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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한국소설

홍선주 『푸른 수염의 방』 기억의 조각들이 이끄는 5편의 여정, 단편집 리뷰

by handrami 2025. 8. 3.

홍선주 작가의 푸른 수염의 방은 인간 내면의 심연과 기억의 조각들이 빚어내는 다채로운 서사를 담은 단편집입니다. '기억의 조각들'을 따라 펼쳐지는 다섯 편의 이야기가 각기 다른 미스터리 속에서 인간 본연의 욕망과 사회의 단면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홍선주 '푸른 수염의 방' 책표지 편집한 이미지
2023년 홍선주 출판 나비클럽

■ 푸른 수염의 방 : 어둠을 직면하는 현대적 재해석

푸른수염이 의미하는 것

'푸른 수염'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위험하거나 잔혹한 비밀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특히, 결혼이나 관계에서 상대방에게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숨겨진 어두운 면을 가진 사람을 비유할 때 많이 쓰입니다.

 

푸른 수염 이야기는 샤를 페로의 동화에 등장하는 '푸른 수염'이라는 부유한 귀족에게서 유래했습니다. 그는 여러 번 결혼했지만, 부인들이 모두 행방불명되는 수상한 인물입니다. 새로 결혼한 부인에게 성 안의 모든 방 열쇠를 주면서도, 유독 한 방만은 절대로 열어보지 말라고 엄하게 당부합니다.

 

하지만 부인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금지된 방을 열어보게 되고, 그 안에서 푸른 수염이 과거에 살해했던 부인들의 시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결국 부인 또한 푸른 수염에게 살해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극적으로 구조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동화에서 '푸른 수염'은 단순히 푸른색 수염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숨겨진 잔혹함이나 폭력성을 가진 인물을 상징하게 됩니다. 그리고 '열지 말아야 할 방'은 상대방의 숨겨진 치부나 비밀, 또는 금기시되는 영역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현대에서는 "푸른 수염 같은 남자"라고 하면, 겉으로는 매력적이지만 실제로는 위험하고 비밀스러운 과거를 가졌거나, 배우자에게 폭력적이거나 지배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종의 "조심해야 할 위험한 인물"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푸른 수염의 방' 속 홍선주 작가의 메시지

홍선주 작가는 단편 푸른 수염의 방을 통해 고전 동화 '푸른 수염' 이야기를 현대 한국 사회의 미스터리 장르로 성공적으로 재해석합니다. 단순히 옛이야기를 차용하는 것을 넘어, '푸른 수염'이라는 상징이 본래 내포했던 어둡고 잔혹한 인간 본성의 면모를 날카롭게 파고듭니다.

 

작가는 가출 청소년을 표적으로 삼는 현대 사회의 연쇄살인범으로 '푸른 수염'을 구현해냈습니다. 소설의 제목인 '푸른 수염의 방''들여다보지 말아야 할 기억의 방'을 상징하며, 원작 동화에서 금지된 방이 비밀과 과거를 담고 있듯이, 이 소설에서는 억압되고 숨겨진 기억들이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히 작가는 연쇄살인범의 심리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장악해나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하여, 독자로 하여금 미스터리 장르 특유의 긴장감과 심리적 몰입감을 경험하게 합니다. 독자들은 작품 속 '푸른 수염'과 같은 인물을 통해,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숨겨진 위험과 어두운 욕망의 그림자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G선상의 아리아 : 바흐의 선율 속 감춰진 미스터리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가 바이올린의 가장 낮은 G현 하나만으로도 깊은 울림과 서정성을 선사하듯이, 홍선주 작가는 이 작품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인간 내면의 복잡한 감정선과 미묘한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미스터리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서정적인 제목 뒤에 감춰진 인간 심연의 비밀을 파고드는 작가 특유의 스타일이 이 작품에서도 돋보입니다.

 

이 작품은 속도감 있는 사건 전개보다는 인물의 감정선과 관계의 미스터리를 천천히 음미하며, 음악적 비유를 통해 삶의 아이러니와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풀어도 풀어도 결국 끝이 묶여 있는 매듭이라면 푸는 의미가 없으니까"

 

소설 속 문장에서 보이듯 인간 내면의 복잡한 엉킴을 굳이 풀어내려 하지 않는 듯한, 담담하면서도 철학적인 성찰을 엿보게 합니다.

 

기억'이라는 핵심 테마의 반복적 활용

푸른 수염의 방에서도 '기억'은 인물의 본질과 서사를 이끄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G선상의 아리아에서도 인물들의 '기억'이 왜곡되거나 숨겨지면서 미스터리를 심화하고, 결국 이 기억들을 따라가며 진실에 도달하게 하는 장치로 활용됩니다. 이는 '기억'이 단순히 과거의 회상이 아니라, 현재의 인물과 사건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임을 보여줍니다.

