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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히가시노 게이고 단편집 <범인없는 살인의 밤> 범인은 없지만, 의도는 있었다

by handrami 2025. 5. 4.

범인이 없다는 독특한 설정과 반전, 인간 심리에 초점을 둔 단편집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명확한 트릭과 설계된 범죄, 그리고 예리한 탐정의 추리를 통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정통 추리소설'의 장인이지만, 범인 없는 살인의 밤에서는 그 공식을 일부러 무너뜨립니다. 이 단편집은 '범인은 누구인가'보다는 '왜 범죄가 발생했는가'에 더 집중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인간의 내면과 감정, 그리고 비틀린 관계가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범인 없는 살인의 밤' 책표지 직접 편집한 이미지
Copyright ⓒ 1990 Keigo Higashino / 2017년 옮긴이 윤성원 출판 RHK

목차

  • 작은 고의(故意)에 관한 이야기
  • 어둠 속의 두 사람
  • 춤추는 아이
  • 끝없는 밤
  • 하얀 흉기
  • 굿바이, 코치
  • 범인 없는 살인의 밤
범인없는 살인의밤 2012년 책표지 이미지
범인없는 살인의밤 2017년 책표지 이미지
범인없는 살인의밤 2021년 책표지 이미지
2012년 옮긴이 윤성원 출판 RHK 2017년 옮긴이 윤성원 출판 RHK 2021년 옮긴이 윤성원 출판 RHK

 

 

작은 고의에 관한 이야기》

30센티미터 폭에 높이 1미터쯤 되는 옥상 울짱 콘크리트 위에서 다쓰야가 떨어져 죽습니다.

나카오카는 다쓰야가 자살할 아이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날의 일을 추적합니다.

 

어쩌면 일어날지도 모를 악의를 품고 한 행동은 아무런 효과를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또 다른 악의 "저게 뭐지?"를 더함으로 인해 사망에까지 이르게 합니다.

 

2개의 작은 고의가 더해져 사망사고가 일어났다면 어떤 죄일까요?

법적으로는 고의성과 인과관계의 유무에 따라 죄가 성립하지만, 도덕적으로는 무심한 고의 또는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별일 없겠지 하는 안일함으로 방치한 위험이나, 이익을 위해 조용히 등 돌리는 식의 작은 고의들이 더해져서 그 결과가 의도치 않은 죽음이라면 그 사람들은 도덕적 공범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범인 없는 살인의 밤처럼 명백한 살인의 의도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죽음이 발생한 경우, 히가시노 게이고는 우리에게 당신이라면 무죄라고 말할 수 있는가? 라는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소설에서도 사망까지 이르게 한 두 고의를 저지른 두 사람에게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습니다.

사실 각각의 고의에 대해 법적으로 책임을 묻는다면 어떤 형벌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법적으로 죄가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들의 잘못을 낱낱이 밝혀 놓고 단죄는 독자에게 넘겨 버립니다.

 

너의 작은 잘못된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재앙이 될 수 있고,

그 죗값은 너의 고통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그 작은 악의가 어쩌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려고 한 것은 아닐지 생각됩니다.

 

범인이 없다는 말이 곧 죄가 없다는 뜻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단편이었습니다.

 

어둠 속의 두 사람

중학교 교사 히로미는 남동생이 살해되어 학교에 못 나올 것 같다는 전화를 받습니다.

 

선과 악,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하기 힘든 설정으로 극단적인 내용을 통해 이야기를 전합니다.

극단을 통해 공감의 한계를 실험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종종 가정이라는 체계에서 범죄가 시작된다는 설정을 합니다.

학교는 아이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가족은 오히려 위험한 장소가 되어버립니다.

 

이런 구조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개인만을 탓할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춤추는 아이

춤추는 아이를 보고 ChatGPT로 만든 이미지
춤추는 소녀를 바라보는 소년

 

중학교 2학년 다카시는 매주 수요일 밤 학원 가는 길에 S여고 체육관에서 리듬체조를 연습하는 소녀를 10여 분 동안 지켜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호의를 가지고 한 행동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악의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그것도 죄가 될까요?

사람 간의 미묘한 감정선과 불균형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파열음들이 어떻게 비극적인 결과로 연결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호의든 악의든,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순간 그것은 관계가 되며 관계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 호의가 가져올 결과를 고려하지 않은 순간, 그것은 자칫 무책임한 선의가 될 수 있습니다.

 

 

끝없는 밤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여자가 우연히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아픔을 담담하게 그립니다.

 

 

하얀 흉기

비난받지 않는 폭력의 실체

흡연자는 단지 자기 일상을 살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일상이 누군가에겐 공격처럼 작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이는 흡연뿐 아니라 일상 속 작은 폭력들(, 무시, 냉소, 무관심)이 하얀 흉기처럼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어떤 행동이 처음부터 범죄는 아니지만, 무심한 일상이 누군가의 파국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굿바이, 코치

이중적 의미

  • 표면적 의미인 이별의 인사입니다. 일반적인 굿바이의 의미로 해석됩니다.
  • 내면적 의미는 단죄의 선언입니다. 굿바이는 단순한 이별이 아닌 잘가라는 퇴출의 선언입니다.

 

범인 없는 살인의 밤

"진실에 거짓이 조금 섞여 있는 건 안 됩니다. 그 부분만 두드러져서 파탄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지요."
"100퍼센트의 거짓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걸 좀처럼 증명할 수 없는 법이거든요."

 

짧은 단편이지만 놀라운 반전을 보여 줍니다.

읽으면서 왜? 저들이 범행을 숨기는 일에 같이하는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소설은 내가 생각했던 방향과는 너무도 다르게 결말에 도달해 있었습니다.

 

다른 단편들이 '심리극'이나 '사건의 뒷면'을 조명하며 추리보다는 감정에 집중하는 데 비해, 이 작품은 사건 해결 중심의 구성을 유지합니다.

 

결정적인 반전이 있고, 그것이 독자의 인식을 뒤흔드는 역할을 합니다. 이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적인 스타일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표제작은 오히려 제목과 달리 가장 고전적인 히가시노식 추리물에 가깝습니다.

 

사실 그런데 이 작품이 표제작이라는 것이 다소 의문스럽습니다.

 

 

 

범인 없는 살인의 밤은 이런 독자에게 추천합니다.

  • 짧고 강렬한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분
  • 도덕, 책임, 죄의식 같은 회식 윤리를 생각해 보고 싶은 분
  •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불편한 이야기에 끌리는 분
  • 트릭보다 사람이 궁금한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