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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한국소설

정명섭 『기억 서점』 잔혹한 기억 넘어 살인자를 기다리는 서점

by handrami 2025. 10. 17.

정명섭 작가의 장편 소설 기억 서점은 낡은 책장이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끔찍한 진실들을 숨겨두듯, 독자들의 잔혹한 기억 깊숙한 곳을 뒤흔드는 강렬한 미스터리 스릴러입니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강렬한 감정인 '복수'를 중심으로 치밀하게 직조된 이 작품은, 단순히 범인을 추적하는 것을 넘어 상실과 고통이 어떻게 끈질긴 집념과 냉혹한 복수심으로 변모하는지를 섬뜩하리만치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정명섭 기억서점 책표지 편집한 이미지
2021년 출판 시공사

한순간의 비극, 15년 복수의 설계

소설은 우리가 무심코 저지른 한순간의 '짜증과 배려 없는 행동'으로 인해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악의를 건드려 가족을 잃는 악몽 같은 비극으로 이어지면서 시작됩니다. 이로 인해 삶이 송두리째 파괴된 주인공의 내면에는 일반적인 슬픔을 넘어선, 오직 복수만을 향한 강렬한 불꽃이 피어오릅니다. 주인공은 감당할 수 없는 상실과 고통을 '치유'하는 대신, 오히려 이를 복수를 위한 강력한 동력으로 삼습니다. 무려 15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그는 복수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철저하게 자신을 단련하고 사회적 '유명세'까지 얻으며 치밀한 계획을 실행에 옮깁니다. 이는 살인마를 향한 복수가 단순한 감정적 폭발이 아닌, 냉정하고 계산된 프로젝트임을 암시합니다.

 

기억 서점, 살인마를 위한 복수의 덫

복수의 핵심 무대는 다름 아닌 주인공이 운영하는 '기억 서점'입니다. 고서적에 대한 살인마의 광적인 집착을 간파하고, 그를 유인하기 위해 설계된 거대한 덫인 이 서점은 단순한 오래된 책들의 보관처가 아닙니다. 낡은 고서점의 책장들은 살인마가 발을 들여놓을 그 순간을 '기다리는' 은밀한 감옥이자, 냉혹한 복수극이 펼쳐질 섬뜩한 무대로 기능합니다. 이 과정에서 '기억'은 주인공에게 단순한 과거의 회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워지지 않는 잔혹한 고통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복수를 향한 집념을 끊임없이 재점화하는 연료가 됩니다. 주인공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기억 속에서 살인마의 흔적을 쫓고 그의 약점을 파악하며, 복수 계획을 정교하게 다듬어 나갑니다. 이는 '기억''치유의 도구'가 아닌, '복수를 위한 철저한 분석과 실행의 도구'로 활용되는 잔혹한 아이러니를 보여줍니다.

 

결국 기억 서점은 주인공이 자신의 상실감을 복수의 명분으로 삼고, 모든 것을 바쳐 살인마를 유인하여 그에게 가장 치명적인 방식으로 복수를 행하는 일련의 과정을 냉혹하게 따라갑니다. 이 작품은 복수의 서사 속에서 기억의 잔혹한 본질과 인간 집념의 극단을 탐구하는, 매우 어둡고 강렬한 복수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요 주제와 핵심 메시지

기억 서점이 다루는 가장 중요한 주제는 바로 '기억'의 양면성입니다. 소설은 기억이 가진 양날의 검과 같은 속성을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한편으로는 주인공이 가족을 잃게 된 비극적인 사건의 한복판에 놓여 있으며, 이 모든 비극의 중심에 고서적에 집착하는 살인자가 등장합니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 작품은 기억이 때로는 과거의 아픈 상처를 끊임없이 소환하여 우리를 짓밟는 잔인한 것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작가는 고서적에 얽힌 잔혹한 사건과 주인공이 겪는 깊은 상실감을 통해, 기억이 인간에게 드리울 수 있는 어둡고 파괴적인 그림자를 매우 설득력 있게 묘사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소설은 상실과 슬픔에 잠긴 주인공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복수의 원동력으로 삼아 직시하고, 그 기억을 통해 살인자를 향한 집념을 불태우며 삶의 목적(복수)을 재발견하는 과정을 핵심 메시지로 전달합니다. 결국, 기억 서점은 기억이 비록 깊은 고통을 주기도 하지만, 그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복수의 설계도를 완성하고 잔혹한 정의를 실행하는 과정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강력하게 역설하는 작품입니다. 주인공은 살인자의 흔적을 좇아 '기억 서점'을 열고 고서적으로 살인마를 유인해 복수를 계획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상실을 복수의 명분으로 삼고, 살인마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통찰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작품의 특징과 작가의 다른 작품과의 차이

