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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히가시노 게이고 <방황하는 칼날> 소설과 영화, 같은 칼 다른 울림

by handrami 2025. 5. 7.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2004년에 발표된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로, 소년범죄와 사적 복수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룹니다. 치밀한 구성과 도덕적 딜레마를 통해, 독자에게 깊은 윤리적 고민을 던지는 문제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복수가 정당하다는 건 아니지만 피해자의 아픔이 너무 소홀히 여겨지고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

히가시노 게이고 '방황하는 칼날' 표지와 포스터 편집이미지
Copyright ⓒ 2004 Keigo Higashino / 2021년 옮긴이 민경욱 출판 하빌리스

작품소개

올해 고등학생이 된 소녀는 친구들과 불꽃놀이를 보고 온다며 나가서는 아라카와강 하류 제방에서 발견됩니다.

빼앗긴 것은 소녀의 인생만이 아닙니다. 그녀를 사랑했던 모든 사람의 인생에도 치유되지 않는 상처를 남깁니다.

 

범인들은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법적 보호를 받으며 가벼운 처벌만을 받을 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이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아버지는 법이 지켜주지 않는 정의를 스스로 집행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딸을 죽인 소년들을 추적하며 복수에 나서고, 경찰은 그를 쫓습니다.

"내아이를 잃은 부모에게 법률이 정했으니까 참으라고. 도대체 누가 그렇게 말할 수 있나?“

 

소설은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 소년들이 구체적으로 소년법을 이용하려는 내용도, 소년법으로 혜택을 보는 결과도 나오지는 않습니다다만 이전의 사례를 들어 그럴 것이라는 내용으로 말합니다.

 

소설은 소년법에 대해 사회가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는 전제로 이야기합니다.

 

소설에서 소년법에 대해 언급하는 분량에 비해서, 직접적인 적용은 자제합니다.

 

소년들에게 어린 딸을 잃은 피해자의 아버지도 본인이 직접 복수하는 이유로 소년법을 말하지만 그냥 짐작으로 말합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사랑하는 딸을 잃은 아버지의 심정이라면 가해자에게 어떠한 처벌이 내려진다 해도 적당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직접 죽여서라도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방황하는 칼날' 2021년 책표지 이미지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방황하는 칼날' 2008년 책표지 이미지
2021년 옮긴이 민경욱 출판 하빌리스 2008년 옮긴이 이선희 출판 바움

감상 포인트 : 소년범죄에 대한 시각과 소설의 메시지

  • 소년법의 한계: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가볍게 처벌받는 현실에 대한 고발
  • 정의란 무엇인가?: 법적 정의 vs. 피해자 개인의 감정적 정의 사이의 갈등
  • 피해자 중심의 시선: 보통 가해자 중심의 미스터리와는 달리, 피해자 유족의 시점에서 전개

히가시노는 이 작품을 통해 "법이 정의를 담보할 수 있는가?", "복수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와 같은 도덕적 물음을 던집니다. 단순한 복수극이 아닌, 사회 구조 속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통해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합니다.

 

가해자 세 소년의 유형으로 바라보는 소년범죄와 소년법

나쁜짓을 계획하고 앞장서는 소년, 그 나쁜짓을 거부감 없이 따라 같이 즐기는 소년,

그리고 그런 두 소년이 무섭기도 하고 그나마 같이 놀아주는 친구가 그들뿐이라 적극적으로 참여하기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나쁜짓에 가담하는 소년으로 표현됩니다.

 

소설은 범죄를 저지른 소년을 주도형(계획자), 동조형(적극적 가담자), 수동형(소극적 가담자) 세 유형으로 구분합니다.

 

소년법은 이 차이를 구분하지 않고 일정 나이로 처벌을 대폭 감경하거나 보호처분으로 대체합니다.

결과적으로 주도형과 수동형이 같은 수준의 소년으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피해자의 유족 입장에서는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죄의 무게보다 나이가 기준이 되는 불균형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네 원수를 갚을 거야. 너를 괴롭히고, 행복했을 네 인생을 망가뜨리고 네 생명을 빼앗은 놈을 아버지가 이 손으로 묻어버릴게. 사실은 더 끔찍하게 죽이고 싶은데 아버지에게는 이 방법밖에 없구나. 미안하다. 이 녀석을 죽이고 아버지도 네가 있는 곳으로 갈게. 저세상에서 만나면 이번에야말로 행복하게 둘이 살자. 다시 만나면 다시는 너를 혼자 두지 않을게. 다시는 무서운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할게······.

 

 

피해자의 입장에서 법과 사회가 외면한 아픔을 외침

딸을 잃은 아버지의 분노는 내 아이가 이런 고통을 겪었는데, 세상은 어떻게 외면하느냐는 사회적 배신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복수는 정의실현이라기보다는 고통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절규로 보였습니다.

법정도, 언론도, 제도도 모두 피해자의 편이 아니었으며, 피해자가 외치는 고통은 너무도 쉽게 잊혀지거나, 차분하게 처리되어 버립니다.

 

피해자로부터 가해자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경찰의 아이러니한 현실에 대한 고뇌가 보입니다.

피해자의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이해하면서도 그를 막아야 하는 입장의 경찰은 그를 이해하지만 그것을 허락하는 순간 법이 무너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또다시 법과 사회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아이러니를 말하게 됩니다.

