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 Review/한국소설

김내성 『마인』 한국 최초의 본격 장편 추리소설

by handrami 2025. 9. 14.

김내성 작가 마인 책표지 편집한 이미지
2022년 달다구리 출판

 

1939년 일제강점기의 엄혹한 시대 조선일보에 연재되어 발표되었습니다. 한국 최초의 본격 장편 추리소설이라는 기념비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당시의 시대적 제약 속에서도 서구 추리소설의 정교한 기법을 능숙하게 구사하면서도 한국적인 정서와 서사를 성공적으로 결합해 한국 문학의 지평을 넓혔다는 점에서 그 문학적,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 소개: 한국 추리소설의 선구자, 김내성

작가 김내성(1909-1964)은 평안남도 출신으로,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수학했습니다. 1935년 일본에서 세 편의 단편 추리소설 「타원형의 거울」, 「탐정소설가의 살인」, 「연문기담」 을 발표하며 작가의 길로 들어섰으며, 이후 조선으로 건너와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탐정 캐릭터 '유불란'을 탄생시켰습니다. 흥미롭게도 '유불란'이라는 이름은 프랑스 추리소설의 대가 모리스 르블랑(Maurice Leblanc)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작가가 서구 추리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추리 세계를 구축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미궁 속으로의 초대: 마인의 줄거리와 심오한 주제

이야기는 1930315, 매혹적인 무희 주은몽의 저택에서 열린 화려한 가장무도회에서 시작됩니다. 이 밤을 기점으로 주은몽을 둘러싼 의문의 연쇄 살인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게 됩니다. 55세의 백만장자이자 유명한 조각가인 남편 백영호를 잃은 은몽은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그녀의 주변 인물들 탐정소설가인 아들 백남수, 음악 전공의 딸 백정란, 백정란의 약혼자인 의학박사 문학수, 그리고 백영호의 고문 변호사 오상억 등 모두가 사건의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사건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한국 최초의 명탐정 유불란이 고군분투하며 숨 막히는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김내성 작가는 치밀하게 짜인 플롯과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을 통해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범인의 정체를 추리하게 만듭니다. 사건의 진실에 한 발짝 다가설수록 증폭되는 긴장감을 탁월하게 조절하며 독자를 흡인력 있게 이끌어 갑니다.

 

마인은 단순히 범인을 찾아 사건을 해결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작품의 제목인 '마인(魔人)'이 암시하듯, 인간 내면의 어둡고 복잡한 심리를 심도 있게 탐구합니다. 인간이 지닌 악마적인 욕망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비극적 결말을 예리하게 꿰뚫어 보며, 이는 사건의 표면적인 해결을 넘어 인간 본연의 본성과 심리적 갈등까지 다루며 독자에게 깊은 사색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당시 문학계의 주류였던 순수문학과는 다른, 새로운 대중문학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 또한 이 작품이 가진 중요한 의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학적 특징: 시대를 초월한 추리소설의 매력

김내성 작가의 유려하면서도 간결한 문체와 흡인력 있는 서술 방식은 독자들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건의 전개에 따라 치밀하게 짜인 복선과 적절한 시점에 터지는 반전은 독자들의 추리 욕구를 자극하며,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듭니다. 이 소설은 1930년대의 언어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동시에, 시대를 초월한 추리소설의 본연의 재미를 선사한다는 점에서 고전으로서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독특한 문학적 표현들은 독서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합니다.

 

"꿈과 같은 백요(白妖)의 세계, 멀리 서울 시가의 울긋불긋한 네온이 호화롭게 흐른다." 주은몽이 한강을 바라보는 이 장면에서의 '백요(白妖)의 세계'라는 표현은, 매혹적이고 황홀할 만큼 아름답지만 동시에 비현실적이고, 어쩌면 위험하거나 공허할 수 있는 환상적인 세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는 은몽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와 소설 전체의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저릿저릿한 속력을 내어 점점 깊어가는 밤공기를 칼로 베듯이 날아간다." 생생한 비유를 통해 시간의 흐름과 긴박감을 시각적으로 그려내는 작가의 탁월한 묘사력을 보여줍니다.

 