정명섭 작가는 다양한 장르와 소재를 아우르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기억 서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고서적'이라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소재를 미스터리 장르에 효과적으로 접목했다는 것입니다. 살인자가 고서적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고, 주인공이 고서점을 운영하며 사건의 단서를 찾아 나서는 설정은 여타 추리 소설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 작품만의 차별점입니다. 또한, 그림처럼 선명하게 장면들이 그려지는 유려한 문체는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한층 높여줍니다.

 

정명섭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기억 서점이 지니는 가장 큰 차별점은 바로 서술의 잔혹함과 그로 인한 무게감입니다. 예를 들어 76층 탐정'금수저 탐정'이라는 신선한 캐릭터가 고급 아파트라는 배경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날카로운 추리력으로 해결해 나가는 통쾌하고 정통 추리극적인 재미를 선사합니다. 이 작품이 주로 '사건 해결''지적 퍼즐 맞추기'에 집중한다면, 기억 서점은 잔혹한 살인 묘사와 섬뜩한 설정을 통해, 단순히 범인을 찾아내는 것을 넘어 인간 내면에 깊이 각인된 트라우마와 상실의 고통을 훨씬 직접적이고 강렬하게 다룹니다.

 

또한 유품정리사는 망자의 유품을 통해 삶의 의미와 위로를 탐색하는 감성적이고 휴먼 드라마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죽음 이후 남겨진 흔적에서 삶의 지혜를 발견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조용히 귀 기울이는 다소 차분하고 성찰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반면, 기억 서점은 상실을 복수로 전환하는 서사를 다루며, 그 과정은 훨씬 격정적이고 때로는 잔인하게 펼쳐집니다. 고서적에 집착하는 살인마와 그를 쫓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비극이 뒤얽히며 독자를 불편하고 긴장된 상태로 이끕니다. 기억 서점의 잔혹한 서술은 단순히 스릴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기억이 어떻게 복수의 불씨를 지피고, 그 복수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집요하게 이어질 수 있는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이처럼 기억 서점은 정명섭 작가 특유의 탄탄한 미스터리 구조와 날카로운 통찰력을 유지하면서도, 더욱 깊고 어두운 인간 심연과 과거의 잔혹한 기억을 복수의 명분으로 삼아 직시하는 독특한 시도를 선보입니다. 이는 76층 탐정의 유쾌한 탐정 활극이나 유품정리사의 따뜻한 휴머니즘과는 다른, 훨씬 무겁고 심도 있는 접근 방식으로, 작가의 작품 세계에 새로운 깊이를 더하는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기억 서점은 이런 독자에게 추천합니다.

●  복수극의 치밀한 설계와 잔혹한 실행 과정을 선호하는 분

이 작품은 단순한 사건 해결을 넘어, 비극적인 상실이 어떻게 복수의 강력한 동기로 작용하고, 그 복수가 끈질긴 집념과 치밀한 계획으로 이어지는지를 심도 있게 탐구합니다. 복수 서사의 본질과 심리적인 깊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탁월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상실감을 복수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인물에 공감하고 싶은 분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깊은 상실감에 빠진 주인공이 복수의 길로 나아가는 과정이 섬세하게 그려집니다. 인생의 아픔과 고통 속에서 '잔혹한 정의'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강렬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소 어둡고 잔혹한 묘사를 통해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거부감이 없는 분

이 작품에는 때로는 잔혹하게 느껴질 수 있는 묘사가 등장합니다. 이는 기억의 잔인함과 상처의 깊이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이므로, 이러한 서술 방식이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몰입할 수 있는 독자에게 적합합니다.

 

  정명섭 작가의 작품 세계의 새로운 면모를 경험하고 싶은 기존 독자분

기존에 76층 탐정이나 유품정리사등을 읽고 작가의 문체와 스토리텔링에 매력을 느꼈던 독자분들이라면, 기억 서점을 통해 작가의 더 깊고 어둡고, 복수심으로 가득 찬 심연을 탐색하는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는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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