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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일본소설 - 히가시노 게이고

히가시노 게이고 『투명한 나선』 유카와 마나부의 비밀, 『옛날에 내가 죽은 집』과의 연결고리

by handrami 2026.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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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투명한 나선 책표지 편집디자인
Copyright ⓒ 2021 Higashino Keigo / 2026년 옮긴이 김선영 출판 북다

프롤로그- 버려진 아이

직접 만든 인형과 함께 바구니에 담긴 아이를 아동양육시설 앞에 내려놓고 도쿄행 열차에 오르는 여자. 짧은 프롤로그는 아이와 여자를 둘러싼 사연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들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소노카와 지즈코

혼자서 소노카를 키운 지즈코, 아버지를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소노카, 그리고 지즈코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였던 나에 씨는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와는 별개로, 서로에게 가족과 같은 의미를 지닌 존재로 등장합니다.

지즈코의 죽음과 남겨진 인형

평범했던 일상은 욕실에서 쓰러진 지즈코를 소노카가 발견하면서 무너집니다. 지즈코의 유품으로 남은 인형은 프롤로그와 현재를 연결하는 중요한 소재, 독자로 하여금 사연의 연결고리로 생각하게 합니다.

료타의 등장과 바다에서 발견된 시체

지즈코를 떠나보낸 소노카는 우에쓰지 료타를 만나 동거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바다에서 등에 총상을 입은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고, 소노카의 행방마저 묘연해지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물들의 과거와 감춰진 관계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갑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독자는 사건의 중심에 유카와 마나부가 있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유카와 마나부의 숨겨진 이야기 - 냉철한 과학자에서 한 인간으로

갈릴레오 시리즈의 유카와 마나부는 과학적 논리와 객관적인 관찰을 바탕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인물입니다. 냉철한 이성과 과학자의 시선으로 수많은 미스터리를 풀어 왔지만, 정작 자신의 과거와 가족에 관한 문제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투명한 나선』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사건을 분석하고 타인의 비밀을 밝혀내던 유카와가 자신의 뿌리와 마주하게 되면서, 독자는 평소 쉽게 들여다볼 수 없었던 그의 개인적인 면모를 만나게 됩니다. 사건 해결의 중심에 서 있던 과학자 유카와가 한 인간으로서 어떤 과거를 품고 살아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제목인 '투명한 나선' 역시 여러 의미로 다가옵니다. 생명의 정보를 담은 DNA의 나선 구조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혈연과 가족의 연결을 생각하게 합니다.

 

피를 나누었다는 사실만으로 가족이 완성되는 것인지, 반대로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았더라도 서로를 보살피고 삶을 함께한다면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지...

 

작품은 인물들의 사연을 통해 이러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관계를 혈연이나 제도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의 ‘나’와 유카와 마나부는 같은 인물일까?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떠올린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옛날에 내가 죽은 집』입니다.

 

처음 이 작품을 읽었을 때는 주인공의 이름이나 출생에 관한 정보보다 사건의 미스터리에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투명한 나선』에서 유카와 마나부의 개인사와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고 나니, 오래전에 읽었던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의 이름 없는 주인공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두 인물에게는 눈여겨볼 만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비교 항목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의 ‘나’  『투명한 나선』의 유카와 마나부
직업·전공 이학부 물리학과 연구조수 물리학자
이름 작품에서 공개되지 않음 유카와 마나부
성장 배경 양부모와 관련된 과거가 있음 양부모 및 친부모와 관련된 과거가 밝혀짐
과거와 가족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사연이 있음 자신의 출생과 가족사를 둘러싼 비밀이 있음

 

물론 물리학을 전공했다는 점이나 가족과 관련한 설정만으로 두 인물이 동일인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주인공의 설정과 유카와의 과거를 함께 놓고 읽으면, 두 인물이 같은 사람일 가능성을 생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해석입니다.

 

작가가 두 인물을 동일인물이라고 명시적으로 확인했다는 근거를 찾지 못한 만큼, 독자의 해석과 추측으로 남겨 둘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연결 가능성은 오래전에 읽었던 작품을 다시 펼쳐 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한 작품에서 이름 없이 존재했던 인물이 다른 작품을 통해 새로운 이름과 과거를 얻는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세계를 더욱 넓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투명한 나선』을 읽으며 새롭게 발견한 즐거움 중 하나였습니다.