 

관계와 모순에 대한 통찰

미스터리라는 장르의 틀을 빌려, 작가는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갈등, 오해, 그리고 비극적인 아이러니를 깊이 있게 다룹니다. 사건의 표면보다는 그 아래에 놓인 인간 본연의 모순과 비극성에 주목하며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연모 : 반전을 거듭하는 심연의 스릴러

단편 연모는 그 자체로 강렬한 스릴러적 매력을 발산하는 작품입니다. 반전 요소가 상당히 많아 독자를 끊임없이 놀라게 하며, 독자는 작가가 상상하는 지점을 한 발짝 앞서가는 반전들을 통해 이야기의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한 채 추리 욕구를 자극받게 됩니다. 작품 속 인물의 심연을 따라가며, 미스터리 소설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홍선주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연모역시 '사이코패스의 심리', '뒤틀린 욕망과 심리' 등을 다루는 심리 스릴러임을 고려할 때, 이 작품은 예측할 수 없는 전개와 인간 심리의 어두운 단면을 탐구하는 매력이 돋보입니다.

 

제목의 이중적 의미

이 작품의 제목 '연모는 겉으로 드러나는, 혹은 기대되는 의미는 표면적으로는 그리움, 사랑, 순애보 같은 낭만적이거나 애틋한 감정을 연상시킵니다. 이는 독자가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일반적인 기대입니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뒤틀린 의미는 이러한 순수하고 아름다웠어야 할 감정이 파괴적이고 잔혹한 행동의 동기로 변질되어 사용되는 듯합니다. 마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범죄처럼요. 작가는 이러한 단어의 이중성을 활용하여 독자에게 역설적인 긴장감과 소름 끼치는 아이러니를 선사합니다.

 

작가는 친절하게도 작품의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마무리합니다. 이는 아름다운 제목 뒤에 숨겨진 차갑고 계산적인 악의를 암시하며, 작품의 심리적 충격을 극대화합니다.

연모(淵謨) : 깊은 계교, 계책

 

 최고의 인생 모토 : 예측 가능한 '효율' 속 날카로운 풍자

현대 사회의 아이러니를 날카롭게 꼬집는 블랙코미디적인 성격이 짙은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초반부터 결말이 짐작되는 흐름으로 진행되며, 예측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결과로 마무리됩니다. 최고의 인생 모토'효율'을 인생 최고의 가치로 삼는 직장인 안선웅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안선웅은 자신의 '효율' 지상주의가 얼마나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고 이기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독자들에게 공감보다는 답답함이나 분노를 유발하며, 그가 맞이할 결과를 자연스럽게 짐작하게 합니다. 이처럼 예측 가능한 결말은 자칫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작가는 이를 특유의 풍자와 위트로 풀어내며 오히려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합니다. 안선웅의 '정신 나간' 행태를 지켜보던 독자들은 결국 그가 맞이하게 되는 당연한 '파멸'과 같은 결말에서 통쾌한 '사이다'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비록 예측 불가능한 반전은 없지만, 작가의 사회 현상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비판적 시각을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롭게 담아내는 작품입니다. 미스터리적인 서스펜스보다는 현대인의 단면을 풍자하며 웃음과 함께 깨달음을 얻고 싶은 독자에게 이 단편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 것입니다. 이는 작가가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와 소통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라지 않는 아이 : 슬픔의 무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제목이 내포하는 깊은 의미와 아픔을 체감하게 됩니다.

비록 이전 작품들처럼 강렬한 반전이나 추리 요소를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지만,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슬픔과 잔잔한 비극성은 독자의 마음을 울립니다. 특히 '기억'을 중요한 테마로 다루는 작가의 성향을 고려할 때, 이 작품에서도 자라지 않는 아이와 관련된 기억들이 어떻게 인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서사를 이끌어가는지 주목해볼 만합니다.

 

 

홍선주 작가의 푸른 수염의 방'기억'이라는 핵심 테마를 여러 단편에서 반복적으로 활용합니다. 기억이 인물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사건의 실마리가 되며, 때로는 왜곡되면서 진실을 가리기도 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다룹니다. 인물들의 숨겨진 기억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에 흥미를 느끼는 독자에게 이 단편집은 깊은 사유의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채로운 장르적 재미를 동시에 추구하는 독자에게 최고의 선택이 될 것입니다.

 

푸른 수염의 방은 이런 독자에게 추천합니다.

  • 심리 미스터리와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탐구하는 분
  • 다양한 장르적 스펙트럼과 풍부한 감정을 경험하고 싶은 분
  • 사회 비판적 시각과 날카로운 통찰을 선호하는 분

 

푸른 수염의 방을 통해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과 예측 불가능한 심리 스릴러의 매력을 느끼셨다면, 정유정 작가의 28또한 탁월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28극한의 재난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의 민낯사회 시스템의 취약성을 섬뜩할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내며, 독자들에게 깊은 심리적 충격을 선사할 것입니다.

정유정『28』극한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의 민낯 - 악의3부작 리뷰 보기

 

정유정 <28> 극한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의 민낯-악의3부작

소설 『28』은 작품의 배경이 되는 가상 도시 화양시에서 발생한 전염병의 지속 기간인 '28일'을 의미합니다. 이 소설은 전염병 통제라는 명목 아래 28일 동안 고립된 화양시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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