 

일부 가해자들의 반성 없는 철면피 적 행동

죄책감조차 없고 심지어 자신이 법의 보호를 받는다는 사실을 즐기는 행동을 합니다.

피해자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받았지만 가해자는 어리다는 이유로 괜찮다는 인식을 가집니다.

이러한 불균형은 우리에게 극도의 불쾌함과 문제의식을 가져다줍니다.

 

모두가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누구도 이를 먼저 고치려 하지 않습니다. 이 무기력이 피해자의 가족을 더욱더 극단적 선택으로 몰아넣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피해자의 복수를 돕는 익명의 제보자는 공범일까? 양심일까?

1.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최소한의 저항

일단은 우리 사회에서 지켜지지 않는 정의에 대한 최소한의 저항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직접 행동하지는 않지만, 가해자들이 처벌받지 않는 현실에 침묵하지 않는 제보자는 최소한 분노를 이해한다는 표시이며, 침묵 속 연대를 보내는 셈입니다.

 

2. 법적으로는 범죄, 도덕적으로는 회색지대

정보 제공 행위는 결과적으로 불법행위(살인)에 간접적으로 가담한 것이며, 법적으로는 방조 또는 교사(가해를 유도하는 행위)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직접 복수를 하라고 지시하지 않았고, 사적인 감정과 도덕적 갈등의 결과로 행동했기에, 완전히 동일한 범죄자로 보기 어렵습니다.

 

3. 가해자 내부의 분열된 선택

제보자가 가해자 주위의 사람일 경우, 그는 공식적으로는 용서와 법적 절차를 지지하지만,

내면에서는 분노와 무력감으로 인해 비공식적으로 복수를 지지하는 입장일 수 있습니다.

이때 그는 법을 따르는 옳은 사람사적 정의를 이해하는 인간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조용히 피해자 편에 서는 양심적 배신자가 됩니다.

 

"법을 벗어난 정의 추구를 도운 행위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

"피해자 편에 서는 것이 항상 옳은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하지 않지만, 방황하는 칼날은 바로 그 불편함을 직시하게 만듭니다.

 

당신은 지금 정의의 어느 편에 서 있는가?”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를 보고 느낀 점

2014년 개봉작 방황하는 칼날 영화포스터 1
2014년 개봉작 방황하는 칼날 영화포스터 2
2014년 개봉 영화 정재영 이성민 주연  방황하는 칼날 영화포스터

 

20144월에 개봉했던 영화를 찾아서 보았습니다.

 

영화는 소설에 비해서 복수를 감행하는 아버지에 대해 동정 여론이 적습니다.

복수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저 범죄자로 표현하는 느낌입니다.

 

경찰의 "애들이 어른 죽이는 것은 뉴스거리도 아닌데 어른이 애 잡는 거는 심각하다는 말은 의미는 알겠지만 무엇을 말하고 싶을 것인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은 소설에 비해 소년법에 대한 언급도 별로 없습니다. 영화는 오히려 복수하는 아버지 역시 자기 딸을 끔찍하게 죽게 한 원수에게 감정적으로 그대로 복수하는 캐릭터처럼 보입니다.

영화는 살인은 그저 살인일 뿐이라는 느낌을 주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소설은 저지른 범행과 상관없이 소년법으로의 처벌이라는 법적 현실에 대한 비판을 통해 복수하는 아버지의 입장을 조금 더 이해하려고 하고, 법의 방향이 옳은지를 묻습니다. 캐릭터 또한 계획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면, 영화는 그저 복수에 직진하는 캐릭터로 그려집니다.

 

소설에 비해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영화는 대관령 눈밭에서 쓰러져 잠들었다가 다음날 다친 다리로 경찰을 피해 강릉역에 나타나는 그런 개연성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같지만 다른 느낌

소설과 영화의 커다란 줄기는 같지만 생각하게 하는 방향이 다릅니다.

결말은 같았지만 아버지가 방황한 이유는 다른 느낌을 줍니다.

소설은 복수에 대한 결행과 망설임에서 방황하는 칼날이었다면,

영화는 극중 아버지 정재형이 하는 말의 의미가 더 강했습니다.

"나는 이런 놈하고 같이 숨 쉬고 살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소설과 영화 중 선택이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성공한 소설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기 때문에 소설에서 실망할 일은 적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성공한 소설보다 더 나은 영화를 기대하는 것이 욕심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소설을 모티브로 한 영화를 보는 이유는 같은 내용을 영상으로 표현했을 때의 보는 재미와 다른 방향으로 해석되는 요소들에 대한 느낌을 보기 위해서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원작의 의미를 잘 살린 잘 만든 영화를 보게 되면 영화라도 보라는 추천을 합니다.

 

방황하는 칼날에 대한 영화는 영화로써는 나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소설 대신이라는 말을 하기에는 조심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소설에서 느꼈던 감정이 영화에서는 별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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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가시노 게이고 가가형사 시리즈 11편 - 순서 & 한눈에 보기 『악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살인사건 4편 한눈에 정리 & 추천회랑정 살인사건』

 

이런 분에게 추천합니다.

  • 정의와 복수의 경계에 관심 있는 분
  • 사회 시스템의 허점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은 분
  • 영화와 소설을 비교하며 읽고 싶으신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