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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와카타케 나나미 <녹슨 도르래>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 3 - 하무라시리즈

by handrami 2025. 5. 17.

하드보일드한 소설로 인간 심리의 복잡함과 사회의 어두운 면모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소설로 그녀의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작품입니다.

와카타케 나나미 '녹슨 도르래' 책표지 편집한 이미지
Copyright ⓒ 2018 WAKATAKE Nanami / 2020년 역:문승준 출판:내친구의서재

작품소개

살인곰 서점 2층에 있는 ‘백곰 탐정사’의 탐정으로 일한지 3년이 흐른 시점입니다.

 

셰어하우스 스타인벡 장의 철거 문제로 의뢰 대상자의 건물로 이사한 하무라 아키라는 의뢰 대상자 미쓰에의 손자 아오누마 히로토와 한 지붕 아래서 살게 되지만 이후 화재로 인해 백곰 탐정사 사무소 2층 안쪽 방으로 보금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특별할 것 없던 의뢰를 조사할수록 사건은 점점 커지고 하무라의 불운한 신체는 또다시 고통을 받게 됩니다.

 

잘못된 선택에 대한 비틀린 운명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는 매일 선택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다시 선택한다. 선택한 끝에 일어난 일에 대해 혹자는 자신의 선택을 칭찬하고, 혹자는 후회한다. 그리고 다시 선택한다.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비참하고 안타까운 운명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다소 과한 설정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지만 잘못된 선택들이 만나 더 큰 비극을 만들어냅니다.

녹슨 도르래로 물을 푸는 것처럼 끼릭끼릭, 삐걱삐걱 관람차는 회전했다.

 

가족은 서로가 그렇게 안타깝고 슬프게 녹슨 도르래의 삐걱거림처럼 계속 소리를 내었습니다.

 

선택의 책임이 꼭 선택자의 문제로만 끝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아프고 슬프게 보여 줍니다.

잘못된 선택들로 인하여 일어난 사건들은 아픈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히로토에게 애잔한 느낌이 듭니다.

녹슨 도르래를 돌리는 곰 이미지
녹슨 도르래를 힘겹게 돌리는 곰

모성애라는 이름의 가면을 쓴 무책임한 자가당착

"엄마가 아들을 지키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죄를 인정하지 않고 정당화하려는 삐뚤어진 이기주의 모성은 자식의 미래나 회복이 아닌 죄를 은폐하고 왜곡된 방식으로 보듬는 방식으로 결국 자식을 더 깊은 파국으로 몰아넣습니다. 이때의 모성애는 파괴적 소유이며 비윤리적 선택을 감싸는 자기기만일 뿐입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범죄가 정당화되고, 외부의 개입이 곧 해악으로 간주되는 폐쇄성을 드러내는 모습과 모성애라는 가면 뒤에 숨은 무책임한 권력 행위를 신랄하게 보여 줍니다.

탐정 일이란 깨끗한 일이 아니다. 상대가 감추고 싶은 것, 약점을 밝혀내 의뢰인에게 보고하는 것이 일이다. 의뢰인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것은 불이익을 입는 사람이 나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별다를 것 없이 시작된 이야기인데, 어느새 하무라 아키라를 따라 걷다 보면 뜻밖에도 커다란 사건의 한복판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무라가 뛰어난 추리력을 발휘하거나, 극적인 상황이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녀는 세상과 조금 비켜선 시선으로 사람들을 관찰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용히 사건의 핵심에 다가섭니다.

그러나 이 담담한 흐름 속에서 독자는 이상하리만큼 빠르게 몰입하게 되고, 결국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하무라의 발걸음을 놓지 못하게 됩니다.

 

하무라 시리즈의 표지는 하나같이 귀엽고 독특합니다. 특히 등장하는 백곰 캐릭터는 탐정물의 분위기와는 다소 동떨어져 보이지만, 그 속에 어떤 숨은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나는 개인적으로 이 백곰을 하무라 자신의 또 다른 모습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어딘가 둔해 보이고, 세상 물정에 어긋난 듯 굼뜨지만, 사실은 묵묵하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앞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

그래서일까. 백곰이 나올 때마다 괜히 하무라가 '미련 곰탱이'처럼 느껴져서,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게 됩니다.

 

▼ 와카타케 나나미의 하무라 시리즈 리뷰보기

와카타케 나나미 <불온한 잠>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 4 - 하무라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조용한 무더위>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 2 - 하무라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이별의 수법>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 1 - 하무라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나쁜 토끼> 불운한 탐정이 추적하는, 슬프고 나쁜 진실

 

녹슨 도르래는 이런 독자에게 추천합니다.

  • 조용한 미스터리, 일상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분
  • 캐릭터 중심의 서사를 좋아하시는 분
  • 잔잔하고 느린 몰임감을 즐기는 분
  • 하무라 시리즈를 좋아하시는 분
  • 여성작가, 여성 주인공의 시선으로 탐색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

녹슬었다는 것은 시간과 고통의 상처를 뜻합니다.

도르래는 무언가를 끌어 올리는 장치로, 하무라에게는 그것이 진실과 책임입니다.

겉보기에는 녹슬어 낡고 쓸모없어 보일지라도 그 안에 무엇인가를 끌어올릴 수 있는 가능성을 간직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것이 희망이든, 슬픔이든, 사랑이든, 진실이든 삶을 지속하게 해주는 마중물이 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