갈릴레오 시리즈에서 『투명한 나선』이 갖는 의미

『투명한 나선』은 갈릴레오 시리즈의 열 번째 장편 소설입니다. 과학적 원리와 기발한 추리로 사건을 해결하는 시리즈의 기본적인 틀을 유지하면서도, 주인공 유카와의 과거와 가족사를 본격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가가 교이치로 시리즈의 『기도의 막이 내릴 때』에서도 주인공의 가족사를 중요한 축으로 삼아 인물의 내면을 깊이 있게 다룬 바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투명한 나선』 역시 오랜 시간 독자와 함께해 온 주인공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두 작품의 서사적 역할이 완전히 같다고 보기보다는, 사건 해결에 익숙했던 독자가 주인공의 개인적인 역사에 주목하게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호평과 아쉬움 - 독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매력

호평할 만한 부분

가장 큰 매력은 오랫동안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인물로 묘사되어 온 유카와 마나부의 인간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의 가족사와 과거를 들여다보면서 독자는 유카와를 사건 해결에 능한 천재 과학자라는 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사연과 관계를 지닌 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또한 혈연과 가족이라는 주제를 미스터리와 결합해,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이 인간관계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도록 구성한 점도 인상적입니다.

아쉬움이 될 수 있는 부분

반면 갈릴레오 시리즈 특유의 독창적인 과학 트릭과 지적인 수수께끼 풀이를 기대한 독자라면 다소 다른 인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건의 기발한 장치나 과학적 원리를 파헤치는 쾌감보다 인물들의 과거와 가족관계, 감정적인 사연에 무게가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초기 갈릴레오 작품에서 느꼈던 지적 긴장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자에게는 상대적으로 평범한 사회파 미스터리처럼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는 작품의 매력이 부족하다기보다 어디에 초점을 두고 읽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입니다. 과학적 추리의 재미를 기대하는 독자와 유카와라는 인물의 깊이를 알고 싶은 독자는 서로 다른 감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 혈연과 제도, 그리고 관계의 의미

『투명한 나선』에서 주목할 부분은 가족을 단순히 혈연관계로만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흔히 가족을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처럼 피를 나눈 관계로 생각합니다. 여기에 법적인 관계와 사회적 제도가 더해져 가족이라는 틀이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현실의 모든 관계가 이러한 틀 안에서 명확하게 설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혈연으로 이어졌지만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고, 법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서로를 돌보며 가족처럼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때로는 가족이라는 이름이 보호의 울타리가 되지만, 때로는 감춰진 사연과 관계의 복잡함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소노카와 지즈코, 그리고 지즈코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였던 나에 씨의 관계는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게 합니다. 가족이라는 관계는 출생이나 혈연만으로 완성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서로를 돌보고, 상대의 삶을 받아들이며, 책임을 나누는 과정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작품 속 인물들의 과거와 선택은 가족이라는 관계가 지닌 복잡함을 보여줍니다. 누가 누구의 자녀인지 밝혀진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실을 알게 된 이후에 그 관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선택을 하는지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제목인 '투명한 나선'은 생명의 정보를 담은 DNA의 이중 나선을 떠올리게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혈연의 연결과 오랫동안 감춰져 있던 가족의 비밀을 함께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제목 역시 작품의 주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결국 이 작품은 혈연의 비밀을 추적하는 미스터리인 동시에, 가족이라는 관계를 이루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하는 이야기로 읽힙니다.

이런 독자에게 추천합니다

갈릴레오 시리즈를 오래 지켜봐 온 독자

늘 객관적인 관찰자이자 냉철한 학자로 기억되어 온 유카와 마나부. 그가 어떤 과거를 지니고 있으며, 가족이라는 개인적인 영역을 통해 어떤 면모를 보여주는지 알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합니다.

사건을 해결하는 능력뿐 아니라 유카와라는 인물 자체에 관심이 있다면 더욱 의미 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가족의 의미를 고민하는 사회파 미스터리 독자

피를 나눈 것만이 가족인지, 아니면 서로를 보살피고 책임지는 관계가 가족을 완성하는 것인지 고민해 보고 싶은 독자에게도 어울립니다.

