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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한국소설

도희 『성인들을 위한 잔혹동화』 시리즈 3편 '흑장미의 초대'

by handrami 2025. 11. 7.

경고: 당신이 알던 동화는 여기서 죽었습니다.

 

순수했던 동심의 세계를 산산조각 내며 그 파편 속에서 현실보다 더 날카로운 진실을 파고들었던 씨큐브 출판의 '성인들을 위한 잔혹동화' 시리즈.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릴 마지막 3권을 드디어 펼칩니다.

 

충격과 동시에 묘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해 온 잔혹동화 시리즈, 그 마지막을 장식할 이번 하이브리드 리뷰에서는, 이야기 표면에 드러난 잔혹함을 넘어 그 이면에 숨겨진 작가의 의도와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단순히 '어두웠다'는 감상을 넘어, 이 잔혹함이 우리에게 '' 필요했는지를 곱씹어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성인들을 위한 잔혹동화 시리즈 3편 책표지 편집한 이미지
Copyright ⓒ 2025 도희 출판 씨큐브

목차

  • 미녀와 야수
  • 백조왕자
  • 요린데와 요링겔
  • 잠자는 숲속의 공주
  • 선녀와 나뭇꾼
  • 콩쥐팥쥐
  • 성냥팔이 소녀
  • 눈의 여왕
  • 흥부와 놀부
  • 거위 치는 소녀
  • 파랑새

환상을 깨부수는 잔혹한 역설과 구원의 배신 미녀와 야수

'미녀와 야수'는 우리가 익히 아는 고전 동화의 서사를 처참하게 찢어발기며 시작합니다. 이야기의 첫 장부터, 뜨거운 태양 아래 난잡한 정사를 나누는 왕자와 보라색 머리 미녀의 묘사는 독자에게 원작에 대한 어떠한 향수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는 단순히 '야하다'는 것을 넘어,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과 성적인 측면을 극도로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순수함의 상징이었던 '동화'라는 장르를 전복시키려는 강렬한 의도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성애적 묘사는 작품이 지향하는 '잔혹함'의 스펙트럼을 폭력이나 비극을 넘어, 인간 본연의 쾌락과 그 뒤에 숨겨진 추악한 진실까지 확장하겠다는 선언처럼 느껴집니다.

 

이 소설이 던지는 충격은 단순히 시각적 자극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독자는 아름다운 미녀가 진정한 사랑을 통해 야수를 구원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슴에 품겠지만, 이 작품은 그 기대를 무참히 배신합니다.

 

"진실된 사랑을 찾는다"는 동화적 명제는 이 이야기에서 가장 잔인한 역설로 작용합니다.

 

작품은 사랑이라는 숭고한 감정마저도 비틀린 욕망과 이기심으로 얼룩질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폭로합니다.

 

이 작품의 '잔혹함'은 폭력이나 고통의 묘사를 넘어, '진실된 사랑'이라는 동화의 핵심 가치를 가장 저열하고 탐욕적인 인간 본성으로 대체해 버립니다. 노골적인 성적 묘사 또한 이러한 인간의 추악한 욕망과 기만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활용되지만, 때로는 그 자체로 불편함과 호불호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 이 소설은 인간 내면의 갈등, 사회의 부조리, 비극적인 운명 등을 깊이 있게 탐구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잔혹함'을 표방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방식이 워낙 직설적이고 파괴적이어서, 모든 독자에게 그 심오한 의미가 온전히 전달되기보다는, 때로는 단순한 충격이나 자극으로만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분명 존재합니다.

 

잔혹동화의 역설, 폭력 대신 '성숙'을 택한 《 거위 치는 소녀

'거위 치는 소녀' 단편은 그림 형제의 원전과 비교할 때, 전통적인 잔혹성을 과감히 걷어내고 심리적 성숙이라는 새로운 잔혹성을 제시하는 역설적인 시도로 돋보입니다.

●  원전의 물리적 잔혹성 vs. 현대의 심리적 대면

그림 형제가 수집한 원전의 결말은 노골적인 물리적 폭력으로 마무리됩니다. 시녀는 자신이 만들어낸 잔혹한 형벌인 "발가 벗겨 못을 박은 작은 통에 던져 놓고, 하얀 말 두 마리가 죽을 때까지 이리저리 끌고 다니게 만드는 것"에 의해 처단됩니다. 이는 통쾌함을 줄 수는 있으나, 단순히 악행에 대한 물리적 응징, 즉 결과론적인 잔혹성에 머무릅니다.

 

반면, 이 작품은 왕과 왕자가 '입에 발린 달콤함'에 속아 가짜 공주(시녀)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결말로 전환됩니다. 이는 시녀에 대한 외부적 처벌 대신, 왕실 스스로가 초래한 어리석음이라는 내적 처벌에 대한 이야기로 바뀝니다. 시녀에 대한 잔혹한 물리적 처벌에 대한 내용은 없어졌지만, 이 작품은 칼과 채찍 대신 진실의 외면과 정신적 굴레를 잔혹성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  성숙을 통한 폭력의 극복

이 소설 속 공주의 변화는 이 단편의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때로는 결과를 알면서도 맞서야 할 때가 있는 법이랍니다."

