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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한국소설

지건&강농 『성인들을 위한 잔혹동화』 시리즈 2편 ‘죽음의 무도회’

by handrami 2025. 11. 5.

경고: 당신이 알던 동화는 여기서 죽었습니다.

 

시리즈 1권에서 우리가 마주했던 동화의 뒤틀린 민낯은 시리즈 2권 '죽음의 무도회'에서 더욱 고도화된 형태로 독자들을 찾아옵니다. 단순한 잔혹성을 넘어, 인간 내면의 복잡한 이기심과 뒤틀린 욕망이 빚어내는 새로운 차원의 비극을 탐구하는 것이 바로 2권의 특징입니다. 익숙한 이야기 속에서 새롭게 펼쳐지는 비인간적인 관계와 가치관의 전복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던 동화적 서사가 얼마나 순진한 환상이었는지를 다시금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2권은 동화라는 친숙한 틀 안에서 인간 본연의 어두운 진실을 더욱 노골적이고 치밀하게 해부하며, 우리에게 불편하지만 사유할 가치가 있는 질문들을 던질 것입니다. 이번 편은 익숙한 줄거리 저변에 깔린 인간의 나약함과 잔인함을 가차 없이 들추어내며, 왜 이 이야기가 '성인들을 위한' 잔혹동화일 수밖에 없는지 강렬하게 증명해 보입니다.

성인들을 위한 잔혹동화 죽음의 무도회 책표지 편집한이미지
Copyright ⓒ 2020 출판 씨큐브

목차

  • 양치기 소년
  • 피노키오
  • 아름다운 바실리사
  • 플란더스의 개
  • 행복한 왕자
  • 부시통
  • 정육점 집 두 아들의 아빠 놀이
  • 푸른 수염
  • 피리 부는 사나이
  • 사내아이와 물의 요정

<행복한 왕자> 씁쓸한 진실의 메시지

오스카 와일드의 원작 '행복한 왕자'숭고한 희생을 현대적이고 더욱 비판적인 시선으로 재해석하여, 개인의 선의가 사회 구조적인 문제와 인간 본연의 잔혹성 앞에서 어떻게 좌절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는 단순한 동화의 재해석을 넘어, 독자들에게 현실을 직시하고 인간 심리의 복합성을 깊이 탐구하게 하는 '잔혹동화'로서의 강력한 의의를 지닙니다.

 

이 작품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바로 사회 구조적 모순과 이로 인한 비극을 고발하는 데 있습니다. 왕자는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궁궐 밖 세상의 참상에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굶주림으로 쓰러져 죽어가는 노파, 전쟁으로 불구가 되어 거리를 떠도는 부랑자들, 빵 한 조각 때문에 아이까지 내팽개치는 극한 상황에 놓인 이들의 모습은 단순히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뿌리 깊은 빈곤과 고통, 그리고 그 속에서 파괴되어가는 인간성의 비극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이렇듯 화려한 도시 이면에 감춰진 참담한 현실을 폭로함으로써, 작품은 개인의 선한 마음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사회 구조의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습니다.

 

또한 작품은 선의와 희생의 무의미함, 혹은 그 오용과 오해라는 잔혹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왕자는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의 몸 일부를 내어주는 지고한 희생을 감행하지만, 그의 숭고한 의도는 끝내 빛을 발하지 못합니다. 금 장신구를 받은 아이는 아버지의 탐욕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고, 다리를 받은 청년은 과거의 냉대를 잊지 못해 가족과 이별하며, 귀를 받은 노인은 타인의 비난에 충격받아 자살에 이르는 비극이 연쇄적으로 펼쳐집니다. 이 장면들은 아무리 순수한 의도의 희생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욕망과 사회의 냉혹함 속에서 쉽게 왜곡되거나 무용지물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더 나아가, 백성들이 왕자의 사형 방식이 '지나치게 관대하다'고 비난하는 모습은 희생의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 본연의 이기심과 잔혹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혁명'이라는 대의명분 속에서도 빵을 위해 서로를 짓밟고, 타인의 희생을 쉽게 잊거나 외면하며 심지어 이용하려 드는 모습들은 인간의 불완전함과 이기심이 어떤 사회 시스템 아래에서도 언제든 발현될 수 있다는 냉철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전개는 원작 동화가 가진 '권선징악'이나 '희생의 미덕'이라는 클리셰를 파괴하고, 독자들에게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사회 정의란 어떻게 실현되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기존 동화의 감동적인 서사를 비틀어 불편한 진실을 제시하는 이 방식은 독자들이 고정관념을 넘어 현실 비판적인 사고를 하도록 유도하는 '잔혹동화'의 핵심적인 의의가 됩니다. 왕자의 희생이 불러온 연쇄적인 비극들은 독자들에게 강렬한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며,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과 통찰을 제공하는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그러나 이 잔혹한 이야기 속에서도 작품은 아주 작은 희망의 불씨를 남깁니다. 모두가 떠난 광장에 홀로 나타난 소녀만이 왕자의 심장을 통해 새로운 삶을 얻고, 왕자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아 '착함'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이 소녀는 왕자의 희생의 진정한 의미를 유일하게 이해하고 기억하는 존재로, 아무리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한 개인의 순수한 마음과 선한 의지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며, 미래를 향한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조용히 일깨워줍니다.

