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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와카타케 나나미 <나쁜 토끼> 불운한 탐정이 추적하는, 슬프고 나쁜 진실

by handrami 2025. 5. 14.

일본에서 2001년에 출간된 작품을 2022년 내 친구의 서재에서 번역 출판하였습니다.

코지 미스터리의 대표 작가로 알려진 와카타케 나나미의 초기 작품으로, 그녀가 살인곰 서점에서 일하기 전 프리랜서 탐정 시절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와카타케 나나미 '나쁜 토끼' 책표지 직접 편집한 이미지
Copyright ⓒ 2001 WAKATAKE Nanami / 2022년 역:문승준 출판:내친구의 서재

작품소개

소설 속 하무라 아키라는 작은 탐정사무소에 다니는 서른한 살의 여성 프리랜서 탐정으로 평범한 외모에 별로 뛰어나지 않은 체력의 소유자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털털하고 인간미가 있는 여자로 표현됩니다.

 

그런 하무라에게 어느 날 가출한 열일곱 살 여고생을 집으로 데리고 와달라는 의뢰를 받고 시작된 일은 사라진 여고생과 연결되고 결국 살인사건과 연결됩니다.

사건에 가까워질수록 계속되는 위기와 고생을 겪게 되고, 그렇게 하무라가 범인에게 다가가는 과정을 쉼 없이 따라갑니다.

 

하무라는 수없이 깨지고 얻어맞으면서도 꿋꿋하게 사건과 맞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녀의 서민적이고 불운한 모습은 기존의 냉철하고 고상한 탐정 캐릭터와는 다른 매력을 보여줍니다.

누구보다 집요하고 사람의 슬픔에 다가가려는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불운한 탐정'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건에 다가갑니다.

 

이야기 속에는 성 착취, 소외된 청소년, 가정 폭력 등의 현실적인 문제가 담겨 있으며, 하무라 아키라는 무너져가는 사람들의 내면을 이해하고, 그들을 대신해 싸우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그녀의 거칠고도 인간적인 모습이 작품 전반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

 

"이대로 집에 있으면 나 엄마 죽일 것 같아."

 

첫 번째 미치루의 대사에서는 하무라의 집에 머물기 위해 10대 소녀의 반항기 섞인 말로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대로 흘려 읽었던 글이었지만, 두 번째 같은 글을 읽을 때는 안타깝고 슬픈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냥감이 된 존재들

“토끼는 머리가 나빠서 사람이 자기들을 죽여 잡아먹으려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해.”

 

마지막에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달았을 때 느꼈을 공포를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런 그들에게 결말은 너무 관대한 처분을 내립니다.

사라진 존재들은 단지 집을 떠난 아이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버림받은 존재들이었습니다.

그 틈을 파고든 누군가에게 표적이자 사냥감이 되어 버립니다.

누군가는 그들의 외로움을 이용하고, 또 누군가는 그들의 목소리를 지워버립니다.

 

소설은 가해자는 반드시 칼을 든 자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침묵도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나쁜 토끼는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왜 인간은 같은 인간을 소비하고, 파괴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가?

소설은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고통스러운 현실을 끝까지 응시하는 시선을 보여줍니다.

 

가장 초라하고 가장 인간적인 순간

토끼탈을 쓰고 붉은 바람막이를 입고 기껏해야 500미터 정도의 산을 올라

손을 흔들고 구조대에 구조된 하무라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기껏해야 고작 500미터 남짓의 낮은 산, 하지만 그 짧고도 숨 막히는 오르막은 하무라 아키라에게는 생사의 경계였습니다.

 

그녀는 토끼탈을 쓰고, 붉은 바람막이를 입고, 피투성이가 된 채, 사냥감처럼 산을 기어오릅니다.

이 모습은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비극적입니다.

 

구조대가 보이는 순간, 하무라는 남은 힘을 다해 손을 흔듭니다.

그 모습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처참하고도 초라한 구원 요청의 몸짓이었을 것입니다.

 

그녀가 구조되는 순간, 토끼탈 너머의 얼굴은 희생자들과 고통을 함께한 자의 얼굴입니다.

그것은 승자의 얼굴도, 정의로운 영웅의 얼굴도 아닙니다.

그저, 인간으로서 끝까지 버텨낸 자의 얼굴입니다.

 

표지의 이미지가 이해되면서 마냥 귀엽게 만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허무한 결말의 여백이 주는 클라이맥스

이 소설에서 범인 검거는 이야기의 핵심이 아닙니다.

사건을 둘러싼 피해자와 방관자들, 그리고 그들의 고통에 초점을 맞춥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누가 이를 가능하게 했는가?

그 사회 구조 안에서 누가 외면받고 있었는가를 묻습니다.

 

가해자는 체포되지만, 피해자와 주변인의 삶은 복구되지 않습니다.

허무하고 해결되지 않은 감정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해서 상처가 치유되거나 세상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소설은 일부러 힘을 뺀 결말로 장르적 쾌감을 의도적으로 배제합니다.

그럼으로써 다른 부분에 더 집중하도록 요구합니다.

 

▼ 와카타케 나나미의 하무라 시리즈 리뷰보기

와카타케 나나미 <불온한 잠>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 4 - 하무라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녹슨 도르래>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 3 - 하무라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조용한 무더위>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 2 - 하무라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이별의 수법>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 1 - 하무라시리즈

 

『나쁜 토끼』는 이런 독자에게 추천합니다.

  •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의 팬으로, 그녀의 과거 이야기에 관심 있는 독자
  • 하드보일드한 여성 탐정 캐릭터를 좋아하는 독자
  • 일본 코지 미스터리 장르에 관심 있는 독자

나쁜 토끼는 추리소설이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부서지고 상처 입으면서도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하무라의 모습은, 단순한 사건 해결 이상의 여운을 남깁니다.

지적인 긴장감과 감성적 울림을 동시에 느끼고 싶으신 분에게 추천합니다.

 

이 소설에서 하무라의 매력에 빠져 하무라 시리즈 모두를 읽었습니다.

당신도 하무라의 매력을 느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