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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기타 번역소설

B.A.패리스 『비하인드 도어』 완벽한 쇼윈도 뒤에 갇힌 비명, 그리고 서늘한 연대

by handrami 2026. 9. 10.

B. A. 패리스가 50대 후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발표해, 출간 즉시 전 세계 40개국 이상에 번역되며 베스트셀러가 된 기념비적인 데뷔작입니다.

Copyright ⓒ 2016 B.A.Paris 이수영 옮김 출판 아르테 / 모모

이수영 옮김 출판 아르테 (2017) 이수영 옮김 출판 모모 (2021)

 

남들이 보기에는 부러울 것 없는 인권 변호사 잭과 그의 아름다운 아내 그레이스. 그러나 굳게 닫힌 문 뒤의 진실은 숨 막히는 공포였습니다. 철제 셔터와 정교한 경보 장치로 무장한 저택은 안전한 안식처가 아닌, 한 인간의 자아와 자유를 말살하기 위해 설계된 감옥이었습니다. 소설은 사랑과 보호라는 외피를 두른 가스라이팅과 통제가 어떻게 한 사람의 세계를 파괴해 나가는지 서늘하게 파고듭니다.

 

특히 완벽한 부부를 연기해야 하는 숨 막히는 '현재', 서서히 덫에 걸려들던 과정을 추적하는 '과거'를 오가는 교차 서술은 독자의 목을 죄어오듯 긴장감을 극대화합니다.

“소년이 나이가 들자 그 역시 자기만의 사람을 갈망하기 시작했어. 원할 때마다 얼마든지 공포를 주입할 수 있는 사람, 계속 숨겨둘 수 있는 사람,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사람.(...) 너랑 결혼했어, 그레이스.”

 

오직 자신의 뒤틀린 쾌락을 위해 완벽한 피해자를 찾아 헤맸던 잭의 섬뜩한 고백은, 이 결혼이 시작부터 치밀하게 설계된 덫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더구나 잭의 진짜 최종 표적이 자신이 아닌 다운증후군 동생 밀리였다는 사실은 그레이스를 완벽한 무력감 속에 가두는 족쇄가 됩니다.

 

작품의 흡인력은 매우 탁월하지만, 서사 구조에서 느껴지는 몇 가지 아쉬움은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그레이스의 지나친 무력함

독립적인 사회생활을 해온 성인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잭의 덫에 빠진 뒤 지나치게 빠르게 주도권을 빼앗깁니다. 극심한 공포와 심리적 지배가 인간을 무력하게 만든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답답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잭의 붕괴와 결말의 개연성 부족

빈틈없는 완벽주의 사이코패스로 묘사되던 잭이 후반부에 들어서며 지나치게 허술해집니다. 그레이스의 작은 속임수에 너무 쉽게 넘어가며 초반의 서늘한 긴장감이 급격히 휘발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밀리의 역할과 결말의 작위성

다운증후군을 앓는 밀리가 잭의 철저한 감시망을 피해 수면제를 은밀히 모으고 이를 결정적인 순간에 전달한다는 설정은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악인을 응징하고 통쾌한 탈출을 만들기 위해 장르적 '사이다'를 무리하게 끌어온 인상이 짙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던지는 서늘함과 해방감은 여전히 강력합니다. 완벽해 보이는 가정의 커튼 뒤에 도사린 학대의 민낯을 고발하는 시선이 날카로울 뿐만 아니라, 침묵 속에서도 진실을 알아채고 손을 내밀어 준 연대의 힘이 돋보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결말에서 “밀리의 방 색깔이 뭐였지, 그레이스?”라는 한마디는 이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렬하고 짜릿한 여운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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