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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한국소설

정명섭 『유품정리사』 조선 시대를 관통하는 삶과 죽음, 그리고 여성의 목소리

by handrami 2025. 8. 15.

유품정리사』연꽃 죽음의 비밀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독특한 설정으로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21세기 현대 사회의 직업인 '유품정리사'라는 개념을 18세기 조선 시대로 옮겨와 풀어낸 이야기는, 표면적인 추리 소설의 재미를 넘어 당시 사회의 부조리와 여성들의 삶을 섬세하게 조명합니다. 이 책은 단순한 소설을 넘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독자에게 오래도록 곱씹을 만한 사유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정명섭 작가의 '유품정리사' 책 표지 편집한 이미지
Copyright ⓒ 2019 정명섭 한겨례출판

 

소설의 주인공 '화연'은 아버지의 죽음을 쫓다가 죽은 여인들의 유품을 정리하는 일을 맡게 됩니다. 특히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인들의 유품을 정리하며 그들의 마지막을 들여다보는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을 시작하게 된 배경에는 아버지의 사건 기록을 보게 해준다는 조건이 걸려 있는데, 이는 화연이 단순한 직업인이 아닌, 숨겨진 진실을 추적하는 탐정의 역할을 겸하게 됨을 암시합니다.

 

유품 속에 숨겨진 약자들의 진실

화연이 마주하게 되는 죽음들은 평등하지 않았던 조선 시대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당시 신분제 사회에서 힘없고 약한 존재, 특히 여성들의 죽음은 때로는 철저히 외면되거나 은폐되었음을 유품정리사는 통렬하게 드러냅니다. 화연은 유품 하나하나에 깃든 망자의 삶의 흔적을 따라가며, 억울하게 숨겨진 사연과 죽음 뒤에 감춰진 진실을 밝혀내려 고군분투합니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은 망자의 삶뿐만 아니라, 그 죽음의 배경에 깔린 사회적 억압과 고통,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엄을 지키려 했던 인간 본연의 모습을 엿보게 됩니다.

 

강렬한 여성 서사와 시대의 외침

이 소설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여성 서사'에 있습니다. 조선이라는 강고한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여성들이 겪는 차별과 억압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작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삶의 희망을 놓지 않고 끈질기게 삶을 이어가는 여성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강렬한 연대와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유품정리사라는 '판타지적'인 장치를 통해, 작가는 당대 여성들이 직면했던 제약을 폭로하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용기와 저항 정신을 부각시킵니다.

 

특히 소설은 “아직 변해야 하는 것들이 남아있다고, 이대로는 안 된다” 목소리 높이며, 성별에 따른 역할 구분 없는 세상이 도래해야 한다는 깊이 있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는 비단 조선 시대의 문제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성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자 성찰을 촉구하는 목소리이기도 합니다. 작품이 던지는 존엄한 삶을 위해 우리 사회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독자의 마음속에 깊은 여운을 남기며, 독자 스스로 삶의 가치와 사회적 책임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이면의 조작된 진실, 그리고 부당한 죽음들

사도세자를 가둔 뒤주를 옮겼다는 이유로 쫓겨나고 비명횡사한 무예별감의 이야기처럼, 겉보기에는 그저 시키는 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듯 보이는 수많은 사연들까지, 유품정리사는 당시 약자들이 겪었던 부당한 희생의 이면에 숨겨진 조작된 진실과 교묘한 계략들을 여실히 파헤쳐 보여줍니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많은 희생과 고통을 강요받지. 왜 그래야만 하는지 그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아. 당사자들은 체념해서 받아들일 뿐이고. 우린 그런 세상에 살고 있어.

이 소설 속 외침은, 시대를 초월하여 불평등한 사회 구조 속에서 소외된 이들의 아픔을 대변하며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작가 정명섭

정명섭 작가는 2006년 역사 추리 소설 적패로 데뷔하여 다양한 분야의 글을 써온 베테랑 작가이며, 특히 2020무덤 속의 죽음으로 한국추리문학대상을 수상하며 그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이러한 작가의 배경은 유품정리사가 단순한 허구가 아닌, 역사와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쓰여졌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소설은 21세기 직업을 18세기로 옮겨왔음에도 불구하고, 어색함 없이 유기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여 독자가 자연스럽게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합니다. 유품정리사는 흥미로운 역사적 배경과 잘 짜여진 추리 요소, 그리고 가슴을 울리는 휴머니즘이 결합되어 완성도 높은 스토리텔링을 자랑합니다. 읽는 내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한시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몰입감을 선사하며, 드라마로 제작되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생생한 장면들이 펼쳐집니다.

 

결론적으로 유품정리사는 단순한 추리 소설을 넘어,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존엄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는 작품입니다.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와 미래의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와 성숙을 역설하며, "성별에 따른 역할이 없는 세상"이라는 이상향을 향해 나아가야 할 우리 사회의 과제를 다시금 일깨웁니다. 삶의 의미와 사회적 정의에 대해 고민해 보고 싶은 독자, 혹은 깊이 있는 여성 서사를 선호하는 독자에게 이 소설을 추천합니다. 정명섭 작가의 유품정리사는 긴 여운과 함께 독자의 마음에 진한 감동과 사유의 흔적을 남길 것입니다.

 

유품정리사는 이런 독자에게 추천합니다.

  • 역사적 배경의 추리 소설을 즐겨 읽는 분
  • 여성 서사의 깊이와 힘을 느끼고 싶은 분
  • 사회적 메시지와 깊은 통찰을 담은 작품을 찾는 분
  • 삶과 죽음, 그리고 존엄성에 대해 성찰하고 싶은 분
  • 독특하고 신선한 설정을 좋아하는 분

 

유품정리사와 함께 읽으면/보면 좋을 작품들

넷플릭스 드라마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무브 투 헤븐 포스터
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유품정리사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유품정리사'라는 소재를 활용해 사회의 부조리와 여성의 목소리를 조명했다면, 넷플릭스 드라마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는 현대 사회를 배경으로 '유품정리사'가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며 그들의 마지막 이야기를 세상에 전달하는 과정을 따뜻하고 감동적으로 그려냅니다.

무브투헤븐 드라마 한 장면
무부 투 헤븐 :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비록 시대적 배경과 장르는 다르지만, '죽은 자의 유품을 통해 삶의 진실과 메시지를 발견한다'는 공통된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있어, 두 작품을 함께 감상하며 죽음 너머의 삶에 대한 깊은 사유와 위로를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브 투 헤븐 공식 예고편

 

이 드라마는 김새별, 전애원 작가님의 에세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원작으로 합니다.

김새별, 전애원 작가의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책표지
Copyright ⓒ 2020 김새별 전애원 청림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