한 과거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법적 입장과는 다를 수 있지만, 사회적, 도덕적 진실을 묘사하려는 문학의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사라진 숲의 아이들은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이면을 조명하는 사회파 소설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게 희생당하고 잊혀진 사람들, 즉 파월 노동자와 군인, 그리고 그 가족들을 상징합니다.

작가는 이들을 다시 기억 속으로 불러냅니다. 국가가 외면하고 축소한 역사로 인식합니다.

 

체불임금 파월노동자 · 파월군인 유족의 모임

소설은 파월 노동자와 파월 군인에 대해 구분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듯합니다.

파월 노동자는 생계형 파견, 착취 구조 속에 존재하지만, 파월 군인은 전쟁 수행의 주체이자 어떤 의미에서는 가해의 구조에 포함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파월 군인은 상대적으로 좀 더 많이 기억되고, 국가를 위한 병사라는 명분도 있습니다.

문학은 모든 인물을 같은 선상에 두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의도적으로 거리감을 유지함으로써 다른 시선의 방향을 명확히 하려는 시도로 생각됩니다.

 

사라진 숲의 아이들파월의 잊혀진 노동자를 이야기하려는 소설이지, 전쟁 전체를 다룬 소설은 아니기 때문에 군인을 배경에 두고, 노동자를 전면에 배치하는 방식은 의도된 선택으로 보입니다.

 

불쌍한 피해자로만 존재하는 것을 거부함

어째서 그토록 절박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더 깊은 질문을 유도합니다.

국가가, 사회가, 오랜 세월 행해왔던 구조적 폭력의 결과물로 표현합니다.

그들이 가해자가 되었다면 그것은 개인의 타락보다는 공적 책임의 부재와 침묵이 낳은 결과로 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작가는 선과 악을 모호하게 만들어 도덕적 흑백을 나누는 시선에 질문합니다. 그 선택밖에 할 수 없었던 삶은 어떠했을까?

세상이 들어주지 않는 말의 마지막 형태일 수 있습니다. 가장 원시적인 복수로 진실을 드러내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피해자마저 가해자가 되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들은 분노의 원천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몰랐어요. 모른다는 것, 때로는 그게 바로 가장 큰 잘못이 됩니다.
그 소년이 몰랐던 것은, 알고 있던 사실을 제외한 ‘모든 것’이었다. 모른다는 것은 죄였다. 하지만 그 세상 속에서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 저 말을 하는 노인은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모른다는 죄’에서.

 

 

사라진 숲의 아이들은 이런 독자에게 추천합니다.

  • 사회적 이슈를 다룬 미스터리 소설을 선호하는 독자
  • 복합적인 인물 심리와 관계에 관심이 있는 독자
  • 여성 중심의 서사를 찾는 독자

파월 노동자와 군인, 그들의 가족, 입양된 아이와 남겨진 아이, 기억하는 자와 기억하지 않는 자들 사이에서 독자는 누구도 온전히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사라진 숲의 아이들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잊혀진 고통 앞에서 당신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