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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일본소설 - 히가시노 게이고

히가시노 게이고 『그대 눈동자에 건배』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인간 탐구

by handrami 2025. 11. 20.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님의 단편집 그대 눈동자에 건배미스터리, SF 판타지, 블랙 유머 등 다채로운 장르적 요소가 한데 응축된 작품집입니다. 각 단편은 작가 특유의 정교한 구성과 인간 심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담고 있으며, 독자에게 예측 불가능한 반전과 깊은 사색의 여운을 선사합니다. 이 책은 짧은 이야기 속에서 삶의 다양한 단면을 비추며, 때로는 잔혹하게, 때로는 따뜻하게 우리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그대 눈동자에 건배 단편집 책표지 편집한 이미지
Copyright ⓒ 2017 Higashino Keigo / 2025년 옮긴이 양윤옥 출판 현대문학

 

차례

  • 새해 첫날의 결심
  • 10년 만의 밸런타인데이
  • 오늘 밤은 나 홀로 히나마쓰리
  • 그대 눈동자에 건배
  • 렌털 베이비
  • 고장 난 시계
  • 사파이어의 기적
  •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 수정 염주

이 단편집은 흥미로운 아홉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새해 첫날의 결심 : 부조리한 세상 속 인간 존엄성 탐구≫

새해 첫날에 한 신사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살인미수 사건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두 노부부가 신사를 방문했다가 옷을 제대로 입지 않은 채 새전함 앞에 쓰러져 있는 군수를 발견하고 이를 신고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주변에 범인도 없고 흉기도 없는 외딴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밀실 살인을 연상시키는 상황에서 노부부가 사건을 목격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렇게 무책임한 인간들도 떵떵거리고 위세 부리며 살고 있잖아. 그런 바보들이 군수를 하고 교육장을 하고 경찰서장을 하고…….” “구지도 하고…….”

 

이 문장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고발, 인간이 절망 속에서 삶을 택하게 되는 역설적인 심리, 그리고 진정한 인간 존엄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회 지도층에 대한 비판과 냉소적인 현실 인식

노부부가 "무책임한 인간들도 떵떵거리고 위세 부리며 살고 있잖아. 그런 바보들이 군수를 하고 교육장을 하고 경찰서장을 하고……"라고 말하는 대사는, 우리 사회의 권력을 쥔 이들이 반드시 유능하거나 도덕적이지 않다는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자 냉소입니다. 사업 실패로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던 노부부의 눈에 비친 사회의 모습은, 오히려 자신들의 절망보다 더 부조리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절망 속에서 찾은 삶의 아이러니한 동력

노부부는 사업 실패로 인한 죄책감과 절망감 때문에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보다 훨씬 무책임하고 한심해 보이는 사람들이 사회의 주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며, 역설적으로 '이런 세상에 우리만 이렇게 사라질 수는 없다'는 일종의 분노 또는 억울함으로 삶을 지속할 동력을 얻게 됩니다. 이는 인간의 삶의 의지가 반드시 긍정적인 희망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분노나 회의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서도 나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간 존재의 가치와 존엄성에 대한 재조명

물질적인 성공이나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자신들의 상황과 별개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통해, 노부부는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다시금 깨닫습니다. 비록 실패한 삶일지라도, 적어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책임감을 가지려는 자신들의 내면이, 겉으로만 번지르르한 이들보다 훨씬 더 가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이는 삶의 본질적인 가치가 외적인 성공이 아닌 내면의 도덕적 판단과 성숙에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대 눈동자에 건배 : '미아타리 수사관'의 놀라운 비밀≫

미아타리 수사관이라는 특수 직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전에 읽었던 마녀와의 7일에서 이 직업이 소재로 나왔을때는 실제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었습니다. 이번에 다시 이 직업을 만나게 되고 실제 존재 할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검색을 해보니 일본 경시청 수사공조과 미아타리 수사반이라는 곳이 실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존하는 특수 직업, 미아타리 수사반

  • 소속: 일본 도쿄 경시청 형사부 수사공조과(捜査共助課)
  • 부서명: 미아타리 수사반 (見当たり捜査班)
  • 인원: 경시청 기준으로 약 10~20명 내외의 정예 요원이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사카 부경이 원조이며 1978년에 처음 창설되었습니다.)

