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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히가시노 게이고 <예지몽> 과학으로 해석하는 오컬트 - 갈릴레오 시리즈

by handrami 2025. 5. 25.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 마나부 교수 와 구사나기 슌페이 형사가 활약하는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두 번째 단편집입니다.

기묘하고 불가사의한 살인 사건을 과학적인 추리로 해결하는 과학과 오컬트, 미스터리가 절묘하게 결합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예지몽은 다섯 편의 독특한 사건을 중심으로 중단편의 오컬트적 요소를 가미한 사건을 과학적 추리라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유가와의 활약을 그려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예지몽' 책표지 편집한 이미지
Copyright ⓒ 2000 Keigo Higashino / 발행: 2018년 19쇄 / 역: 양억관 / 출판사: 재인

  • 1장 꿈에서 본 소녀
  • 2장 영을 보다
  • 3장 떠도는 영혼
  • 4장 그녀의 알리바이
  • 5장 예지몽

작품소개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과학''미스터리'의 결합입니다.

각 단편의 사건들은 하나같이 설명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현상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유가와 교수는 이러한 초현실적인 주장 대신, 예리한 관찰력과 풍부한 과학 지식을 동원하여 사건의 진실을 파헤칩니다. 사건 현장의 단서들이 유가와의 손을 거치면 명확한 과학적 증거로 재탄생하는 과정은 독자에게 지적인 쾌감을 선사합니다.

 

냉철하고 이성적인 과학자이자 사건 해결자인 유가와 교수와 구사나기 형사와의 대비되는 성격에서 비롯되는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소소한 재미를 줍니다.

 

각 편은 40~50쪽 정도의 분량으로 짧지만, 복선과 반전이 촘촘하게 짜여 있어 몰입감이 뛰어납니다.

 

히가시노는 단순한 미스터리를 넘어서, 사건의 배경에 있는 인간의 감정과 고뇌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모든 단편이 완벽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떤 독자에게는 과학적 설명이 다소 복잡하게 느껴지거나, 트릭이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러한 요소들을 흥미로운 상상력의 장치로 활용하며, 과학적 지식을 추리소설의 도구로 사용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합니다.

 

 

1장 꿈에서 본 소녀

미래의 연인이라고 했습니다. p17
"인간은 모두 뭔가에 조종당하고 있는 존재니까." p65

 

진실을 숨기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착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드러나지 않을 거라는 착각 속에 도덕적 파멸을 자초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잘못된 선택이지만 완전한 악인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지만 그로 인해 엉뚱한 사람이 죄를 짓고 파멸하게 됩니다.

 

법의 관점과 도덕적 관점의 차이

히가시노 게이고는 법과 도덕의 관점에서 다를 수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진실을 말하지만 항상 그것을 폭로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죄의식 속에 살아가는 것도 처벌이라는 입장을 표현합니다.

 

 

2장 영을 보다

그녀의 환영을 보았을 때 그 순간에 살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지금 이 순간만 넘기면 괜찮을 것 같은 자기최면, 하지만 이 순간의 회피가 또 다른 범죄를 낳고, 거짓말이 쌓이듯 죄도 쌓이기 시작합니다.

 

이야기는 한 번의 범죄가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그것을 은폐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해 더 큰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를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 죄는 순간의 실수거나 충동일 수 있지만, 두 번째 죄부터는 의지적 선택이 됩니다.

무지에서 비롯된 죄보다, 의식적인 은폐의 죄가 더 도덕적으로 무겁습니다.

처음엔 죄책감이 들던 일이 반복될수록 무감각해지고 결국 죄를 도구로 인식하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것을 정당화하게 되는 도덕적 마비가 작동하게 됩니다.

 

떠도는 영혼에 이와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3장 떠도는 영혼

구사나기 형사는 누나 지인의 남편 실종 사건의 도움을 요청받습니다.

사라진 남편의 실종에 의심되는 집을 감시하고 그들의 행동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오컬트적 요소의 과학적 해결을 다룹니다.

