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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히가시노 게이고 <사소한 변화> 뇌 이식 후 찾아 온 충격적인 변신

by handrami 2025. 6. 17.

뇌 이식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는 메디컬 스릴러입니다.

 

일본에서 1994 変身(변신)제목으로 발표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에 속하는 작품으로 2005년 이선희 번역으로 창해 출판사에서『변신』이라는 제목으로 발매되었다가 2019년 권일영 번역으로 비채 출판사에서『사소한 변화』라는 제목으로 다시 발행된 작품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사소한 변화', '변신' 책표지 편집한 이미지
Copyright ⓒ 1994 Keigo Higashino

작품소개

이야기는 주인공 나루세 준이치가 강도 사건에 휘말려 어린 소녀를 구하려다 총상을 입고, 기적적인 뇌 이식 수술을 받은 후 깨어나며 시작됩니다.

 

수술 후 나루세는 말투, 습관, 취향, 심지어 성격까지 변화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충격에 빠집니다. 그는 이전의 ''를 지키기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입니다.

 

소설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도겐 노트'는 그에게 환자가 아닌 의료 연구에 필요한 '호스트'로서 접근하는 시각을 보여주며 긴장감을 더합니다.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

소설은 뇌 이식으로 인해 변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이 어디에 기반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의 생각, 감정, 기억, 그리고 ''라는 의식은 오로지 뇌에만 국한된 것일까요? 아니면 사랑, 관계, 경험과 같은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형성되는 것일까요?

 

작가는 주인공 나루세 준이치의 내면 변화를 섬세하게 묘사하며, 독자 스스로 인간 본질에 대해 깊이 사유하게 만듭니다.

 

매디컬 스릴러로서의 매력

이 소설이 쓰여진 1994년이나 현재나 뇌 이식은 여전히 첨단 의학의 영역에 속하며, 소설 속 상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작품은 뇌 이식이라는 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윤리적 문제와 예측 불가능한 결과에 대한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선사합니다.

 

주인공의 신체적, 정신적 변화와 그 원인을 추적해 가는 과정은 독자에게 강렬한 서스펜스를 안겨줍니다. 특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점차 낯선 존재로 변해가는 모습은 깊은 공포감을 유발하며 독자를 몰입하게 합니다.

 

‘도너’와 ‘호스트’에 대한 단상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도너의 시신은 봉합한 뒤 예정대로 처리. 기자회견 때 도너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받았지만 윤리위원회 합의를 내세워 답변을 모두 거부했다.
호스트의 각성이 기다려지고 두렵다
. (p.7)

 

소설 첫페이지 도겐 노트에 나오는 구절은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여기서 '도너'는 뇌를 기증한 사람의 몸을, '호스트'는 뇌를 이식받은 주인공의 몸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의학적인 실제 용어 사용 여부와는 별개로, 작가는 이 단어들을 통해 인간을 대상화하는 듯한 차가운 시선을 드러내는 듯합니다.

 

저는 이 단어들을 접했을 때 반도체 분야의 '도너(Donor)'와 네트워크의 '호스트(Host)'가 떠올랐습니다. 반도체에서 도너는 순수한 진성 반도체에 전기적 특성을 조절하기 위해 주입하는 불순물을 도너라 표현합니다.

 

소설 속에서 뇌 이식을 통해 인간 본래의 순수한 상태에 타인의 뇌, '불순물'이 더해져 예측 불가능한 변화를 일으키는 과정은 반도체 '도너'의 개념과 묘하게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작가의 의도였든 아니든, 반도체 '도너'가 가져오는 '성질 변화'라는 의미와 소설 속 '뇌 이식으로 인한 인격 변화'라는 현상이 연결되어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초기작의 특징과 의미

작가 데뷔 6년 차에 쓰여진 비교적 초기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인간 본연의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흡입력 있는 스토리텔링 능력이 돋보입니다. 후기 작품들에 비해 다소 허술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작가 특유의 치밀한 구성과 반전의 묘미는 이 작품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소한 변화』와 『변신』, 제목의 의미

2019년 비채 출판 사소한 변화 책표지
2005년 창채 출판 변신 책표지
2019년 옮긴이 권일영 출판 비채 2005년 옮긴이 이선희 출판 창해

 

소설의 시작은 주인공 나루세 준이치가 사고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생명을 구하기 위해 실험적인 뇌 이식 수술을 받는다는 설정에서 비롯됩니다. 의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손상된 뇌의 일부를 대체하는 '뇌 이식'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사소한 변화' 또는 '수정'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마치 기계의 부품을 교체하듯, 손상된 부분을 새로운 것으로 대체함으로써 기능을 회복하려는 시도인 것입니다. 한국어판 제목 사소한 변화는 이러한 의학적 행위 자체의 표면적인 의미를 강조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이 '사소한 변화'는 나루세 준이치라는 한 인간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거대한 '변신'을 야기합니다. 수술 후 그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 새로운 능력, 그리고 혼란스러운 상황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조차 낯선 사람처럼 느껴지는 자신의 모습 앞에서 나루세는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습니다. 원제 変身(변신)은 바로 이 지점, '사소한 변화'가 초래한 결과로서의 근본적인 '변신'를 직설적으로 드러냅니다.

 

뇌 이식이라는 과학적 가설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 의식, 그리고 본질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 작품에서, 원제와 한국어판 제목의 흥미로운 대비는 소설이 다루는 '변화'의 이중성, 즉 시작은 '사소해 보일지라도' 그 결과는 한 인간의 모든 것을 뒤바꾸는 '변신'이 될 수 있음을 효과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는 독자에게 깊은 울림과 사유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인간의 정체성이 어디에 기반하는가

"지금의 나는 대체 누구인가?" (p.139)
"도키오의 뇌는 살아 있는 건가. 아니면 도키오의 뇌가 아닌 상태가 되어 있는 건가." (p.168)

 

이 두 구절은 뇌 이식이라는 상황을 통해 두 가지 상반된 가능성에 대한 깊은 의문을 제기합니다. 하나는 뇌가 단순히 물리적인 장기가 아니라 한 개인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본질'로서, 이식 후에도 그 상태를 유지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뇌가 새로운 몸, 새로운 환경, 새로운 경험 속에서 변화하고 재구성되어 더 이상 원래의 뇌라고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입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나루세 준이치가 겪는 성격, 습관, 능력의 변화는 바로 이 두 가지 가능성 사이에서 오는 극심한 혼란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이 여전히 나루세 준이치인지, 아니면 기증자의 인격에 잠식당하고 있는 것인지, 혹은 완전히 새로운 제3의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인지 끊임없이 고뇌합니다.

 

이러한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소설은 초반에 나루세 준이치의 어머니가 자주 해주었던 말을 통해 이미 하나의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합니다.

“무리하지 않아도 돼. 넌 너답게 살면 되는 거야.“ (p.37)

 

사소한 변화는 이런 독자에게 추천합니다.

  • 인간의 정체성과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을 좋아하는 분
  • 메디컬 스릴러와 과학 윤리 문제를 다룬 소설을 선호하는 분
  •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초기 작품 세계가 궁금한 분
  • 예측 불가능한 전개와 강렬한 서스펜스를 즐기는 분

사소한 변화는 단순한 메디컬 스릴러를 넘어, ''라는 존재의 의미를 깊이 탐구하게 만드는 철학적인 소설입니다. 뇌 이식이라는 극적인 상황을 통해 인간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 특유의 예리함과 흡입력 있는 스토리텔링이 빛을 발합니다. 이 책을 통해 예측 불가능한 서스펜스와 함께, 당신 자신에 대한 새로운 사유의 시간을 가져보시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