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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이야기

반 다인의 "추리소설 20칙"을 아시나요?

by handrami 2025. 7. 5.

추리소설을 읽으며 탐정이 된 기분이 들지 않으세요?

작가가 숨겨놓은 단서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범인을 추리하는 그 과정이 정말 짜릿한데요. 사실 이런 추리소설에는 작가와 독자 사이에 지켜야 할 암묵적인 규칙, 일종의 '공정한 게임'이 숨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지침이 바로 1920년대에 등장한 '반 다인의 추리소설 20'입니다.

리뷰 글 제목 편집한 이미지
반 다인 추리소설 20칙

추리소설의 숨겨진 약속, 반 다인의 20

S.S. 반 다인(S.S. Van Dine)은 미국의 소설가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Willard Huntington Wright)의 필명입니다. 1928년에 아메리칸 매거진에 발표한 '추리소설 20'은 당시 추리소설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 규칙들은 독자들이 스스로 범인을 추리하며 얻는 재미를 최대한 보장하고, 작가가 독자를 속이는 불공정한 플레이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반 다인의 추리소설 20칙 전문

  1. 독자는 범인을 추리할 수 있는 모든 단서를 제공받아야 한다.
  2. 작가는 독자를 속이기 위해 트릭이나 속임수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3. 추리소설에는 사랑 이야기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
  4. 탐정 자신이나 수사 당국의 직원이 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5. 범인은 논리적인 추리에 의해 발견되어야 한다.
  6. 탐정소설에는 탐정이 있어야 하고, 탐정은 탐정으로서 행동해야 한다.
  7. 추리소설에는 반드시 시체가 있어야 한다.
  8. 범죄의 수수께끼는 엄격한 자연의 법칙에 따라 풀어져야 한다.
  9. 탐정, 즉 추리의 주역은 한 사람이어야 한다.
  10. 범인은 소설 중에서 어느 정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11. 작가는 심부름이나 하는 하인을 범인으로 해서는 안 된다.
  12. 범죄가 있든 없든 범인은 한 사람이어야 한다.
  13. 비밀결사, 카모라당, 마피아당 등을 탐정소설에 등장시켜서는 안 된다.
  14. 살인방법과 이에 대한 수사방법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한다.
  15. 사건의 진상은 통찰력 있는 독자라면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것이 되어야 한다.
  16. 장황한 서술적 묘사, 지엽적인 일에 관한 문학적인 설명, 정교한 성격분석, 분위기에 대한 도취 등을 해서는 안 된다.
  17. 탐정소설에서는 직업적 범죄자가 범인인 것은 좋지 않다.
  18. 사고 또는 자살이었다고 결말을 지어서는 안 된다.
  19. 탐정소설에서 살인의 동기는 모두가 개인적인 것이라야 한다.
  20. 끝으로 나의 신조를 20항으로 끝내기 위하여 자존심이 없는 작가라면 써 먹을지도 모르는 수법을 열거하려 한다.

이 규칙들은 당시 추리소설의 '황금기'를 이끄는 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작가들이 이 틀 안에서 얼마나 기발한 트릭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공정한 단서 제공(Fair Play)'이 왜 중요할까요?

반 다인의 20칙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개념이 바로 '공정한 단서 제공(Fair Play)'입니다. 이건 마치 스포츠 경기의 규칙처럼,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약속 같은 겁니다.

 

독자가 탐정이 되는 즐거움: 이 원칙 덕분에 독자들은 단순히 이야기를 읽는 것을 넘어, 마치 자신이 셜록 홈즈라도 된 것처럼 사건의 단서를 쫓고 범인을 추리하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추리한 범인이 실제로 맞았을 때의 그 희열은 추리소설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의 탄탄한 논리: 작가는 공정한 단서 제공을 위해 이야기에 빈틈이 없도록 논리적으로 구성해야 합니다. 모든 단서가 합리적으로 연결되고, 독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결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 덕분에 추리소설은 더욱 탄탄하고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작가와 독자의 끈끈한 신뢰: 작가가 독자에게 공정한 규칙을 지킨다는 건, 독자와의 신뢰를 쌓는 것과 같아요. "이 작가는 나를 속이지 않아, 내가 충분히 추리할 수 있도록 모든 단서를 보여줄 거야!"라는 믿음이 생기면, 독자들은 그 작가의 다음 작품도 기대하게 되고, 추리소설이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애정도 깊어지게 됩니다.

 

규칙을 깬 작품: 논란 속에서 빛난 명작

반 다인의 20, 특히 '공정한 단서 제공' 원칙은 추리소설의 황금기를 만들었지만, 어떤 작품들은 이 규칙을 과감하게 깨뜨리며 새로운 시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논란이 많았지만, 오히려 그 논란 덕분에 더 유명해지고 추리소설 장르의 지평을 넓힌 작품들도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바로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입니다.

이 작품은 서술 트릭의 대명사로 불리는데, 독자들이 믿고 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사실은 중요한 정보를 숨기고 있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주었죠. 당시에는 공정하지 않다는 비판도 많았지만, 지금은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작품들은 독자들에게 때로는 배신감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작가의 기발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만들며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얼마나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마무리하며

물론 시대가 변하며 반 다인의 추리소설 20칙은 어찌 보면 낡은 규칙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공정한 단서 제공'이라는 그 정신만큼은 여전히 많은 추리소설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독자와 작가 사이에 특별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