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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기타 번역소설

피터 스완슨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죽음을 맞바꾼 가짜 연대, 그 비릿한 끝

by handrami 2026. 4. 1.

제목만 보고 여덟 편의 단편소설을 생각하며 가볍게 들었다가, 고전 추리소설의 뼈대를 처절하게 해체하는 피터 스완슨의 칼날에 당황하게 되는 작품입니다.

전작 죽여 마땅한 사람들에 이어 이 작품 모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을 뿌리에 두고 있습니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 우연한 만남과 살인 공모를 현대적으로 계승했다면,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은 그 설정을 포함한 여러 고전들을 분석하고 해체하며 독자와 두뇌 싸움을 벌이는 작품입니다.

피터 스완슨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책표지 편집한 이미지
Copyright ⓒ 2020 Peter Swanson ❘ 2022 노진선 역, 푸른숲

고전의 무덤 위에 세워진 살인

주인공 맬컴 커쇼가 과거 블로그에 올린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리스트'가 현실의 연쇄살인으로 재현됩니다. 이 설정은 단순한 모방 범죄를 넘어, 고전 추리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스포일러 테러'라는 양날의 검을 휘두릅니다.

 

소설속에서 소개되는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작품 리스트는 실제 추리소설로 다음과 같습니다.

  • <붉은 저택의 비밀> A.A. 밀른, 1992
  • <살의> 앤서니 버클리 콕스, 1931
  • <ABC 살인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1936
  • <이중 배상> 제임스 M. 케인, 1943
  • <열차 안의 낯선 자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1950
  • <익사자> 존 D. 맥도널드, 1963
  • <죽음의 덫> 아이라 레빈,1978 – 죽음의 게임 (희곡)
  • <비밀의 계절> 도나 타트, 1992

혹시라도 열거된 작품들을 읽을 계획이 있다면 이 소설을 읽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소설 속에서 스완슨은 자비 없이 열거된 작품들의 핵심 트릭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독자의 선택권을 박탈해버립니다.

타인이라는 심연, 그리고 교환 살인

작가가 '교환 살인'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명확해 보입니다. 가장 극단적인 이해관계(살인)를 위해 결합했다가 필요가 다하면 서로를 파괴하는 관계를 통해, 인간관계의 본질적인 허무함을 폭로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죽이고 싶은 사람을 남이 죽여줄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결국 내가 그 살인의 공범이라는 도덕적 파멸로 이어집니다.

신뢰할 수 없는 화자

댓글은 채 24시간도 안 되는 어제 새벽 세 시에 닥터 셰퍼드라는 사람이 작성했다. 나는 댓글을 읽었다.
“리스트의 절반까지 왔네. <열차 안의 낯선 자들> 완료, <ABC 살인사건> 마침내 끝. <이중 배상> 격파. <죽음의 덫>은 영화로 봤고. 리스트를 다 마치면(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연락할게. 아니면 내가 누군지 벌써 알았을까?”

 

이 소설의 묘미는 범인이 누구인가보다 맬컴 커쇼의 기억은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책을 쓸 때마다 거듭 상기하는 사실이기도 하지. 그건 바로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혹은 가슴속에 무슨 생각이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는 거야.
50년 동안 부부로 살았다고 해도 마찬가지야. 그런 부부는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나? 아니야. 아무도 몰라.

 

동업자 브라이언을 통해 나타낸 이 문장은 타인뿐만 아니라 독자가 바라보는 '주인공'에게도 해당됩니다. 결말부에서 등장하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은 이 소설이 지향하는 '서술 트릭''배신'의 정체성을 관통하는 가장 노골적이고도 완벽한 복선입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1950년 작품 열차 안의 낯선 자들 애거서 크리스티 1926년 작품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장르적 오마주인가, 파괴인가?

피터 스완슨은 고전을 존중하는 척하면서 그 트릭들을 수단으로 써먹고 버립니다. 리스트에 나온 소설들을 이미 읽은 독자에게는 짜릿한 변주곡이겠지만, 읽지 않은 독자에게는 이 소설 자체가 하나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음을 밝힙니다.

 

소설을 접하고 한번에 끝까지 읽었을 만큼 흡입력이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는 순간 당신의 독서 목록 중 8권은 영원히 오염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피터 스완슨 <죽여 마땅한 사람들> 도덕적 경계를 무너뜨린 충격적인 반전

제2의 ‘나를 찾아줘’라는 평을 받으며 많은 독자와 언론으로부터 극찬을 받은 소설로 도덕과 범죄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입니다. 테드는 공항 라운지에서 우연히 만난 릴리가 앞으로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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