 

신분 강탈과 배신의 고난 속에서 공주는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그녀는 이전에 거위를 치는 소년 콘라드의 거친 행동과 모습을 비난했지만, 사실은 자신이 남의 눈을 두려워하고 나약했던 과거의 모습을 깨닫습니다. 특히, "자신은 그보다 더한 언어의 폭력을 서슴없이 콘라드에게 퍼부었던 것"이라는 구절은 공주가 자신의 나약함을 타인에게 투사했던 과거의 미성숙함을 인정하고, 내면의 잔혹성을 극복했음을 보여줍니다.

 

공주는 더 이상 남의 눈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수에 연연하지 않으며,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단단하고 성숙한 어른으로 거듭납니다. 이 단편의 잔혹성은 복수가 아니라, 미성숙한 욕망에 갇힌 자들이 겪는 비자발적인 정신적 정체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건전한 잔혹동화'라는 역설

이 작품은 원전의 피비린내 나는 복수 대신, 미성숙한 욕망과 착각이 남기는 영구적인 정신적 상흔을 보여주며 역설적인 '건전한 잔혹동화'를 완성합니다.

 

공주는 복수 없이도 스스로의 성장을 통해 해피엔딩을 쟁취했으며, 오히려 시녀와 미련한 왕실은 성장하지 못한 채 환상 속에 갇히는 또 다른 형태의 비극을 맞이합니다. 잔혹동화는 종종 사회의 억압적인 면모를 반영하는데, 이 단편은 외모와 신분에 집착하는 어리석은 자들에게는 가혹한 현실을, 고난을 통해 성장한 이에게는 자유를 선사하며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잔혹함의 다양한 스펙트럼

<흑장미의 초대>'잔혹동화'라는 이름 아래 상반된 잔혹성을 동시에 탐구합니다. '미녀와 야수'가 금기를 파괴하는 충격과 욕망의 추악함을 통해 외향적인 잔혹성을 보여준다면, '거위 치는 소녀'는 물리적 폭력을 배제하고 자아 성찰과 성숙을 거부한 자에게 내려지는 정신적 대가라는 내향적인 잔혹성을 완성합니다.

이 작품들은 독자에게 불편함을 안겨주면서도, 고전 동화의 숨겨진 의미와 인간 본성을 다시금 들여다보게 만드는 강렬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이렇듯 3<흑장미의 초대>는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며 '잔혹함'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완성시켰습니다. 그리고 이 3권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드디어 씨큐브 출판사의 '성인들을 위한 잔혹동화' 3부작 여정이 모두 끝났음을 실감합니다.

 

동화의 환상이 깨진 자리를 채우다

드디어 씨큐브 출판사의 '성인들을 위한 잔혹동화' 3부작 여정이 모두 끝났습니다. 1권의 신선한 충격과 낯섦을 시작으로, 2권을 거치며 점차 그들의 세계관에 익숙해졌고, 3권에 이르러서는 이 잔혹한 이야기들이 왜 '성인'을 위한 것인지 깊이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리즈는 '동화'라는 이름이 주는 안락한 환상을 가차 없이 깨뜨립니다. 우리가 어릴 적 믿어 의심치 않았던 '권선징악''영원한 행복' 대신, 지극히 현실적이고 때로는 추악하기까지 한 인간의 욕망과 나약함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합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은 더 이상 순수하거나 용감무쌍한 영웅이 아닙니다. 그들은 질투하고, 집착하며, 때로는 비겁한 선택을 하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3권의 책을 차례로 읽어 나가며, 저는 이 잔혹함이 단순한 자극이나 파괴를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가장 아픈 곳을 찔러 가장 깊은 사유를 이끌어내는 장치였습니다.

 

'이토록 뒤틀린 욕망의 근원은 대체 무엇일까?'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하며, 이 잔혹동화들은 우리에게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안일한 결말 대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만약 달콤한 위로가 아닌, 아프더라도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어른의 이야기'가 필요하시다면, 이 시리즈는 기꺼이 그 어두운 숲속의 안내자가 되어줄 것입니다. 저의 하이브리드 리뷰가 그 숲을 탐험하는 작은 등불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성인들을 위한 잔혹동화』 당신이 알던 동화는 여기서 죽었습니다.

경고: 당신이 알던 동화는 여기서 죽었습니다.우리는 모두 순수한 동화 속 세상을 믿었습니다. 아름다운 표지에 이끌려, '성인들을 위한 잔혹동화'라는 19금 꼬리표가 붙은 이 책을 집어 든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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