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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기타 번역소설

알렉스 안도릴 <아이가 없는 집> 고전 미스터리의 재해석, 시리즈의 성장통

by handrami 2025. 6. 27.

고전적인 후더닛 미스터리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문구에 이끌려 이 작품을 선택했습니다.

 

알렉스 안도릴은 스웨덴 작가 부부의 필명입니다. 이 소설은 율리아 스타르크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고전적 스타일의 전통적인 형식과 요소를 따르며 살인 사건이 발생한 후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고전 후더닛(whodunit) 미스터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알렉스 안도릴 '아이가 없는 집' 책표지 편집한 이미지
Copyright ⓒ 2023 Alex Ahndoril / 2024 옮긴이 유혜인 출판 필름

작품소개 : 휴대폰 속 시체 사진이 불러온 비극

이야기는 유서 깊은 목재 재벌 만하임 그룹을 운영하는 페르 귄터가 자신의 휴대폰에서 발견된 시체 사진 한 장 때문에 하룻밤 사이 살인 용의자가 되면서 시작됩니다. 페르 귄터는 사진이 찍힌 시간에 술에 취해 잠들어 있었기 때문에 기억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게다가 사진 속 남자가 누구인지, 장소가 어디인지도 알아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에 페르 귄터는 탐정 율리아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합니다. 사건 당일 페르 귄터와 함께 만하임 저택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다시 모이는 장소에 율리아가 와주기를 부탁합니다. 만하임 저택이라는 폐쇄된 공간 안에서 용의자들을 심문하며 숨겨진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이 펼쳐집니다.

 

작품의 특징 : 고전적 미스터리의 현대적 재해석

이 소설은 누가 범인인지를 밝혀내는 고전적인 추리소설의 문법을 충실히 따릅니다. 특히, 휴대폰에 저장된 시체 사진이라는 독특한 설정은 현대적인 요소를 가미하며 흥미를 유발합니다.

플래시를 환하게 터뜨린 사진 속에서 한 남자가 결박된 두 손을 무릎에 얹은 채 벽돌 벽에 등을 대고 콘크리트 바닥에 힘없이 앉아 있었다. 체크무늬 셔츠가 말려 올라가 뱃살이 드러났고, 바지의 사타구니 부분은 주름으로 쭈글쭈글했다. 머리를 덮은 갈색 포댓자루 한쪽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p.20)

 

제한된 공간인 만하임 저택에 모인 소수의 인물들 사이에서 범인을 찾아야 하는 설정은 아가사 크리스티 등의 황금기 미스터리를 연상시킵니다. 탐정 율리아가 등장인물들의 알리바이를 확인하고, 그들의 관계와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을 독자와 함께하며 고전적인 추리의 재미를 선사합니다.

 

탐정 율리아 스타르크 : 입체적 매력과 성장 가능성

서른세 살의 여성 탐정 율리아 스타르크는 단순한 사건 해결사를 넘어,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다층적인 인물로 묘사됩니다.

1. 내면의 복합성과 인간적 고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뒤에는 복잡한 개인사와 내면의 고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그녀의 인간적인 약점과 고민은 오히려 독자로 하여금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며, 캐릭터에 대한 흥미를 더합니다. 이러한 입체적인 면모는 율리아를 단순한 기능적 인물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존재로 느끼게 합니다.

 

2. 취약성을 통한 독특한 통찰

어린 시절의 사고로 다리에 불편함을 안고 살아가는 율리아는 사회적 약자로서의 시선을 견지합니다. 이러한 개인적인 배경은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타인과의 상호작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강자의 세계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만의 독특한 통찰력과 예리한 시선을 발휘하며, 이야기에 긴장감과 깊이를 더합니다.

 

3. 논리적 추리력과 진실을 향한 집념

탐정으로서 율리아의 가장 큰 강점은 뛰어난 논리적 추리 능력입니다. 2년 전 사건 해결로 이미 세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는 그녀는, 주어진 단서들을 치밀하게 조합하고 용의자들의 진술 속에서 미묘한 모순을 찾아냅니다.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의 이면을 꿰뚫어 보는 그녀의 냉철한 사고 과정은 사건의 진실에 한 걸음씩 다가서는 결정적인 동력이 됩니다.

 

4. 성장하는 탐정의 서막

'아이가 없는 집'은 율리아 스타르크라는 탐정의 첫 번째 여정의 시작을 알립니다. 일부 독자들은 기막힌 트릭이나 반전보다는 인물 간의 관계와 심리 묘사에 더 집중된 서사로 인해, 캐릭터의 힘이 스토리를 전적으로 이끌어가는데 아쉬움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율리아의 서사가 이제 막 구축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시리즈에서 그녀가 탐정으로서 더욱 성장하고 발전하며, 자신만의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

 

만하임 가문과 제목의 의미: 결핍된 희망의 상징

소설은 만하임 가문의 복잡한 관계와 그 안에 숨겨진 비밀들을 파헤치는 과정을 통해 인간 본연의 욕망과 갈등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부유한 가문 내부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단순한 범죄를 넘어선 인간적인 비극을 담고 있습니다. 탐정 율리아는 이러한 인간 군상 속에서 진실의 파편을 모아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 나갑니다.

