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혁용 작가의 『파괴자들』은 전작 『침입자들』에서 보여주었던 독특한 하드보일드 감성과 사회 비판적 시선을 계승하면서도, 스케일과 서사의 깊이를 한층 더 확장한 작품입니다. 『침입자들』이 일상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하고 건조한 이야기를 통해 사회의 단면을 비추었다면, 『파괴자들』은 보다 직접적이고 폭력적인 세계로 독자를 이끌며 인간 본연의 파괴성과 생존 본능을 탐색합니다.
1. 독서를 위한 제언: 『침입자들』을 먼저
『침입자들』을 먼저 읽으신 후, 『파괴자들』을 읽으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침입자들』이 먼저 출간되었고, 『파괴자들』은 그 이후에 나온 작품입니다. 『파괴자들』이 주인공 '케이'의 과거를 다루는 프리퀄 성격을 띠고 있지만, 작가는 독자들이 '행운동'이라는 익명의 택배기사로 살아가는 주인공의 현재 모습을 먼저 접하고 그의 미스터리한 과거에 대한 궁금증을 품도록 의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파괴자들』 리뷰를 읽으신 독자분들께는 이미 '행운동'이 사실은 '케이'라는 가명을 쓰는 전직 용병이라는 사실이 알려졌을 것입니다. 이로 인해 『침입자들』을 먼저 읽으면서 '주인공의 정체를 추리하는' 재미는 다소 반감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입자들』을 먼저 읽는 것은 여전히 의미 있는 독서 경험을 제공합니다.
작가의 의도와 서사적 재미의 극대화
『침입자들』에서는 주인공 '행운동'에 대한 정보가 거의 드러나지 않으며, 그의 과거에 대한 단서만 간접적으로 제시됩니다. 이러한 '정보의 부재'는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의 정체와 그가 왜 지금의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합니다. "비밀스러운 과거와 단서들"에 대한 추리 자체가 작품의 중요한 재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파괴자들』을 통해 『침입자들』에서 쌓였던 주인공의 미스터리가 해소되는 경험은 독서의 깊이를 더해줄 것입니다.
캐릭터의 입체적 이해
『파괴자들』을 통해 케이의 '과거'와 '본모습'을 알게 된 상태에서 『침입자들』을 읽으면, 그의 '현재'와 '변화된 모습'을 더욱 깊이 있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주인공의 행동과 심리를 분석하며 읽는 '해체적 독서'의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왜 그가 익명의 택배기사로 살아가려 하는지, 그의 건조하고 관조적인 시선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리고 과거의 그림자가 현재의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더욱 심도 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제 의식의 심화된 이해
『파괴자들』에서 '파괴'와 '폭력'의 본질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후, 『침입자들』에서 그 파괴적인 과거가 남긴 '여파'와 '익명성'이라는 주제를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폭력적인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한 인간의 고뇌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비극성을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2. 작품 소개 및 『침입자들』과의 연결점
『파괴자들』은 정혁용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로, 전작 『침입자들』의 주인공인 택배기사 '케이'의 과거를 파헤치는 프리퀄이자 동시에 독립적인 서사를 가진 작품입니다. 『침입자들』에서 이름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던 '행운동'이라는 인물이 실은 '케이'라는 가명을 쓰는 전직 용병이었음이 밝혀지면서, 독자들은 그의 미스터리했던 과거와 현재의 삶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추적하게 됩니다.
작품의 주된 배경은 다국적 민간 군사기업(PMC) '모튼'이며, 주인공 케이는 이곳에서 근무했던 전쟁 용병입니다. 이야기는 케이가 전투 중 살아남은 동료 '안나'의 전화를 받으면서 시작됩니다. 이는 『침입자들』에서 케이가 택배기사로 일하며 만났던 인물들과의 관계가 일종의 단편 모음집처럼 전개되었던 것과는 달리, 『파괴자들』에서는 케이와 안나를 중심으로 한 명확한 줄기를 따라 긴박하게 진행됩니다.
3. '파괴'의 의미와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
제목인 '파괴자들'은 단순히 물리적인 파괴를 넘어선 다층적인 의미를 내포합니다. 용병이라는 직업 자체가 '파괴'를 업으로 삼는 존재들이지만, 소설은 이들이 파괴하는 대상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스스로 파괴되는 내면,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회와 관계의 파괴를 조명합니다. 『침입자들』에서 '침입'이 일상의 경계를 허무는 미묘한 행위였다면, 『파괴자들』의 '파괴'는 더욱 직접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삶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로 그려집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악인과 악인이 싸우는 구도를 형성하며, 누가 더 강한 악인인지를 겨루는 과정 속에서 인간의 본성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독자에게 불편하지만 직시해야 할 현실을 제시하며, 인간 내면에 잠재된 폭력성과 잔혹성을 탐구하게 만듭니다. 동시에, 그 속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는 의지, 혹은 최소한의 인간성을 지키려는 고뇌가 비극적으로 그려지며 독자에게 깊은 사유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4. 정혁용 작가 특유의 문체와 '하이퍼리얼리즘'
'하이퍼리얼리즘'은 『파괴자들』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합니다. 작가는 단순히 현실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감정과 상황을 묘사하여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건조하면서도 날카로운 문체는 인물들의 고통과 외로움, 그리고 폭력적인 상황을 더욱 선명하고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특히, 주인공 케이가 『침입자들』에서 보여주었던 '관찰하되 개입하지 않는 자, 존재하지만 투명한 자'의 특성은 『파괴자들』에서 그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더욱 복합적인 의미를 띠게 됩니다. 그는 과거의 파괴적인 삶을 뒤로하고 익명의 택배기사로 살아가려 하지만, 결국 과거는 그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이러한 서사는 현대인의 익명성과 존재론적 고민을 더욱 깊이 있게 다루는 장치가 됩니다.
5. '예고된 비극'이 선사하는 긴장감
한 달 뒤, 그들 모두의 죽음을 목격하게 될 줄은 모른 채로 말이다.
이와같은 서술은 이 장르 특유의 비극적이고 냉소적인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희망 없이 파멸로 치닫는 인물들의 운명을 암시하며, 독자에게는 일종의 '예고된 비극'을 통해 긴장감을 더합니다.
등장인물들의 미래를 미리 알게 되는 '비극적 아이러니'를 형성합니다. 독자는 그들의 마지막이 정해져 있음을 알고 지켜보게 되며, 이는 작품 전체에 운명론적인 관점을 부여합니다. 인물들의 발버둥이 결국 정해진 결말을 향해 가는 과정임을 강조합니다. 『파괴자들』이 악인과 악인이 싸우는 구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누가 더 강한 악인지를 겨루는 과정이 결국 모두의 파멸로 이어진다는 메시지를 더욱 강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파괴자들』은 이런 독자에게 추천합니다.
- 하드보일드 액션 스릴러를 선호하는 분
-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과 생존 본능을 탐구하고 싶은 분
- 정혁용 작가의 독특한 문체와 세계관에 매료된 분
- 사회 비판적 시선이 담긴 작품을 선호하는 분
『파괴자들』은 정혁용 작가님의 특유의 감각과 깊이를 유지하면서도, 장르적 재미와 스케일을 확장한 인상 깊은 작품입니다.
정혁용 침입자들 리뷰 보기
정혁용 <침입자들> 일상 속 침범,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침입자였다
전통적인 의미의 추리소설에는 속하지 않지만, 추리적 요소가 가미된 사회파 하드보일드 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이야기 속에 미스터리와 긴장감이 있지만 그것이 핵심은 아닙니다.침입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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