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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히가시노 게이고 <백조와 박쥐> 침묵이 낳은 비극에 대한 고찰

by handrami 2025. 5. 30.

소설은 33년의 시간 차이를 두고 발생한 두 건의 살인 사건과 그 사건에 얽힌 인물들이 진실을 파헤쳐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과거의 죄와 진실, 그리고 그 무게를 짊어진 이들의 선택이 묵직한 울림을 남깁니다.

 

정의와 속죄의 무게가 얼마나 무겁고 아픈 것인지, 어떤 선택이 옳은가를 묻는, 그리고 끝내 답을 미루는, 윤리적 미스터리의 결정판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백조와 박쥐' 책표지 편집한 이미지
Copyright ⓒ 2021 Keigo Higashino / 2021년 옮긴이 양윤옥 출판 현대문학

작품소개

공소시효가 완료된 사건이 다른 사건으로 인해 진실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과거 ‘구라키 다쓰로’가  시라이시 겐스케의 범죄를 눈감아준 일로 인해 엉뚱한 사람이 경찰의 오인체포로 검거되고 그 억울함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지난 어느 날 시라이시가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하고 이후 조사 과정에서 구라키는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합니다.

“전부 내가 했습니다. 그 모든 사건의 범인은 나예요.” p88

 

구라키의 아들 가즈마와 시라이시의 딸 미레이는 '구라키'의 자백에 의혹을 품고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빛과 그림자, 낮과 밤, 마치 백조와 박쥐가 함께 하늘을 나는 듯한 얘기잖아요.“ p421
“빛과 그림자, 낮과 밤......, 두 사람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 두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p539

 

 

『백조와 박쥐』는 초반에 어느 정도 진실의 조각들이 드러나며, 이야기의 초점이 '누가 범인인가' 보다는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 그리고 '그 선택이 현재와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맞춰지는 구성으로 볼 수 있습니다. , 독자가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 자체보다는 인물들의 심리 변화나 관계성에 더 집중하도록 의도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가 생각났습니다. '나오키'와 함께 절망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살인자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이라는 이유로 함께 형벌을 짊어질 수밖에 없음에 안타까워했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죄와 벌, 가족을 다루지만, 『편지』가 범죄자의 가족이 겪는 사회적 낙인과 고통에 집중한다면,『백조와 박쥐』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과거의 죄가 현재에 미치는 영향과, 속죄 혹은 책임 회피의 방식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오인 체포와 자살로 얼룩진 사건의 책임은 경찰이며, 안타깝지만 살아 있는 사람의 행복이 우선이라는 시라이시에게 해준 구라키의 말은 몇 년이 지난 후에 그것이 큰 잘못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구라키 다쓰로의 '두 번의 선택'

첫 번째 선택 '침묵'

구라키의 침묵과 경찰의 오인 체포는 안타까운 피해자를 만들었다는 점은 소설 속에서 중요한 비극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침묵에 죄를 물을 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법적인 관점에서만 본다면 당시 상황에서 법적으로 반드시 신고해야 할 의무가 있었는지, 그리고 그의 침묵이 직접적으로 피해자의 죽음을 유발했다고 법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지 여부는 복잡한 문제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도덕적 관점에서는 구라키의 침묵은 분명한 잘못된 행동이었습니다. 그 결과에 대해서도 도덕적인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의 선택이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는 비극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소설은 이러한 도덕적 책임을 구라키가 짊어지고 고뇌하는 모습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두 번째 선택 '거짓자백'

범인을 알고 자신이 대신 자수한 구라키의 선택은 법적인 관점에서 명백한 범인은닉죄에 해당합니다.

물론 실제 재판 과정에서는 그의 범행 동기 등이 양형에 참작될 수는 있겠지만, 법적인 처벌 자체를 면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도덕적 관점에서도 진실을 은폐하고 사법 시스템을 기만하여 정의 실현을 방해했다는 점에서 도덕적으로 매우 심각한 잘못이라고 평가되며, 그의 행동은 인간적인 면에서 내면과 도덕적 딜레마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사회 공동체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의 두 번째 선택은 모든 것을 떠나 이해하기도 힘들고 화가 납니다.

그의 행동을 무책임하고 독단적인 자기만족의 선택이며, 자식에게 부모의 죄를 감내하라는 매우 전통적이고 극단적인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과거 자신의 침묵으로 인해 발생한 비극으로 발생한 가족의 고통에 대하여 속죄나 책임감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속죄의 방법이 과거의 잘못된 방법을 그대로 답습하여, 이번에는 자신의 아들 가즈마가 자신의 선택으로 겪게 될 사회적 낙인, 정신적 고통, 가족 관계의 어려움 등을 외면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많은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어려움을 감수하려고 합니다. 그 감수의 범위를 반대로 자식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까지 포함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은 구라키의 이러한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모습을 통해,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죄와 속죄, 그리고 인간의 이기심이 낳는 비극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의 행동을 '이해해야 한다'기보다는, 인간이 얼마나 복잡하고 때로는 이기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예시로 받아들이는 것이 소설의 메시지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소설이 던지는 핵심적인 메시지 살해 동기

"희미하게 웃었어."  p539

죄의 대물림과 왜곡된 영향

구라키의 과거 침묵으로 인한 죄는 단순히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그 희생자의 후손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 영향이 '고통'이 아닌 '강점'으로, 그리고 '복수'를 넘어 '살인 그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왜곡되어 나타난다는 점에서 죄가 다음 세대에 어떻게 기이한 방식으로 대물림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섬뜩한 설정입니다.

 

인간 본성의 예측 불가능성

구라키는 자신의 과거 잘못으로 인해 피해자의 후손이 고통받았을 것이라 생각하며 미안함을 느끼지만 정작 그 후손은 다른 차원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자신의 처지를 이용하려 하거나 살인에 대한 비뚤어진 흥미를 느낍니다. 이는 인간의 심리가 얼마나 다양하고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나 반응이 일반적인 기대를 벗어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회적 고통의 다양한 형태

사회적 고통을 받는 것에서 벗어나 오히려 자신의 처지를 '강점'으로 인식합니다. 이는 사회적 고통이나 불행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심리나 환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내면화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어떤 이에게는 고통이 좌절을 낳지만, 어떤 이에게는 뒤틀린 형태의 강점이나 동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히가시노 게이고의『편지』리뷰보기

<편지> 히가시노 게이고가 전하는 용서의 의미

 

 

백조와 박쥐는 이런 독자에게 추천합니다.

  • 단순한 범죄 추리보다 인간 드라마와 철학적 고민이 있는 작품을 찾는 분
  • 사회적 정의, 과거의 죄와 속죄 등의 윤리적 문제에 관심 있는 분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번에도 우리를 단순한 추리의 재미를 넘어, 인간과 사회, 정의와 속죄에 대한 깊은 고민으로 이끕니다.

백조와 박쥐는 비극적인 얽힘을 통해, 과거의 죄가 현재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그리고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