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정체성, 과거의 진실이라는 주제를 다루며,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에서는 다소 분위기가 다른 심리 미스터리입니다.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찾으려, 과거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외딴 산속의 집을 찾아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폐쇄된 공간 속에서 마주하는 기묘한 흔적들과 단서들은 잊고 싶었던, 혹은 잊혔던 과거의 충격적인 진실로 독자들을 이끌어갑니다.
작품소개
그 집을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가 쳐진다. 형언할 수 없는 공포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침대에 혼자 누워 있을 때에는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싶어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리움에 가까운 감정에 휩싸이기도 했다.
무언가가 나를 부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p11
'네리마 구네'는 칠 년 만에 다시 만난 '구라하시 사야카'의 부탁으로 동행해서 산속의 외딴집을 찾아갑니다.
사야카는 어릴 적 기억이 없다고 말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어릴 적 기억이 하나도 없었다며, 그 기억을 되찾고 싶어서 그 집에 가고 싶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찾아간 기묘한 외딴집 안에서 발견되는 여러 단서로 인해, 두 사람은 충격적인 진실에 다가갑니다.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기억을 찾기 위해 찾았던 그 집은 지워버리고 싶었던 아픈 과거임을 직감하게 됩니다.
과거의 단편적인 기억을 따라 진실을 추적해 가는 과정이 인상적입니다. 마치 추리소설이 아닌 심리 치료의 여정을 지켜보는 느낌을 받습니다.
살인이나 폭력 같은 직접적인 자극보다는, 분위기와 감정의 흐름으로 서스펜스를 형성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반전은 이번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조용한 이야기 전개 속에서 맞이하는 충격적인 진실은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소설은 공포스러운 분위기와 어떤 일이 곧 벌어질 것 같은 기대와 궁금함을 유발하며 진행됩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정통 추리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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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9년 / 역: 최고은 / 출판사: 비채 | 발행: 2008년 / 역: 이영미 / 출판사: 창해 |
사야카의 기억을 되찾는 과정을 통해 작가가 말하려 하는 의미는?
- 자신의 상태에 대한 이해: 사야카는 기억을 잃은 채 살아오면서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 두려움, 그리고 자신이 왜 그렇게 행동하고 느끼는지 알 수 없는 혼란을 겪었을 것입니다. 잃어버린 기억, 특히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관련된 기억을 되찾음으로써, 그녀는 비로소 자신이 겪고 있는 심리적 어려움과 고통의 근원을 이해하게 됩니다.
- 상처의 실체 파악 및 직면: 억압되거나 잃어버린 기억은 무의식 속에 남아 현재의 삶에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기억을 되찾는다는 것은 그 '보이지 않는' 상처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 고통스러운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처의 정체를 알아야 제대로 된 치유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정체성의 통합: 사라진 기억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가 단절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조각들을 되찾아 과거와 현재를 연결함으로써, 사야카는 자신의 경험 전체를 통합하고 보다 완전한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 마련: 과거의 트라우마에 발목 잡혀 있다면 온전히 현재를 살거나 미래로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기억을 되찾고 그 상처를 직면하는 과정을 통해, 사야카는 과거의 짐을 이해하고 내려놓을 기회를 얻습니다. 이는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나 현재에 집중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 됩니다.
소설에서 사야카가 기억을 되찾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아는 것을 넘어, 자신의 상처를 이해하고, 내면의 혼란을 잠재우며, 온전한 자신의 모습으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작가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트라우마의 치유와 인간의 회복력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나는 역시 나일 수밖에 없다는 걸 믿고 앞으로도 살아가려 합니다. p310
어린 시절의 깊은 트라우마와 그로 인한 기억 상실에서 마침내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된 사야카가 과거와 현재, 그리고 상처까지도 모두 포함한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토대 위에서 앞으로를 살아가겠다는 긍정과 회복의 선언이라고 보입니다.
'사야카'가 다행히도 자립하며 살아가려는 모습을 보이는 글로 마무리되는 것에 조금은 위안을 얻어 봅니다.
특별한 사건사고없이 '구네'와 '사야카'의 등장만으로 지루하지 않게 끝까지 흡입력 있게 달릴 수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소설의 완성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합니다.
▼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따뜻한 판타지의 치유의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리뷰보기
▷ 히가시노 게이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시간을 넘어 전해진 작은 기적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은 이런 독자에게 추천합니다.
- 복잡한 사건보다 인물의 내면과 기억에 집중한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
- 감정선이 깊은 이야기, 반전 있는 심리극에 흥미가 있는 독자
- 히가시노 게이고의 감성적인 면모를 보고 싶은 팬
기억의 불완전함,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현재의 삶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과거의 상처를 직면하고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으스스하면서도 서정적인 분위기, 그리고 인물들의 내면 심리에 깊이 파고드는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잃어버린 시간과 기억의 조각을 맞추는 과정을 통해 독자 스스로도 내면의 무언가를 마주하게 만듭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인기작들과는 결이 다르지만,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