“어떤 동기가 있어. 그 동기 때문에 화가 나서 범죄를 저지르지. 그런데 한번 저지른 그 범죄 때문에 또 열이 올라 앞뒤가리지 않고 다음 범죄를 저질러. 악순환의 표본이라고 할까. 불현듯 정신을 차려 보면 최초의 동기 같은 건 어디로 가버렸는지 흔적도 없다는 거지.” p140

 

유리막대 실험을 보며 구사나기는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의 심리와 같다고 말합니다.

“마지막에는 자신을 파멸시키고 마는군.” p141

“폴터가이스트는 독일말로 ’시끄러운 영‘이란 뜻이야.” p164

 

4장 그녀의 알리바이

오래전 빌려준 돈을 받으러 나간 남자가 호텔 룸에서 살해된 채 발견됩니다.

피해자는 1억 엔이 넘는 생명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는 사실에 부인에게 혐의를 두게 됩니다.

서서히 밝혀지는 알리바이는 오히려 너무 완벽하고 강렬해서 이상함이 느껴집니다.

 

법과 제도보다 중요한 인간적인 윤리가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윤리적 딜레마

과학적 트릭과 도덕적 회색지대를 파고드는 윤리적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이야기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진실을 알아도 그것이 반드시 공개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선의의 거짓말 혹은 공모

그들의 행동이 엄밀히 보면 법적 책임이 따를 일들이지만, 그 동기에 따라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를 묻습니다. 작품은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말하는 듯하지만 그 부분에 동의하기는 애매합니다.

제도의 허점과 인간성

규정이 구제를 위한 장치인가, 아니면 회사의 손해를 줄이기 위한 방편인가에 대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유가와의 마지막 태도는 제도보다 인간의 사정을 우선시하는 인간 중심적 정의를 말하는듯합니다.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점

보험 계약은 신뢰에 기반한 약속으로, 자살에 의한 지급 제외는 보험 사기를 막기 위한 장치입니다.

묵인이라는 형태는 제도를 의도적으로 위해하고, 공정성과 신뢰성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타인의 돈(보험금)을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하는 것은 인간 중심적 윤리가 아닌 도덕적 자기합리화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 중심적 윤리로 동기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행위의 정당성까지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윤리적 판단이 항상 흑백논리로 나뉘지 않음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5장 예지몽

불륜을 아내에게 알리길 요구하던 여자가 통화 중 자살합니다.

사건을 조사하던 형사는 이틀 전 자살을 목격했다는 소녀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소녀가 본 것은 예지몽이었을까요?

신비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사건을 과학적으로 해결하려다 보면 의외의 진리가 드러나니까. p256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속에서 불륜은 사건의 시발점이자, 도덕적 균열의 상징입니다.

불륜은 인간의 약함이며, 사랑이라는 명목의 자기합리화로 어떤 면에서는 비난받아야 할 행동으로만 다루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물의 사연과 감정, 고통에 조금은 공감의 여지를 남겨두기도 합니다.

그는 결코 정답을 제시하지 않고 대신 독자에게 판단을 넘깁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향한 마음이 죄가 되는가?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한 선택이 누군가를 파괴한다면 용서받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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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몽은 이런 독자에게 추천합니다.

  • 짧고 몰입감 있는 추리 단편을 좋아하는 독자
  •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건 해결 과정을 즐기는 독자
  • 초자연적 요소를 이성적으로 풀어내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독자

'예지몽''탐정 갈릴레오' 시리즈의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작품이며, 과학 미스터리라는 장르에 흥미를 느끼는 독자에게도 추천할 만한 소설입니다. 단편마다 다른 과학적 원리가 등장하여 지식을 쌓는 재미도 있고, 복잡한 퍼즐이 맞아떨어지는 듯한 추리의 쾌감 또한 만끽할 수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과학적 지식이 결합된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신선하고 흥미로운 경험을 선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