“우리 대에는 자식 있는 사람이 없어요.”
“모트 가문의 유전자를 퍼뜨려봤자 좋을 게 하나 없다는 사실을 이제야 다들 깨달았나봐요.” (p.85)

 

'아이가 없는 집'이라는 제목은 소설의 배경이 되는 만하임 저택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이 저택은 목재 재벌 가문의 소유로, 표면적으로는 화려하고 웅장하지만 그 안에 '아이'로 상징되는 순수함, 희망, 미래와 같은 요소가 결핍되어 있음을 암시합니다.

 

개인적인 감상과 비판적 시각

이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개인적인 감상과 몇 가지 아쉬웠던 점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1. 높은 기대와 그 간극

아이가 없는 집의 첫 페이지에서 정해연 작가의 추천사를 보며 남다른 기대감을 품었습니다. 평소 독자의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는 작가가 추천하는 작품이라면 분명 특별한 몰입감을 선사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입니다만, 한 작가의 글쓰기 철학과 그분이 추천하는 작품 사이에는 미묘한 간극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이러한 간극은 아이가 없는 집에 대한 저의 전반적인 평가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소설 자체의 독특한 설정, 인상 깊은 캐릭터 등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책을 읽으며 기대했던 만큼의 긴장감, 혹은 예측 불가능한 반전을 온전히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2. '율리아'와 '시드니' 관계의 아쉬움

작품 속에서 율리아와 시드니가 헤어진 구체적인 이유가 명확히 제시되지 않아 율리아의 감정에 온전히 공감하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이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현재의 감정적 상태에 더 집중하도록 유도하고, 율리아의 트라우마로 인한 타인과의 접촉에 대한 극심한 거부 반응 속에서 시드니만이 유일한 예외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이 작품이 시리즈의 첫 권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이별에 대한 배경 설정은 후속작에서 더 자세히 다루기 위해 남겨 두고, 인물의 현재 상태와 사건 해결에 집중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첫 권에서 독자의 충분한 공감을 얻지 못할 수 있다는 위험을 간과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인물의 감정에 이입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그 감정이 형성된 배경과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율리아와 시드니가 왜 헤어졌는지, 그리고 그 이별이 두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율리아가 시드니에게 여전히 강한 감정을 품고 있는 것이 다소 '뜬금없거나' '과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이 앞으로의 시리즈를 계획하기 위한 요소들을 마련하는 느낌으로 다가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3. 탐정 율리아의 추리 과정에 대한 비판적 시각

일반적으로 추리소설의 탐정은 냉철하고 치밀한 분석을 통해 범인을 좁혀나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율리아가 초반에 다소 경솔하게 범인을 지목하는 듯한 인상은 탐정의 신뢰도를 하락시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쉽게 오판하고 쉽게 사과하는 모습은 율리아에게 인간적인 모습을 부여하려는 장치일 수도 있지만, 탐정으로서의 신뢰도 하락과 함께 이 또한 다음 시리즈를 염두에 두고 성장하는 율리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지나친 준비가 아닐까 하는 염려를 하게 됩니다. 첫 번째 범인 지목이 경솔한 느낌이었다면, 갑자기 범인을 검거하는 듯한 두 번째 과정은 납득할 만한 충분한 증거 없이 급하게 마무리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는 율리아의 뛰어난 추리력이 제대로 부각되지 못하고 그저 천재적인 직감으로 비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탐정의 오판과 갑작스러운 해결은 인물과 서사에 깊이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되었습니다.

 

4. 몰입을 방해했던 요소들

소설은 초반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편하게 읽혀야 하는데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소설을 읽는 동안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이나 오탈자로 인해 몰입이 방해되는 경험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시침은 11, 초침은 2에 있었죠."(p.101)와 같은 서술은 시간 표현의 모호함과 함께 오타의 가능성을 제기하며 독자의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그렇게 초반을 넘기고 나서는 다행히도 점차 읽는 속도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5. 아쉬움 속에 담긴 애정

작품에 대한 높은 기대감이 작은 아쉬움조차 크게 느껴지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비판적인 시각이라기보다는, 작품이 가진 잠재력에 대한 애정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습니다. 큰 기대만큼 부족해 보이는 부분이 더 큰 아쉬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이가 없는 집은 이런 독자에게 추천합니다.

  • 심리 스릴러와 캐릭터 중심의 이야기를 선호하는 분
  • 완벽하지 않은 주인공의 인간적인 면모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분
  • 미스터리 장르에서 새로운 시도나 비전형적인 전개를 즐기는 분
  • 시리즈물을 좋아하시는 분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없는 집은 고전적인 추리소설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현대적인 캐릭터와 주제 의식을 담아내려는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특히 탐정 율리아 스타르크의 성장 가능성은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게 만드는 가장 큰 동력이 됩니다. 치밀한 논리적 퍼즐을 기대하기보다는 인물의 내면과 감정선, 그리고 작품이 가진 독특한 분위기에 몰입하여 읽는 독자분께 더 큰 만족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