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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일본소설 - 히가시노 게이고

히가시노 게이고 『가공범』 진실과 거짓 그리고 인간 본연의 그림자

by handrami 2025. 9. 1.

시리즈의 새로운 시작: 고다이 쓰토무

히가시노 게이고 '가공범' 책표지 편집한 이미지
Copyright ⓒ 2024 Higashino Keigo / 2025년 옮긴이 김선영 출판 북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일본 추리소설의 거장으로서, 단순한 범죄 미스터리를 넘어 인간 내면의 복잡한 심리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날카롭게 그려내는 작가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의 신작 가공범은 이러한 작가적 역량을 다시 한번 유감없이 발휘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사유와 전율을 안겨주는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백조와 박쥐에서 38세의 수사1과 형사로 첫선을 보인 고다이 쓰토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새로운 시리즈의 연속작이라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가집니다. 가공범은 비록 정확한 시간대가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백조와 박쥐이후의 시점으로 추정되며 고다이 쓰토무 시리즈의 서사를 견고히 이어갑니다.

 

번역의 미묘한 차이와 아쉬움

백조와 박쥐는 양윤옥 번역으로, 가공범은 김선영 번역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두 번역가는 모두 오랫동안 추리소설 번역에 매진해 온, 실력을 증명한 베테랑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리즈물에서는 독자의 몰입도와 작품의 연속성을 위해 번역의 일관성이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특히, 일본어 원문의 계급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호칭이 가능할 수 있는데, 백조와 박쥐에서는 '경위'로 번역되었던 쓰쓰이 형사의 계급이 가공범에서는 '경부보'로 번역된 부분은, 독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는 지점입니다. 번역가가 바뀔 경우, 용어 사용이나 문체의 미묘한 차이로 인해 독자들이 이질감을 느낄 가능성 또한 존재합니다. 이러한 계급 표기 불일치와 같은 부분은 개별 번역가의 역량 문제라기보다는, 시리즈 전체의 품질 관리 측면에서 출판 과정에 더욱 세심한 일관성 유지가 필요했음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독자의 원활한 독서 경험을 위해 이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작품의 본질적인 매력을 해치지는 않습니다.

 

충격적인 사건, 그 서막이 오르다

이야기는 한 고급 주택 단지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불에 탄 저택에서 유명 정치인과 전직 배우 부부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비극적인 서막이 오릅니다. 화려한 삶을 살았던 이들 부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그들이 숨기고 있던 비밀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단순한 살인 사건을 넘어, 그 이면에 깔린 인간의 욕망과 배신, 그리고 복잡하게 얽힌 관계의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과정은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섬세하고 치밀한 플롯 구성 능력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진실과 거짓, 인간 심리의 심연

가공범은 사건의 진상을 쫓는 과정에서 '진실''거짓'이라는 철학적인 주제를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단순히 누가 범인인지 밝혀내는 것을 넘어, 왜 그러한 범죄가 발생했으며, 사건에 얽힌 인물들이 각자의 이기심과 거짓을 통해 어떻게 서로를 기만하고 파멸로 이끄는지에 집중합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 심리의 미묘한 변화와 숨겨진 동기들이 겹겹이 벗겨지듯 드러나며, 독자는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감정에 깊이 공감하거나 혹은 경악하게 됩니다.

 

작품 속 인물들의 행동은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인간 본연의 심리''도덕적 딜레마'를 선명하게 드러내며, 독자에게 복잡한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가공범의 복잡한 구조는 결국 과거의 비밀과 은폐가 현재의 비극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치밀하게 그려내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식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결말은 독자에게 윤리적 고찰과 깊은 여운을 선사하며, 인간 본성의 복잡성을 탐구하게 만듭니다.

 

이 작품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인간의 심리를 해부'하는 데 탁월한 면모를 보입니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은 물론, 주변 인물들까지도 각자의 사연과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의 관계와 과거가 현재 사건에 미치는 영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본업에 충실하며 사건을 파고드는 형사로 등장하여, 사건의 표면적인 사실을 넘어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끈질기게 추적합니다. 이러한 캐릭터는 독자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오며, 복잡한 퍼즐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독자는 마치 자신도 형사가 된 듯한 몰입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소재를 작품으로 쓸 날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소재를 작품으로 쓸 날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가공범' 책표지

 

작품의 중심 소재인 '가공범(架空犯)'이라는 개념 자체가 작가로서 감히 건드리기 어려웠던, 혹은 기존의 틀을 깨는 파격적인 주제였음을 시사합니다.

극도의 복잡성과 구현의 어려움

'가공범'은 실제 범죄가 아닌, 마치 범죄가 일어난 것처럼 꾸미거나 조작된 상황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허구의 범죄를 치밀하게 설계하고, 그 허점을 파고드는 과정을 그리는 것은 기존의 추리소설과는 다른 차원의 복잡성과 정교함을 요구합니다.

도덕적, 윤리적 딜레마와 사회적 파급력

'가공범'이라는 소재는 '진실이란 무엇인가?', '거짓이 만들어낸 비극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사람의 인식을 조작할 수 있는가?' 등 매우 심오하고 도덕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는 단순한 추리를 넘어 인간 본성과 사회 시스템에 대한 깊은 고찰을 요구합니다.

 

견고한 필력과 짜임새 있는 전개

히가시노 게이고의 필력은 여전히 강력합니다.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찌르고, 복선을 깔고 회수하는 솜씨는 감탄을 자아냅니다. 예측 불가능한 반전과 치밀한 트릭은 독자들의 뇌리에 깊이 박히며,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도 오랫동안 잔상을 남깁니다. 소설은 각 장마다 속도감을 조절하며 긴장감을 유지하고, 독자가 단 한순간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도록 만듭니다.

 

총평 및 추천: 사회파 미스터리의 진수

결론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공범은 단순히 짜릿한 추리 소설을 넘어섭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단순히 범인을 잡는 것을 넘어, 범죄의 동기와 그 배경에 깔린 인간 심리, 사회적 병폐 등을 탐구하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대가입니다. 가공범에서 보여주는 인물들의 복합적인 모습은 사회 속에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욕망, 좌절, 비뚤어진 윤리관, 그리고 극한 상황에서의 선택 등을 치밀하게 묘사한 결과입니다. 이러한 상황들은 독자로 하여금 '나라면 어땠을까?',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들뿐만 아니라, 깊이 있는 심리 묘사와 사회 비판적인 시선을 담은 추리 소설을 선호하는 모든 분께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이 책을 통해 히가시노 게이고의 새로운 미스터리 세계에 흠뻑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가공범은 이런 독자에게 추천합니다.

  •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
  • 인간 심리 탐구를 줄기는 분
  • 사회파 미스터리를 선호하는 분
  • 도덕적 딜레마와 철학적 질문에 흥미를 느끼는 분
  • 치밀한 플롯과 예측 불가능한 반전을 즐기는 분

히가시노 게이고 <백조와 박쥐> 침묵이 낳은 비극에 대한 고찰

 

히가시노 게이고 <백조와 박쥐> 침묵이 낳은 비극에 대한 고찰

소설은 33년의 시간 차이를 두고 발생한 두 건의 살인 사건과 그 사건에 얽힌 인물들이 진실을 파헤쳐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과거의 죄와 진실, 그리고 그 무게를 짊어진 이들의 선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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