 

<사내아이와 물의 요정>

“물속에서 하는 물놀이는 놀이가 아니라 물속에서 사는 거잖아요! 요정 누나는 물고기가 물속에서 헤엄치는 게 물놀이라고 생각해요?”

 

요정은 물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들은 언제든 죽음이라는 벌이 내려질수 있다는 경고를 합니다. 흔히 동화에서 다루는 권선징악의 범주를 넘어선 잔혹한 정의에 가깝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물의 요정은 단순히 자연을 상징하는 것을 넘어, 자연의 순수함을 해치는 인간에 대한 적극적인 심판자 역할을 합니다. 물의 오염을 막지 않는 인간들을 '죽이는' 존재라는 설정은 자연의 분노가 구체적인 생명에 대한 위협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극도의 잔혹성을 보여줍니다.

 

특히, "홍수가 났을 때는 절대로 강물에 뛰어들지 말 것!"이라는 약속은 자연 재해가 단순히 우연이 아니라, 물의 소중함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응징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암시를 주어 더욱 섬뜩함을 더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내 결정에 달렸다는 말이 바로 이 약속이었어요?”

 

사내아이가 "죽고 사는 것이 내 결정에 달렸다는 말이 바로 이 약속이었어요?"라고 묻고 요정이 긍정하는 부분은, 생존이 개인의 윤리적 선택, 즉 물에 대한 태도에 달려 있음을 명확히 합니다. 이러한 선택의 결과가 '생과 사'로 직결된다는 점은 충격적이면서도 강력한 메시지로 작용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이야기는 '물의 소중함'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주면서도, 이를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위협과 연결시켜, 인간 본연의 공포심을 자극하고 사회적/환경적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하는 전형적인 잔혹동화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지건 작가
동화가 잔혹함의 끝을 본다면 어디까지 가능할까? 잔혹동화를 집필하면서 가장 고민하던 부분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잔혹함과 퇴폐미이다. 도저히 어울릴것 같지 않던 19금과 동화가 만날 때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그 반전성이라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2권은 기대와 달리 다소 난이(難而)한 독서 경험을 안겨주었습니다. 1권에서 보았던 강렬한 잔혹성과 메시지는 여전히 존재했지만, 전반적인 이야기의 흐름이나 내용 전개가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몇몇 단편은 작가가 던지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웠고, 예상했던 만큼의 심리적 깊이나 새로운 통찰이 크게 와닿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특히 '행복한 왕자'처럼 강렬하게 울림을 주는 작품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다소 모호하거나 공감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많아 저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성인들을 위한 잔혹동화』 당신이 알던 동화는 여기서 죽었습니다.

경고: 당신이 알던 동화는 여기서 죽었습니다.우리는 모두 순수한 동화 속 세상을 믿었습니다. 아름다운 표지에 이끌려, '성인들을 위한 잔혹동화'라는 19금 꼬리표가 붙은 이 책을 집어 든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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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건&콕콕 『성인들을 위한 잔혹동화』 시리즈 1편

경고: 당신이 알던 동화는 여기서 죽었습니다.씨큐브 출판사의 '성인들을 위한 잔혹동화' 시리즈를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전 리뷰에서 전체를 다루었다면 이 리뷰는 각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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