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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일본소설 - 그 외 작가

다카노 가즈아키 『13계단』 기억을 잃은 사형수, 흔들리는 정의의 계단

by handrami 2025. 8. 12.

데뷔작이자 첫 문학상 수상작

다카노 가즈아키의 데뷔작이자 첫 문학상 수상작인 13계단은 단순한 추리소설을 넘어 깊은 메시지를 던지는 사회파 미스터리입니다. 사형 제도, 죄의식과 책임, 그리고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내면의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다카노 가즈아키 '13계단' 책 표지 편집한 이미지
Copyright ⓒ 2001 Takano Kazuaki / 2005년 옮긴이 전새롬 출판 황금가지

 

이야기는 10년 전 잔인한 노부부 살해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기하라 료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과정에서 시작됩니다. 기하라는 사건 이전의 오토바이 사고로 살인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은 상태입니다.

 

20년 넘게 교도관으로 일한 난고 요시히토와 살인죄로 복역 후 가석방된 미카미 준이치는 기하라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기 위해 사건 현장을 재구성하고 숨겨진 진실을 파헤칩니다.

 

13계단은 진범 추적의 긴박한 전개와 함께, 사형 제도라는 무거운 주제를 날카롭게 다룹니다. 법과 정의,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으로 독자를 끝까지 긴장하게 만듭니다. 추리소설의 묘미라 할 수 있는 '예상 밖의 전개'를 완벽히 구현한 작품입니다.

 

사법 시스템의 이면을 파헤치다

이 작품은 '인간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사법 정의가 과연 완벽한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집니다.

“재판이란 게 다 운에 달렸어요.”
“국선 변호인이 의욕기 없었거든요.”

 

작품 속 대사처럼, 재판이 진실을 완벽히 규명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기억 상실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처한 사형수를 통해 사형 제도의 비극적 가능성을 조명합니다. 국선 변호인의 의욕 부재와 같은 요소가 재판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사법 시스템이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보여줍니다.

 

'개전의 정' 이라는 주제

소설의 핵심에는 개전의 정(改悛)’이라는 법률 용어가 있습니다. 이는 피의자나 수형자가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반성하는 마음가짐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소설은 타인이 그 반성을 진정으로 판단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타인이 '개전의 정'을 판단할 수 있는가?

본질적인 내면의 문제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마음의 상태를 외부에서 명확히 측정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한계가 존재합니다.

 

가장(假裝)의 가능성

자신의 처벌을 경감시키거나 가석방 등의 유리한 처분을 받기 위해 진심이 아닌 '반성하는 태도'를 연기할 가능성이 언제든 존재합니다.

 

판단의 주체와 기준의 모호성

''이 판단한다는 것은 결국 판사, 검사, 교도관, 가석방 심사위원, 피해자, 심지어는 대중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각 주체는 저마다 다른 기준으로 피고인 또는 수형자의 '개전의 정'을 판단하려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법정에서는 피고인의 진술 태도, 증거 인정 여부, 재범 위험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것이고, 교도소에서는 수용 생활 태도, 교화 프로그램 참여 여부 등을 평가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외형적인 지표'일 뿐, 진정한 내면의 변화를 완벽하게 반영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과연 어떤 기준으로 이 복잡한 마음을 재단할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단해야 하는 이유와 현실적 접근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형사사법 시스템은 '개전의 정'을 판단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재사회화 및 교화의 목적 때문입니다. 현대 형사사법은 범죄자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사회로 돌아와 건전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교화하는 것을 중요한 목적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또한 형량 결정, 가석방 등 형사정책적 고려에 있어서도 수형자의 반성 여부는 중요한 참작 사유가 됩니다.

