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명한 기자이자 작가였던 로버트 웰스 리치가 1912년과 1914년에 발표한 두 편의 단편 소설이 한 권으로 엮였습니다. 이 책은 격변하는 대한제국 말기, 국제 정세의 거센 파고 속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실존 인물들과 작가의 상상력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흥미진진한 첩보 활극입니다. 단순한 픽션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몰랐던 대한제국 독립 운동의 '또 다른 진실'을 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 미국 작가의 시선으로 조선을 그려낸 이 작품은 2025년, 류지영 번역가의 손을 거쳐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번역가는 원작의 핵심 줄거리와 흐름은 충실히 따르면서도, 시대적 배경에 맞지 않거나 서양의 우월주의적 시각이 반영된 잘못된 표현들을 바로잡았고, 나아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소재들을 이야기에 더해 원작의 줄거리를 더욱 풍성하고 입체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수록 작품 소개
《상하이 특급》 (원제: The Cat and The King, 1912년 발표)
고종 황제의 망명 시도를 다룬 작품입니다. 고종의 각별한 교감을 받는 '고종 황제의 고양이'인 '난향(蘭香)'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황제가 망명을 포기하게 되는 극적인 순간에 얽힌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긴박하게 펼쳐집니다.
《헤이그의 보석》 (원제: The Great Cardinal Seal, 1914년 발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 사건을 배경으로, 황제가 몰래 제작해 둔 비밀 옥새를 찾기 위한 첩보전을 그립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실존 인물 토머스 베델과 허구의 환상적인 결합

이 소설의 중심에는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여 일제에 맞섰던 영국의 언론인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 (한국명 배설)이 있습니다. 베델과 화자인 미국인 빌리가 마치 셜록 홈즈와 왓슨처럼 환상의 콤비를 이루어 대한제국을 무대로 스릴 넘치는 비밀 첩보전을 펼칩니다. 빌리는 사건을 기록하는 관찰자 역할을, 베델은 날카로운 통찰력과 정보력을 발휘해 사건을 해결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 독자들에게 특별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고종의 망명 시도, 비밀 통로 '고종의 길', 헤이그 특사 사건 등 실제 역사적 사건과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높은 긴장감과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번역서에는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상세한 각주가 더해져 독자들의 이해를 돕습니다.
특히 《헤이그의 보석》에서는 금강산 유점사에 숨겨진 황제의 비밀 옥새를 찾는 과정에서 당시 조선의 민속과 종교적 미신에 대한 미국인 작가의 비판적인 시각도 엿볼 수 있어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타도해야 할 대상은 잔인하고 저열한 일본인들뿐만이 아니라… 이 땅에 깊이 뿌리내린 동양적 운명론과 허무주의, 맹목적 미신인지도 모르겠어요. 작은 나뭇가지 하나로 거대한 바위를 들어 올리려고 애쓰는 듯한 무력감이 느껴져요.
외부의 적뿐만 아니라 내부의 자조적인 태도나 비합리적인 믿음 또한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보았던 작가의 통찰이 담긴 구절입니다.
100년의 시간을 넘어 빛나는 문학적, 역사적 가치
이 소설은 100여 년 전 미국인 작가의 눈으로 본 풍전등화 같았던 대한제국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큽니다. 당시 서양인의 조선 인식과 급박했던 역사적 상황을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문학적, 역사적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최근 러시아 기밀문서 공개 등으로 소설 속 일부 사실들이 실제 역사와 일치한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작품의 진실성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특히 소설의 주요 인물이자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 선생님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일본의 한국 침략 야욕을 직접 목도하고 특파원의 자리까지 그만두며 헌신적인 삶을 시작했습니다. 1904년 양기탁 선생과 함께 민족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여 일제에 맞서 싸운 그의 용기는 역사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내가 죽더라도 대한매일신보는 영원히 살아남게 해 한국 동포를 구해 주세요"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한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그의 숭고한 정신에 깊은 감사와 존경심을 표합니다.
격변의 시대를 살아낸 영웅들의 용기와, 100년 전 서양의 시선으로 기록된 대한제국의 숨겨진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뜨거운 울림과 깊은 성찰을 안겨줄 것입니다.
실존 인물과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팩션(Faction)' 소설을 좋아하신다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다모'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정명섭 『규방 부인 정탐기』 실존 인물의 숨결이 깃든 조선 다모 미스터리
"한 번만 더 그따위 눈으로 쳐다보면 눈알을 뽑아버리고 불알도 뽑아버린다."우포도청 소속 다모 박순애의 서늘한 경고는 시작부터 강렬하게 독자의 뇌리에 박힙니다. '다모'라는 이름이 이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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