"백정란은 결혼행진곡 대신 장송행진곡을 연주하라는 협박장을 받아 경찰에 넘긴다. 일주일 후 결혼식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피아노는 정란의 동무가 연주합니다." 이러한 사건은 작품 속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장치이자,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갈등과 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얽히게 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독자들을 ×× 서 사법 주임실로 인도하고자 한다" 이는 서술자의 직접적인 개입과 고전적인 문체의 특성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러한 문체는 일제강점기 등 근대 초기에 창작된 소설에서 자주 발견되는 특징으로, 당시에는 감정이 풍부한 수식어나 운율을 살린 문장, 그리고 독자를 직접 호명하는 방식 등이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현대의 절제되고 간결한 문체와는 사뭇 다른, 독자와 더욱 긴밀하게 소통하려는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외국 소설이 훌륭한 번역을 거쳐 우리말로 옮겨지더라도, 그 과정에서 원문의 미묘한 정서나 문화적 뉘앙스가 완전히 보존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단어 하나, 문장 구조 하나에 담긴 문화적 배경과 정서적 울림은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만이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김내성 작가의 마인처럼 오랜 시간과 문학적 전통을 거쳐온 한국 작가의 작품을 접할 때는 이러한 차이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방금 이야기 했던 서술자의 직접적인 개입이나 독자와의 교감 시도 같은 문체는 당시 한국 사회의 정서와 가치관, 그리고 소설이 대중에게 소비되던 방식 등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는 번역을 통해 전달하기 힘든, 우리 문학의 독특한 호흡과 리듬감을 형성합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단순히 스토리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작가가 살았던 시대의 공기와 숨결, 언어가 가진 고유한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독자는 번역이라는 필터를 거치지 않고 우리말의 결을 따라 작가의 의도와 당시의 시대상에 더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는 특별한 감각을 느끼게 됩니다. 이는 마치 고미술품을 대하듯, 오랜 세월을 견딘 유물을 직접 만나는 듯한 깊이와 감동을 선사합니다. 오래된 우리 소설은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결정체이기에, 그 속에서 느껴지는 정서적 유대감과 문학적 아름다움은 그 어떤 번역 작품에서도 대체될 수 없는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인이 한국 추리문학사에 남긴 발자취: '최초의 본격 장편 추리소설'이 된 이유

김내성 작가는 한국 추리소설의 선구자로서 마인이전에도 여러 추리적 요소를 담은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마인(1939)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유일한 추리소설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인"최초의 본격 장편 추리소설"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로 '본격''장편'이라는 수식어가 갖는 특별한 의미에 있습니다.

1. '본격(本格)' 추리소설로서의 완성도

김내성 작가는 일본 유학 시절부터 서구 추리소설의 흐름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반 다인의 20'과 같이, 독자와 탐정이 동일한 단서를 가지고 추리 경쟁을 펼치는 '본격 추리소설'의 형식을 한국 문학에 최초로 완벽하게 구현한 작품이 바로 마인입니다. 이전의 추리소설들이 대개 탐정 소설의 형태를 띠거나 사건의 해결보다는 모험이나 흥미로운 이야기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었다면, 마인은 치밀한 플롯과 공정한 단서 제시, 그리고 논리적인 추리 과정을 통해 독자에게 지적인 유희를 선사하는 '본격 추리소설'의 정수를 보여주었습니다.

2. '장편(長編)' 추리소설로서의 규모와 영향력

마인1939조선일보에 장편으로 연재되면서 당시 많은 독자들에게 폭넓게 읽히고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전의 작품들은 단편이거나 연재작이라 하더라도 마인처럼 사회 전반에 걸쳐 추리소설 장르의 가능성과 대중성을 각인시키는 데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마인은 그 규모와 문학적 완성도 면에서 한국 추리 문학의 이정표를 세웠다고 평가받습니다. 출간 5년 만에 18, 광복 후 30판을 찍을 정도로 당대 최고의 화제작이었습니다.

3. 한국적 요소와의 성공적인 조화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도 서구 추리소설의 기법을 능숙하게 활용하면서 동시에 한국적인 정서와 서사를 성공적으로 결합했다는 점도 중요한 평가 요소입니다. 단순히 서구 장르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와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큽니다.

 

마인이전에 발표한 단편 추리소설이나 가상범인(1937)과 같은 작품들을 통해 이미 추리소설 작가로서의 역량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마인만큼 '본격적'이고 '장편'으로서의 구조적 완결성과 대중적 영향력을 갖지는 못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마인은 한국 추리문학의 발자취에서 특별히 "최초의 본격 장편 추리소설"이라는 기념비적인 타이틀을 얻게 된 것입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이후 김내성 작가는 추리소설 장르를 점차 떠나 다른 문학 활동을 하였으며, 그의 탐정 캐릭터 유불란도 마인이후 다시 등장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작품 속에서 유불란이 '탐정 폐업 선언'을 하며 추리소설에 대한 작가의 작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결론: 한국 추리문학의 빛나는 고전

결론적으로 마인은 한국 추리문학의 선구자적 위치를 확고히 한 작품이자, 장르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준 기념비적인 성과입니다. 과거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현대 독자들에게 여전히 흥미와 깊이를 제공하며, 한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 고전으로 평가받아 마땅합니다. 이 소설은 추리소설 팬뿐만 아니라 한국 문학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반드시 한 번쯤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인은 이런 독자에게 추천합니다.

  • 한국 추리문학의 시작과 발전에 관심이 많은 분
  • 탄탄한 플롯과 반전이 있는 고전 추리소설을 선호하는 분
  • 단순한 사건 해결을 넘어 인간 심리의 복잡성을 탐구하는 작품을 찾는 분
  • 일제강점기 시대의 문화와 언어적 특징을 문학 속에서 경험하고 싶은 분

 

 

반 다인의 "추리소설 20칙"을 아시나요?

추리소설을 읽으며 탐정이 된 기분이 들지 않으세요? 작가가 숨겨놓은 단서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범인을 추리하는 그 과정이 정말 짜릿한데요. 사실 이런 추리소설에는 작가와 독자 사이에

handrami.com

 

 

최초의 추리소설 :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

추리소설의 역사에서 최초의 작품으로 널리 인정받는 것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가 1841년에 발표한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The Murders in the Rue Morgue)'입니다.『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이

handrami.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