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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한국소설

이유소 『호흡과 폭발』 현실과 환상 사이의 심오한 탐색

by handrami 2025. 8. 16.
‘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절대 잠들어선 안 된다는 사실 말이다.’

 

프롤로그의 이 한 문장이 주는 섬뜩하면서도 긴박감 넘치는 인상은, 이 작품이 거대한 미스터리나 숨 막히는 진실을 품고 있을 것이라는 강한 추리소설적 확신으로 이어졌나 봅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1/3쯤 진행되었을 때, 저는 무언가 예상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잠시 당황하기도 했지만 비교적 짧은 분량의 중단편 소설이었기에, "어디 한번 끝까지 가보자"하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이유소 '호흡과 폭발' 책 표지 편집한 이미지
Copyright ⓒ 2025 이유소 출판 한끼

환상문학이란?

환상문학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초자연적인 요소나 환상적 세계를 소재로 작품을 창작하는 것을 말합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표현하며 독자로 하여금 망설임과 질문을 던지게 하는 작품입니다.

 

환상문학은 넓은 의미에서 사실적이지 않은 인간 표현의 모든 형태를 일컫는 장르로, 주로 현실 세계에서 환상 세계로 이동한 뒤 다시 돌아오는 구조가 대표적입니다.

 

주요 환상문학 작가에는 에드거 앨런 포, 기 드 모파상,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등이 있습니다.

 

환상문학은 넓은 의미로 사용되며, 판타지는 SF와 함께 환상문학의 하위 장르로 볼 수 있습니다. 판타지 소설, 만화, 게임 등은 전통적인 환상문학에서 파생된 현대적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소개

이유소 작가의 소설 '호흡과 폭발'은 독자를 일상 속 환상의 세계로 이끄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작품입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 느낄 법한 무기력함과 현실 도피 욕구를 환상적인 서사로 풀어내며, 독자들에게 심오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설 '호흡과 폭발'을 관통하는 현실과 환상의 기묘한 경계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작가와 이름이 같은 '이유소'입니다. 주인공 이유소는 뇌혈관 질환, 특히 2022작가 본인이 실제로 진단받았던 '좌측 경동맥 폐쇄 및 협착'이라는 경험이 녹아든 설정을 안고 삶의 의욕을 잃고 무기력하게 지냅니다. 자신의 삶이 통제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음을 체감하며, 일상 속에서 허무함과 공허함을 느끼던 유소는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창 시절 소식이 끊겼던 중학교 동창 고유상에게서 의문의 전화 한 통이 걸려옵니다. 고유상은 유소에게 "보여줄 게 있다"며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고, 유소는 이 알 수 없는 이끌림에 따라 고유상의 기이한 세계로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고유상의 집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구멍'이 있었고, 유상은 그 구멍 속으로 사라집니다. 구멍을 피자 박스에 담아 온 유소 또한 결국 그 구멍 속으로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전개됩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현대에 온다면 이런 모습일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여정이 펼쳐집니다.

 

작품은 무기력에 빠진 현대인의 내면을 깊이 파고들어, 현실 도피와 자아 탐색이라는 주제를 환상적으로 그려냅니다. 특히 유소가 구멍을 통해 마주하는 기이한 세계는 단순한 외부 현상이나 상상이 아니라, 그의 내면 깊숙이 숨겨져 있던 욕망과 두려움,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들을 형상화한, 무의식적인 자아의 반영인 듯합니다.

 

현실과 환상, 무기력 그리고 자기 탐색

'호흡과 폭발'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지만, 그중에서도 현실과 환상, 무기력과 자기 탐색, 그리고 인간 본연의 갈망이라는 세 가지 주제가 특히 두드러집니다. 이유소의 현실은 질병과 무기력함으로 가득 차 있으며, 고유상의 세계는 이러한 현실로부터의 도피처이자 동시에 새로운 갈등의 시작점이 됩니다. 소설은 이 두 세계를 오가며 독자에게 "과연 무엇이 진정한 현실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환상적인 요소는 단순히 현실을 잊게 하는 도피처가 아니라, 오히려 유소 자신이 오랫동안 외면해왔던 내면의 상처와 욕망을 직면하게 하는 매개체로 작용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자기 치유와 성장의 여정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독자들 역시 주인공의 여정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게 만듭니다. 특히 소설은 현대인이 겪는 무기력감과 고립감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내면의 '호흡'과 그 과정에서 터져 나오는 '폭발' 같은 순간들을 효과적으로 묘사합니다. 이는 독자들에게 큰 공감대를 형성하며, 일상 속에서 자신만의 '환상'을 찾아 떠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합니다. 삶의 의미와 존재 이유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들은 독자로 하여금 소설을 다 읽은 후에도 깊은 사색에 잠기게 만듭니다.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환상적인 여정

'호흡과 폭발'은 삶의 의미와 존재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하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이유소 작가는 무기력하고 혼란스러운 현대인의 내면을 환상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보여주며, 그 안에서 희망과 치유의 가능성을 찾아냅니다. 유소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현실과의 괴리감, 그리고 진정한 자신을 찾고자 하는 갈망을 대변합니다.

