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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한국소설

정해연 <못 먹는 남자> 죽음을 미리 아는 남자의 고통과 선택의 서사

by handrami 2025. 6. 28.

독특한 설정과 치밀한 서사로 독자를 단숨에 몰입시키는 정해연 작가의 못 먹는 남자, 음식을 섭취할 때마다 타인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윤리적 딜레마와 운명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특수 설정 스릴러입니다.

정해연 '못 먹는 남자' 책표지 편집한 이미지
Copyright ⓒ 2023 정해연 출판 문학동네

작품소개

소설은 시작과 함께 주인공 민제영의 모습을 통해 2014년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염전 노예 사건을 언급하며 시작합니다. 이 사건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 유린과 착취, 그리고 이를 방조하거나 해결하지 못한 시스템의 부조리를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입니다. 작가는 이러한 현실의 비극을 서사에 녹여내어 독자들에게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는 동시에, 우리가 외면해 왔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합니다. 실제 사건을 배경에 활용함으로써 이야기에 현실감을 부여하고 몰입도를 높이는 효과도 거두고 있습니다.

 

민제영은 어느 날부터 음식을 먹을 때마다, 아는 얼굴들의 죽음의 순간을 환영처럼 보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환상이 아닌, 실제로 발생할 죽음의 예고임이 드러납니다. 이 기이한 능력은 그가 어린 시절 화학 공장에서 겪었던 사고와 연관이 있습니다. 당시 그는 공장에서 만난 소년과 함께 실수로 화학 가스를 방출했고, 다량의 화학 물질에 노출되는 사고를 당합니다. 이 사고 이후 제영은 음식을 먹을 때마다 눈동자의 흰자위가 드러나며 죽음의 순간을 목격하게 되는 저주와도 같은 능력을 지니게 됩니다.

 

소설은 이 독특한 설정에서 비롯되는 민제영의 고뇌와 그가 마주하는 현실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음식을 먹지 않으면 죽음을 보지 않을 수 있지만, 이는 곧 생존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결국 제영은 생존을 위해 음식을 섭취하고, 그 대가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며 고통받습니다. 그는 자신이 본 죽음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며 좌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는 그가 구하고자 했던 사람 중 누구도 구할 수 없었던 현실과, 죽음의 적나라한 순간들을 보는 고통 때문이었습니다.

오히려 그의 노력은 실패와 함께 더 큰 절망을 가져옵니다.

살인자가 될지언정 죽지 않을 수 있었다. (p.40)

 

이러한 설정은 독자에게 '죽음을 미리 알 수 있는 것이 축복인가 저주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강렬한 미스터리 서스펜스를 선사합니다.

 

주요 테마 및 메시지

못 먹는 남자는 기이한 능력을 소재로 삼았지만, 이야기의 본질은 운명과 자유의지, 윤리적 책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입니다. 민제영은 타인의 죽음을 미리 알게 되지만, 그것을 막지 못한다는 무력감에 시달립니다. 이는 법칙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운명 앞에서 개인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이 작품은 앎의 무게를 이야기합니다. 죽음을 보는 능력은 제영에게 정보가 아닌 고통이 됩니다. 그로 인해 그는 사람들과 단절되고, 삶의 의미마저 잃게 됩니다. 음식을 먹지 못해 길에 쓰러질 정도의 상태에 이르는 모습은, 특별한 능력이 오히려 인간을 파괴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는 정보의 과잉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이 반드시 직면해야 할 질문으로도 확장됩니다. 우리는 과연 모든 진실을 알아야 할까?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른 채 살아갈 것인가?

 

이와 같은 질문은 소설 속 인물의 대사를 통해 작가의 메시지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어차피 사람은 누구나 죽으니, 필요하다면 선택할 수도 있는 거겠죠.
“맞아요. 사람은 누구도 영원히 살 수 없어요. 하지만 누구든 정해진 생을 살아내야 해요.” (p.135)

 

그리고 작가는 궁극적으로 다음과 같은 윤리적 질문을 던집니다.

선택지가 모두 불행하다면 선택해야 하는 것은 차악이 아니라 옳다고 믿는 신념이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다운 일이다. (p.160)

 

제영에게 이 '신념'은 아마도 자신이 직접 타인의 생명을 해치지 않는 것, 즉 살인자가 되지 않는 것일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본 죽음을 막을 수 없더라도, 직접 타인의 생명을 조절하려 들지 않습니다. 이는 도덕적 신념을 지키기 위한 인간적인 저항이며, 작가는 이를 통해 윤리적 딜레마의 깊이를 더합니다.

 

작가의 필력과 몰입도

먹을 때마다 죽음을 본다는 설정은 기발하면서도 강력한 몰입력을 자랑합니다. 작가는 제영의 심리적 고통과 외부 환경의 냉혹함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독자가 그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게 만듭니다. 간결하면서도 날카로운 문체는 스릴러 장르의 속도감을 살리고,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서사로 독자를 끝까지 끌고 갑니다. 저도 몇 시간 만에 이 소설을 완독했을 만큼 몰입도가 뛰어났습니다.

 

총평 및 추천의 변

못 먹는 남자는 단순한 오락성 스릴러를 넘어서, 삶과 죽음, 운명과 선택이라는 깊은 질문을 품은 작품입니다. 정해연 작가는 탁월한 상상력과 탄탄한 필력으로 독자의 윤리적 감각을 자극하고, 인간의 나약함과 존엄성을 동시에 그려냅니다. 제영의 고통스러운 여정은 독자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며, 책을 덮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특히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이 작품이 단순한 해피엔딩이 아닌, 끝나지 않는 고통과 운명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며, 비극적이면서도 강렬한 여운을 남깁니다.

 

강렬한 서스펜스와 심리 스릴러를 좋아하는 독자, 그리고 독특한 설정 속 인간 본성을 깊이 탐구하고 싶은 독자에게 적극 추천합니다. 정해연 작가의 팬이라면 물론, 처음 접하는 독자라도 이 작품을 통해 그의 흡인력 있는 세계관에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이 소설은 단순한 읽을거리 그 이상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독서 경험을 선사합니다.

 

못 먹는 남자는 이런 독자에게 추천합니다.

  • 심리 스릴러를 좋아하는 분
  • 특수 설정에 흥미를 느끼는 분
  • 도덕적 질문을 던지는 소설을 선호하는 분
  •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소설을 좋아하는 분
  • 단숨에 몰입해서 읽을거리를 찾는 분

우리는 모두 매일같이 무언가를 먹고 살아갑니다하지만 만약 그 한 입이, 누군가의 마지막을 보는 일이라면?

못 먹는 남자는 일상의 행위 속에 숨겨진 비극과 운명, 그리고 인간다움의 경계를 묻습니다.

이 소설은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마주할 수 있는 '죽음'이라는 진실에 대한 통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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