자극적인 사건과 반전에만 집중하기보다, 사건 너머에 놓인 사람들의 삶과 관계를 따라가며 생각할 거리를 얻고 싶은 독자라면 작품의 여운을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연결해 읽는 독자

한 작품에서 만난 인물이 다른 작품과 어떤 관계가 있을지 상상하고, 작가의 작품 세계를 서로 연결해 읽는 재미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도 추천합니다.

특히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을 읽었다면, 『투명한 나선』을 통해 이름 없는 주인공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마치며

『투명한 나선』은 갈릴레오 시리즈의 주인공 유카와 마나부를 사건을 해결하는 천재 과학자가 아닌, 자신만의 과거와 가족의 비밀을 품고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하는 작품입니다.

 

혈연이 가족을 설명하는 하나의 조건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품 속 인물들의 사연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진실과, 그 진실을 마주한 사람들이 내려야 하는 선택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번 작품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의 이름 없는 주인공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두 인물이 같은 사람인지 이제는 영원히 확신할 수는 없지만, 서로 다른 작품에 등장한 인물과 설정이 하나의 가능성으로 연결되는 순간은 독자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한 작품을 읽고, 오래전에 읽었던 다른 작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것. 제게 『투명한 나선』은 유카와 마나부의 과거를 알게 된 작품인 동시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세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 작품으로 남았습니다.

사건을 해결하는 천재 과학자 유카와 마나부를 넘어, 한 사람의 과거와 가족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투명한 나선』은 충분히 읽어 볼 만한 작품입니다.

특별 수록 단편「겹치다」

투명한 나선 특별수록 작품 겹치다

 

이 단편은 본래 2021년 일본 단행본 출간 당시에는 없었으나, 2024년 일본 문고판 출간 시 추가된 특별 원고입니다. 한국어판에서는 이 문고판 구성을 따라 특별단편으로 함께 수록되어 출간되었습니다.

 

본편이 무거운 가족의 비밀과 혈연의 무게를 파헤쳤다면, 수록작 「겹치다」는 유한한 생명과 새로운 생명의 교차를 통해 본편의 주제의식을 짧지만 강렬하게 뒷받침해 줍니다. 단순한 보너스 트랙을 넘어, 시리즈의 주제적 변주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작품입니다.

 

특히 작품 집필 당시 작가가 대장암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었다는 사실은, 작품 속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에 깊이와 애틋함을 더해 주어 더욱 특별한 의미를 남깁니다.

 

말기 암 판정을 받은 뒤, 삶의 마지막을 정리하며 은인들에게 인사를 전하기 위해 여행 중이던 한 남성이 강가에서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수사 결과, 그는 단순한 사고로 사망한 것이 아니라 뺑소니 사고를 위장한 살인 사건의 피해자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범인은 자동차로 피해자를 들이받았을 뿐, 직접 강으로 밀어 넣지는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유카와 마나부는 어김없이 물리학적 관점에서 이 모순의 틈을 파고들며 사건의 진실을 추적합니다.

사건의 이면에는 유산을 둘러싼 욕망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수사의 진정한 핵심은 범인의 트릭이 아니라, 피해자가 품었던 마지막 선택과 인물들이 서로를 향해 품었던 진심에 있습니다. 그 사정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사건의 진짜 전모는 결코 보이지 않습니다.

제목 「겹치다」가 의미하는 것

이 단편의 제목은 단순한 물리적 단서의 중첩을 넘어,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세 가지 겹침을 보여줍니다.

1. 사고와 살인의 겹침: 우연한 비극(교통사고)처럼 위장된 철저한 의도적 범행.

2. 죽음과 생명의 겹침: 삶의 끝자락에 선 남자의 시간과, 새로운 생명의 시작(아내의 임신)이 하나의 사건 안에서 오버랩됩니다.

3. 과학적 추론과 인간 감정의 겹침: 유카와가 차가운 물리학적 계산으로 가능성의 범위를 좁혀간다면, 그 끝에 닿은 진실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인간을 향한 이해와 연민입니다.

 

「겹치다」는 갈릴레오 시리즈 특유의 지적인 추리 쾌감과, 히가시노 게이고만이 쓸 수 있는 묵직한 인간 드라마가 가장 조화롭게 어우러진 수작 단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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