 

혹독한 현실 속에서 자신만의 '환상의 문'을 열고 싶은 독자, 내면의 '호흡'을 되찾고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폭발'을 경험하고 싶은 독자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미스터리 독자의 시선: '재미'의 기준, 그리고 아쉬움

프롤로그의 강력한 인상으로 미스터리 소설을 기대했던 저로서는 사실, 작품을 읽는 내내 제가 추리소설에서 느끼는 전형적인 '재미'를 온전히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명확한 사건 발생, 용의자들의 치밀한 심리 게임, 그리고 논리적인 단서들을 조합하여 진실을 파헤치는 카타르시스를 즐기는 저로서는, 주된 흐름이 주인공 유소의 내면 심리 탐구와 모호한 환상 세계에 집중되는 점이 다소 아쉽게 다가왔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것은 긴장감 넘치는 추리와 반전의 묘미였지만, '호흡과 폭발'은 그러한 장르적 쾌감보다는 몽환적인 분위기와 상징적인 메시지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퍼즐 조각을 맞춰가는 듯한 명확한 줄거리보다는,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불명확하고 때로는 혼란스러운 흐름이 이어집니다. 미스터리 소설이 끝에 ''을 내어준다면, 호흡과 폭발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사유의 여지를 남기는 방식입니다. 오직 미스터리 독자로서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제가 작품에서 얻고자 했던 장르적 쾌감은 충족되지 않았던 것이 솔직한 감상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 책을 끝까지 놓지 않고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비록 '재미'의 기준은 달랐을지언정 이 작품이 가진 독특한 문학적 가치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흡과 폭발'이 선사하는 새로운 경험

환상 문학의 독특한 매력

판타지나 초자연적 현상을 단순히 삽입하는 것을 넘어, 현실 속에서 비현실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환상성'을 극대화합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의 현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독특한 독서 경험을 제공합니다. 마치 우리가 일상 속에서 문득 느끼는 비현실적인 순간들을 포착해낸 듯한 느낌입니다.

존재론적 질문과 사유의 기회

 ‘호흡과 폭발은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삶의 의미, 자아의 정체성, 현실과 꿈의 경계에 대한 깊은 철학적 질문들을 던집니다. 유소의 여정은 우리에게 '나는 어디로 향하는가',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보편적인 질문을 되새기게 합니다. 미스터리 소설이 진실을 찾는 즐거움을 준다면, ‘호흡과 폭발은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사유의 즐거움을 줍니다.

 

마무리하며: 새로운 장르로의 시야 확장

'호흡과 폭발'은 제가 기대했던 추리소설은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추리'라는 장르적 측면에서의 재미는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제가 평소에는 잘 접하지 않던 환상 문학의 매력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명쾌한 해결과 통쾌한 반전을 선호하는 추리소설 독자들에게는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미스터리라는 장르의 틀을 잠시 내려놓고, 인간의 심리와 존재에 대한 사색, 그리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즐길 준비가 되어있으시다면, 이유소 작가의 '호흡과 폭발'은 분명 새로운 문학적 경험을 선사할 것입니다.

 

소설속 한문장

호흡과 폭발이 담고 있는 심오한 분위기와 주제 의식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문장들을 소개합니다.

“세계가 존재하는 건 내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야.“
친구가 굳이 있어야 한다면 만날 때마다 나를 위로하면서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친구보다 나 혼자서도 잘 살고 있다는 걸 각인시켜 줄 친구여야 해. 그런 존재를 친구라 부르고 싶진 않지만.
내 스스로 만든 구멍을 외면하면 할수록 그 구멍은 더 깊어지고, 나빠진다.

 

호흡과 폭발은 이런 독자에게 추천합니다.

  • 환상 문학을 선호하는 분
  • 심리 묘사가 뛰어난 소설을 좋아하는 분
  • 삶과 존재에 대한 깊은 사색을 즐기는 분
  • 몽환적이거나 감각적인 분위기를 좋아하는 분
  • 새로운 문학적 경험에 열려 있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