도쿄 경시청의 미아타리 수사반은 한 해 평균 300~400명의 지명수배자를 검거하는 실적을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웬만한 일선 경찰서 하나가 1년 동안 검거하는 숫자와 맞먹는 엄청난 수치입니다.

 

얼굴 쳐다보기 수사로 범인 1000명 잡은 도쿄경시청이라는 제목으로 이 작품이 집필되었던 시기에 경향신문 및 한국일보에서도 소개되었던 적이 있었네요. 한국에 까지 소개가 된 것을 보니 당시 이들의 활약이 이슈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됩니다.

 

≪렌털 베이비 : 육아의 현실을 되묻는 기발한 설정≫

아이를 가질지 말지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렌털 베이비' 비즈니스라는 기발한 설정은 작가 특유의 상상력과 사회 비판적 시각이 결합된 결과입니다. 이 이야기는 육아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미리 체험하게 함으로써, 단순히 환상 속에서 아이를 동경하는 태도에 경종을 울립니다. 이 단편은 육아가 마냥 행복하고 쉬운 일만이 아님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며, 생명의 소중함과 책임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사회의 다양한 면모와 인간의 이기심을 날카롭게 비추는 작가의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사파이어의 기적 : 선입견이 놓치게 한 소중한 가치

파란색 고양이 사파이어의 이야기

선입견 때문에 행운을 놓쳐버렸던 것이다.

 

이 단편은 겉모습이나 기존의 고정관념에 갇혀 진정한 가치나 기회를 알아보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우화적으로 풀어낸 이야기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선입견'이 얼마나 큰 '행운'을 놓치게 할 수 있는지, 파란색 고양이 사파이어를 통해 따뜻하지만 날카로운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는 인간 심리 깊숙이 자리한 편견과 오판의 메커니즘을 보여줍니다.

 

수정 염주 : 시한부 삶 속, 하루를 돌려 지킨 아들의 꿈

평범한 단편을 넘어선 깊은 여운과 뭉클함을 선사합니다. 하루 전으로 딱 한 번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신비한 '수정 염주'를 가진 아버지와,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났다가 뒤늦게 아버지와의 화해를 바라는 아들의 이야기는 시간과 인연, 그리고 가장 이타적인 사랑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아들과의 화해라는 개인적인 소망마저 접어두고 아들의 앞날을 택하는 아버지의 결정은, 죽음 앞에서 발현되는 가장 강렬하고 이타적인 부성애를 감동적으로 보여줍니다. 아들의 성공과 행복이 자신의 마지막 염원임을,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증명해 보인 것입니다.

 

'하루'라는 극히 제한적인 시간 회귀 능력은 아버지의 선택에 더욱 비극적인 무게를 더합니다. 아버지는 이 유일한 기회를 통해 아들에게는 '꿈을 좇을 기회'를 선물하고, 자신에게는 '아들과의 마지막 대면을 통한 화해'를 영원히 포기하는 아픔을 감수합니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르며, 때로는 가장 사랑하는 이를 위한 선택이 가장 큰 상실을 동반할 수 있음을 처절하게 보여줍니다. 아버지의 말 없는 마지막 이별과 헌신의 선택을 보게됩니다.

 

'수정 염주'는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단순한 흥미 위주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사랑과 희생, 그리고 유한한 삶 속에서 무엇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선택인지 묻는 철학적인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총평: 인간 심리를 꿰뚫는 작가의 통찰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님의 단편집 그대 눈동자에 건배는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넘어, '사회적 문제', '인간 심리', '진실 추구 과정' 등 다양한 철학적 질문들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작가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흡인력 있는 문체는 독자들이 각 단편 속 인물들의 내면과 사회의 부조리를 깊이 들여다보게 합니다. 특히 '미아타리 수사반'과 같은 실제 요소를 활용하여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점은 '미스터리와 추리'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는 동시에, 지적 호기심까지 자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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