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 Review/일본소설 - 그 외 작가

아야츠지 유키토 『십각관의 살인』 40년이 흘러도 반드시 '소설'로 읽어야 하는 이유

by handrami 2026. 4. 22.

“덫은 열 개의 등변과 내각을 가지고 있다.”

십각관의 살인 책표지 편집한 이미지
Copyright ⓒ YUKITO AYATSUJI 1987 / 2005 양억관 옮김 한스미디어

크리스티를 향한 오만한 도전장, 사후(死後)의 회고에서 살인의 선언으로

이 소설의 프롤로그는 미스터리 문학의 고전,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강렬하게 소환하며 시작됩니다. 하지만 아야츠지 유키토가 던진 유리병은 크리스티의 그것과 그 궤를 달리합니다.

십각관의 살인 소설 내용중 유리병 해설지를 시각화한 이미지

  • 사후의 기록 vs 살아있는 예고장

크리스티의 유리병이 모든 살인이 끝난 뒤 남겨진 '박제된 해설지'였다면, 십각관의 유리병은 이제 막 피의 잔치가 시작될 것임을 알리는 '살아있는 예고장'입니다.

  • 심판 vs 지적 유희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범인이 사법적 정의라는 명분에 집착했다면, 십각관의 진범은 도덕적 위선을 벗어던집니다. 그는 살인을 하나의 정교한 예술이자 완벽한 트릭으로 간주하며, 자신의 설계력을 시험하는 오만한 비웃음을 흘립니다.

  • 관찰자 vs 심리적 공범

독자는 범인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며 탐정보다 앞서 있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작가는 이 장치를 통해 독자를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범인의 광기를 공유하는 '심리적 공범'의 자리에 강제로 앉혀버립니다.

80년대의 아날로그, 정보의 단절이 만든 미스터리

추리소설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십각관의 살인은 피할 수 없는 이정표와 같습니다. 저 역시 '절대 스포일러를 당해서는 안 된다'는 무언의 경고를 수없이 접하며, 이 책을 펼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왔습니다.

 

드디어 마주하게 된 이 소설은 무려 40년 전인 1987년에 세상에 나왔습니다. 강산이 네 번 변했을 세월이지만, 책장을 넘기는 내내 느껴지는 서늘한 긴장감은 조금도 낡지 않았습니다. 스마트폰도, 화려한 과학 수사도 없던 시절, 오직 인간의 논리와 독자의 맹점을 파고드는 정공법만으로 구축된 이 고전적인 무대는 왜 이 작품이 세대를 초월해 회자되는지를 증명해 냅니다.

 

기술이 메우지 못한 빈틈을 치밀한 두뇌 싸움으로 채워 넣어야 했던 시대. 정보의 지연이 공포가 되고 소통의 단절이 미스터리가 되던 그 시절만의 문법은, 요즘의 세련된 수사극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날 것 그대로의 재미를 선사합니다.

소설속 섬의 모습을 시각화한 이미지

십각형의 감옥, 그리고 비극의 서막

섬에 들어간 미스터리 연구회 멤버 7(엘러리, , 애거사, 르루, , 오르치, )은 각기 유명 추리 작가의 이름을 별명으로 부르며 지적 유희를 즐깁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6개월 전 벌어진 '청옥부 살인사건'의 잔혹한 연장선이었습니다.

  • 청옥부의 비극

저택 소유자 나카무라 세이지 부부와 관리인 부부 등 4명이 잿더미 속에서 발견된 사건. 각기 다른 사인과 행방불명된 정원사, 그리고 미스터리 연구회 신년모임에서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한 나카무라 치오리

  • 죽은 자의 편지

육지에 남은 가와미나미(도일)와 모리스에게 전달된, 죽은 나카무라 세이지로부터의 편지는 복수의 서막을 알립니다.

클래식이 지닌 압도적인 힘: 텍스트만이 부릴 수 있는 마법

작품 전반에는 일본의 고전적인 정취도 스며있습니다. 작중 언급되는 "예전 일본인들은 벚꽃보다 매화를 더 사랑했다"는 구절처럼(실제로 만요슈에는 매화를 읊은 시가 벚꽃보다 3배나 많습니다), 이 소설 역시 화려한 겉치레보다는 단단하고 깊이 있는 고전적 미학을 추구합니다.

"40년 전의 낡은 소설이 왜 지금도 읽혀야 하는가?"

그것은 오직 소설만이 줄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의 백미는 오직 텍스트만이 부릴 수 있는 마법에 있습니다. 영상이나 화면으로 옮기는 순간 허무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오직 활자만이 독자의 상상력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기만할 수 있는 최고의 사기극인 셈입니다.

 

작가가 설계한 그 정교한 '글자의 덫'에 걸려드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미스터리라는 장르가 선사하는 가장 순수한 경탄과 마주하게 됩니다. 십각관의 살인은 단순히 범인을 맞히는 게임이 아닙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여러분이 접했던 모든 경고는 찬란한 경악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덫은 열 개의 등변과 내각을 가지고 있다." 이제 당신이 그 십각형의 함정 속으로 걸어 들어갈 차례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

작품소개섬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의 연쇄 살인 이라는 설정은 이후 수많은 추리소설에 영향을 주었습니다.영국 원제 Ten Little Niggers로 1939년 발간되었다가 미국에서 And Then There Were None (그리고

handrami.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