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 Review/일본소설 - 히가시노 게이고

히가시노 게이고 『하쿠바산장(백마산장) 살인사건』 고립된 밀실 속, 인간 본성을 탐색하다

by handrami 2025. 8. 19.

제목으로 엿보는 작품의 이력: '백마'에서 '하쿠바'

히가시노 게이고 '하쿠바산장 살인사건' 책표지 편집한 이미지
Copyright ⓒ 1986 Higashino Keigo / 2008년/2020년 옮긴이 민경욱 출판 RHK

 

하쿠바 산장 살인사건1986년에 발표된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초기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한국에서는 처음, 2008년 랜덤하우스코리아를 통해 출간되었을 당시, 일본어 한자 표기인 '白馬(하쿠바)'를 직역하여 백마산장 살인사건이라는 이름으로 독자를 만났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2020, 알에이치코리아에서 개정판을 선보이면서 하쿠바 산장 살인사건이라는 현재의 제목으로 재출간되었습니다. 이는 일본어 원제 발음인 '하쿠바'를 그대로 살린 것으로, 원작의 고유한 어감을 존중하고 작품 본연의 느낌을 살리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제목이 변경되는 과정은 단순히 책의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라, 작품을 바라보는 출판사의 시점과 독자들이 원작에 더욱 가깝게 다가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비록 제목은 바뀌었지만, 고립된 산장에서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미스터리와 인간 심리의 복합적인 탐구는 그대로 남아 독자들에게 변함없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하쿠바산장 살인사건 책표지
백마산장 살인사건 책표지
2020년 옮긴이 민경욱 출판 RHK 2008 옮긴이 민경욱 출판 RHK

미스터리의 시작: 머더구스 펜션과 나오코의 여정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하쿠바 산장 살인사건은 독특한 설정과 복합적인 서사로 독자들을 몰입시키는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오빠의 갑작스러운 자살에 의문을 품고 '머더구스 펜션'을 찾아간 여대생 하라 나오코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펜션의 이름처럼, 각 객실에는 영국의 구전 동요인 '마더구스'의 노랫말이 걸려 있으며, 이러한 고립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단순한 살인 이상의 심리적 깊이를 탐구하게 만듭니다.

 

언어의 유희, 추리의 퍼즐: 이해와 몰입의 경계에서

이 소설의 가장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머더구스 동요와 '이로하우타(いろは)'와 같은 언어유희를 추리 요소로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이들이 사건 해결의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히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는 점을 고백합니다. 이처럼 추리 과정에서 복잡한 암호나 언어적 장치들이 등장할 때, 독자들은 때때로 작가의 의도를 완벽히 따라가지 못해 아쉬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독서를 계속하는데 아무 상관이 없었던 것처럼, 이 작품은 언어적 퍼즐을 푸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도 충분히 스토리에 몰입하고 그 속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가 단순히 트릭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캐릭터와 서사 자체의 매력으로 독자를 끌어당기는 뛰어난 이야기꾼임을 증명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립된 공간, 얽히고설킨 인간관계와 진실

펜션이라는 한정된 공간, 그리고 반복적으로 같은 시기에 모이는 특정 인물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살인 사건들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 들어가며 미스터리의 층위를 더해갑니다. 이러한 다층적인 사건의 전개는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예측을 어렵게 하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듭니다. 밀실 살인이라는 고전적인 설정 위에 심리적인 긴장감과 과거의 비밀이 겹쳐지면서, 단순한 추리극을 넘어 인간 관계의 복잡성과 숨겨진 진실에 대한 탐색이 이루어집니다.

 

진실을 꿰뚫는 질문들: 우연인가, 의도인가?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다음 대사들은 미스터리의 본질과 인간 심리를 날카롭게 꿰뚫습니다.

"누가 울새를 죽였나? ‘그건 나’라고 참새가 말했다."

 

이 대사는 머더구스 동요에서 차용한 구절로, 사건의 배후에 숨겨진 진실과 책임 소재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단순한 동요의 가사가 살인 사건과 연결되면서, 무고해 보이는 것들 속에 숨겨진 어두운 면모를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이는 마치 일상의 우연처럼 보이는 현상 뒤에 숨겨진 인간의 의도와 본성을 탐색하는 작가의 시선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우연이라면 무서운 일이죠.” “아니요.” “우연이 아닌 경우가 무서운 일입니다."

 

하쿠바 산장 살인사건이 추구하는 미스터리의 본질을 꿰뚫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미스터리 소설에서 '우연'은 때로 진실을 가리거나 반전을 이끌어내는 요소로 사용되곤 합니다. 하지만 이 대사는 '우연이 아닌 경우', 치밀하게 계획되거나 의도된 범죄의 실체가 드러날 때의 섬뜩함을 강조합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단순한 사건의 나열을 넘어, 사건의 동기, 인간의 욕망, 그리고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의 윤리적 질문까지 던지게 만듭니다. 결국 이 작품은 단순히 범인을 잡는 과정을 넘어, 인간 본연의 악의와 복잡한 심리를 파고드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면모 또한 보여줍니다.

 

총평 : 몰입을 이끄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힘

하쿠바 산장 살인사건은 독특한 설정과 복잡하게 얽힌 플롯, 그리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대사들을 통해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일부 독자들에게는 언어적 장치나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껴질 수 있는 트릭들이 존재하지만, 그러한 요소에 얽매이지 않고 서사 자체의 흡입력과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에 집중한다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독서 경험을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이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사건의 진실 너머에 있는 인간 심연의 그림자를 마주하게 할 것입니다.

 

하쿠바(백마)산장 살인사건은 이런 독자에게 추천합니다.

  • 클래식/정통 추리 소설을 선호하는 분
  •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초기 작품 세계를 경험하고 싶은 분
  • 밀실 및 고립된 공간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분
  • 언어적 유희와 암호 해독에 흥미를 느끼는 분
  • 사건 해결을 넘어선 메시지에 주목하는 분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시리즈 3편 - 작품별 특징 & 순서 정리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시리즈 3편 - 작품별 특징 & 순서 정리

히가시노 게이고의 산장 시리즈로 불리는 3편은 일본에서 출간된 지는 오래된 소설들이다.2023년 7월 재인 출판사에서 「눈에 갇힌 외딴 산장에서」를 출간함으로써 3권 모두 번역 출간되었다.

handram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