 

'13계단'은 이러한 법률적, 사회적 판단의 모순과 한계를 예리하게 파고듭니다. 기억을 잃어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는지조차 모르는 사형수가 어떻게 '개전의 정'을 가질 수 있으며, ''이 없다는 이유로 형벌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며 독자에게 사형 제도 자체의 윤리적 딜레마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인간의 반성이라는 것이 과연 '객관적'으로 판단 가능한 영역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인간 본연의 고뇌와 진실의 다양한 얼굴

이 작품은 난고와 준이치 두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인간 본연의 복잡한 감정과 윤리적 딜레마를 심도 있게 다룹니다. 난고는 과거의 죄책감과 사형 제도의 부조리함 사이에서 고뇌하고, 준이치는 자신의 과거와 사건의 진실 사이에서 혼란을 겪으며 성장해 나갑니다. 특히 준이치의 내면은 살인자임에도 불구하고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듯한 초반의 모습과 나중의 반전으로 인해 인간 심리의 다양성과 복합성을 보여줍니다.

 

'13계단'은 또한 '객관적인 진실'이 과연 존재하며, 그것이 법정에서 온전히 밝혀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 인물의 시점과 과거의 파편적인 기억들을 조합하며 진실에 다가가지만, 결국 진실은 하나로 단정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양상을 띠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개개인의 입장과 배경에 따라 진실이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이는 사법적 판단의 한계를 시사하기도 합니다. 범죄자에 대한 '응보형 사상''교화'라는 목적형 사이에서, 과연 법이 개인의 복수심을 대리할 자격이 있는지, 그리고 사회 정의라는 이름으로 생명을 박탈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독자에게 묻습니다.

 

 

'13계단'은 사형 제도라는 매우 민감하고 복합적인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법률과 현실, 정의와 인간의 양심 사이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질문들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사법 시스템의 취약성과 불완전성을 깊이 파헤치는 동시에, 그 안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다각도로 보여주는 매우 입체적인 작품입니다. 단편적인 시각에 갇히지 않고 법의 본질과 인간의 존엄성을 깊이 숙고하게 만드는, 문학적 가치와 사회적 메시지를 동시에 지닌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공허한 십자가와의 교차점과 차이점

이 작품을 읽는 동안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님의 '공허한 십자가'가 떠올랐습니다. '공허한 십자가'가 피해자의 관점에서 사형제도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한다면, ‘13계단은 사법 시스템 그 자체의 허점과 불완전성을 직접적으로 비판합니다. 시스템의 미비함이 어떻게 개인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지, 법이 추구하는 정의가 때로는 얼마나 모순적일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는 법 집행 과정의 제도적 결함을 파헤치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강점을 극대화합니다.

 

또한, '공허한 십자가''반성의 진위'에 주목했다면, '13계단''기억'이라는 진실의 토대가 흔들릴 때 법의 정의가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진실이 결코 객관적이지 않고, 인간의 불완전한 인지와 기억에 따라 왜곡될 수 있음을 효과적으로 드러냅니다.

 

'공허한 십자가'피해자 중심의 서사라면, '13계단'은 사형수뿐만 아니라, 교도관이라는 법 집행자와 법의 심판을 받아 복역한 자가 협력하여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구원하는 서사를 담고 있습니다. 각자의 죄책감과 윤리적 딜레마를 안고 있는 두 인물이 진실을 추적하며 내면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은 단순한 사건 해결을 넘어선 인간적인 울림을 선사합니다.

 

결론적으로 '공허한 십자가'가 피해자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따라가며 사형제도에 대한 정서적,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면, '13계단'은 극한의 상황 설정과 긴박한 전개를 통해 사법 시스템의 제도적 결함과 진실의 불완전성,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이 겪는 고뇌를 더욱 스릴러적인 방식으로 탐구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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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은 이런 독자에게 추천합니다.

  • 사회파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분
  • 인간 심리와 도덕적 딜레마에 관심 있는 분
  • 빠른 전개와 강한 서스펜스를 즐기는 분
  • 사형 제도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한 깊은 성찰을 원하는 분
  • 히가시노 게이고의 '공허한 십자가'를 감명 깊게 읽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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