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추리소설의 대가로 잘 알려진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교적 현실적인 배경 속에서 불륜, 미스터리, 인간 심리를 다룬 작품으로 2007년에 출간됐고, 2011년에 일본에서는 영화화되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사건 해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인간 심리와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섬세하게 풀어내는 작품을 쓰기도 하는데 『새벽 거리에서』는 그런 그의 면모가 잘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어둡고 조용한 ‘새벽 거리’라는 현실적인 장소는 인간 내면의 외로움과 불안을 상징하듯 그려집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작품을 통해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삶 이면에 숨겨진 진실과 감정을 조명합니다. 『용의자 X의 헌신』처럼 강렬한 트릭이나 충격적인 결말이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감정의 미세한 균열이 쌓이고 터지는 과정은 오히려 더 현실적이고 공감됩니다.
평범한 건설회사 주임인 와타나베는 회사 직원 아키하와 불륜 관계에 빠지게 되지만, 그녀에겐 의문의 살인사건 용의자였던 과거가 있습니다.
겉보기엔 연애소설 같지만, 뒤로 갈수록 점점 미스터리와 심리극이 섞이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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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
소설을 읽다 보면 불륜에 대하여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몰아가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자신들은 원래는 도덕적이고 그 감정이 형편없고 나쁜 짓이며, 인륜에 어긋나고, 사람으로 해야 할 도리를 저버리는 것을 알지만, 같이 있으면 행복하다는 말로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제어 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사건이 터진 뒤 그들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비슷한 말을 반복합니다. 마치 정해진 대본이라도 있는 듯이….
소설 속에서조차도 변명은 언제나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그들의 선택에 담긴 감정의 결을 이해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 선택에 고개를 끄덕일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마음이 향하는 방향에는 분명 이유가 있지만, 그 방향으로 내 발걸음을 옮길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변명에는 조금도 공감할 여지가 없고 그저 공허한 변명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그 선택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새벽 거리에서는 단숨에 읽어 내려갈 만큼 흡입력이 뛰어납니다. 치밀하게 구성된 전개와 인물 간의 팽팽한 심리전은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멈출 수 없게 만듭니다. 특히 감정의 격류 속에서 터져 나오는 갈등과 선택의 순간들은 독자에게 깊은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핵심을 이루는 인물들의 선택이나 그들이 내리는 결론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감정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그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소설이 주는 재미와 감동은 분명했지만, 그 여운 속엔 묵직한 물음표가 남습니다.
감상 포인트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본격 추리소설은 아닙니다.
오히려 심리 묘사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으며, 주인공의 혼란과 고독이 독자의 감정선을 깊이 자극합니다. 주인공 1인칭 시점으로 심리 묘사가 섬세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 넘기 전에는 그 경계선이 높은 벽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단 넘어 버리자 실제로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고, 벽은 스스로 만들어 낸 환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P80
『새벽 거리에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또 다른 대표작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불륜을 가지고 시작하지만 읽고 나면 심리 미스터리라는 말이 생각나게 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 흔하지 않은 감정선에 초점을 맞춘 장르로 트릭 없이도 독자의 마음을 훔칠 수 있는 것을 증명한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단순히 범인을 찾는 이야기가 아닌,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이야기 그렇게 독자에게는 새로운 방식의 몰입감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 사랑을 끝까지 믿을 수 있는가?
유미코가 아련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새벽 거리에서』에서 유미코가 와타나베의 불륜 사실을 알았는지 여부는 작품 속에서 명확하게 언급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행동과 분위기, 묘사를 통해 '알고 있을 가능성'을 은근히 암시하죠.
- 유미코의 시선이 묘하게 느껴진다거나,
- 과하게 평온하고 조용한 반응을 보인다거나,
- 남편이 돌아왔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지만, 그 속을 알 수 없는 모습 등이 그것이에요.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작품에서 ‘모든 걸 말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여운과 독자의 상상을 유도합니다.
그래서 유미코가 알고 있었는지, 모른 척한 건지, 진짜 몰랐던 건지는 독자의 해석에 맡기는 구조입니다.
조용한 모든 것이 묘하게 단단함과 슬픔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죄의 그림자를 짊어진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서 겪는 복잡한 감정선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또 다른 작품 『편지』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표현된 바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용서’와 ‘믿음’의 경계를 무겁게 다루고 있어요.
남겨진 범죄자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평생 낙인찍힌 인물의 삶을 따라가며 또 다른 방식의 고통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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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문장 줍기
"가능하지도 않은 일을 하려고 하거나 서둘러 결과를 얻으려 하다 보면 반드시 파탄에 이르게 되죠. 뭐든지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p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