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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그리다

책속의 한 문장 캘리그라피: 『새벽 거리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by handrami 2025. 6. 24.

책을 읽다, 문장에 멈춰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순간을 손글씨로, 때로는 사진과 음악으로 기록하려 합니다. 이곳은 책을 그리는공간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새벽 거리에서에서 제 마음을 건드린 한 문장을 소개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새벽거리에서' 소설 속 한문장 제작 이미지
히가시노 게이고 '새벽거리에서' 중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의 양면성: 삶의 지혜인가, 파멸의 변명인가

가능하지도 않은 일을 하려고 하거나 서둘러 결과를 얻으려 하다 보면 반드시 파탄에 이르게 되죠. 뭐든지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p.129)

 

이 문장은 언뜻 보기에 삶의 순리를 따르고 인내하며, 조급함을 버리고 때를 기다리라는 깊은 지혜를 담고 있는 듯합니다. 마치 씨앗이 싹을 틔우고 나무로 자라나듯, 강물이 굽이굽이 흘러 바다에 이르듯, 모든 것에는 고유한 흐름과 때가 있으며, 이를 거스르지 않을 때 비로소 견고하고 아름다운 결과가 맺어진다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책을 그리다'라는 행위 또한 이러한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가장 진솔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피워내려는 포부를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문장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새벽 거리에서와 같은, 불륜이라는 금단의 영역에서 읊조려질 때, 그 의미는 섬뜩할 정도로 변모합니다. 이때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라는 표현은 더 이상 순리나 지혜가 아닌, 억누를 수 없는 욕망을 '어쩔 수 없는 감정의 흐름'으로 포장하려는 자기기만의 가면이 됩니다. 도덕과 인륜이라는 견고한 둑을 허물고, 파멸로 향하는 길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나약한 변명으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소설 속 인물들이 자신들의 불륜을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몰아가며,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는 모습은 바로 이러한 '자연스러운 흐름'어두운 단면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변명은 놀랍도록 닮아 있으며,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립니다. 감정적으로는 이해가 될지언정, 그것이 정당화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자연스러운 흐름'은 관계의 파괴, 신뢰의 상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후회라는 쓰디쓴 결과를 낳습니다. 새벽 거리에서가 보여주듯, 인간 심리의 가장 어두운 골목에서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감정은 때로 가장 잔혹한 파멸을 예고하는 전조가 되기도 합니다.

 

이 문장은 단순한 삶의 지혜를 넘어, 인간이 자신의 욕망 앞에서 얼마나 나약해질 수 있으며, 그 나약함을 어떻게 합리화하는지를 보여주는 복잡하고 때로는 비극적인 서사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새벽 거리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새벽거리에서' 책표지 이미지
Copyright ⓒ 2007 Keigo Higashino / 2011년 옮긴이 양억관 출판 재인

사랑과 살인, 그리고 인간 본연의 질문

추리소설의 대가 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작품 세계에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간 작품을 소개합니다. 이 소설은 평범한 삶의 이면에 드리워진 불륜과 살인, 그리고 그 속에서 요동치는 인간 심리를 섬세하게 파고듭니다.

 

특히, 소설 속 인물들이 자신들의 불륜을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변명하는 모습은 독자의 마음에 묵직한 물음표를 던집니다. 저는 그들의 공허한 변명에 결코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습니다. 감정의 흐름은 이해할 수 있을지언정, 그 선택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저의 시선이 이 작품을 더욱 깊이 들여다보게 했습니다.

 

용의자 X의 헌신처럼 강렬한 트릭이나 충격적인 반전 대신, 감정의 미세한 균열과 현실적인 갈등으로 독자를 압도하는 이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선사하는 또 다른 방식의 몰입감을 경험하게 합니다. 과연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고 끝까지 믿을 수 있을까요?

 

이 작품이 남긴 깊은 여운과 제가 던지는 질문들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리뷰글에서 확인하세요.

히가시노 게이고가 쓰는 잔혹한 일상 <새벽거리에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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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추리소설의 대가로 잘 알려진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교적 현실적인 배경 속에서 불륜, 미스터리, 인간 심리를 다룬 작품으로 2007년에 출간됐고, 2011년에 일본에서는 영화화되기도 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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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라미 책을 그리다 새벽거리에서 썸네일용 제작 이미지
핸드라미 책을 그리다 : 히가시노 게이고 '새벽거리에서'

여러분은 어떤 문장이 마음을 흔들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