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나무 시리즈의 주요 소재는 녹나무다.
우리나라는 제주도에만 자생하는데, 녹나무의 향내가 귀신을 쫓는 신통력을 가져서 조상님의 혼백마저 내쫓는다고 하여 집 주위에는 심지 않는 나무라고 한다.
가고시마의 가모신사 녹나무는 수령 1천5백 년으로 추정되고 나무 기둥 안에 넓이 약 13㎡의 빈 공간이 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 영화 <이웃집 토토로>에서 소원을 비는 큰 나무, 토토로가 선물해준 씨앗에서 밤새 쑥쑥 자라는 인상적인 장면의 바로 그 나무다.
- 옮긴이의 말
히가시노 게이고 녹나무 시리즈
제목 | 일본 출간년도 |
녹나무의 파수꾼 | 2020 |
녹나무의 여신 | 2024 |
![]() |
![]() |
가고시마에 있는 수령 1,500년이 넘는 녹나무 | 이웃집토토로에 나오는 소원을 들어주는 녹나무 |
일반적인 추리소설이 아니었다.
<기념> <염원> <수념> 등 초자연적인 현상을 이야기하지만 그런 것에 비하면 소설은 잔잔하면서 편안하고 풋풋하고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시리즈의 독서 순서는 선택권이 있다면 출간 순서를 고집한다.
녹나무의 여신에서 친절하게 이전의 녹나무 파수꾼 내용을 설명해 주기는 하지만 등장인물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녹나무의 파수꾼을 먼저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녹나무의 파수꾼
![]() |
![]() |
2020년 양윤옥 옮김 소미미디어 출판 | 2020년 양윤옥 옮김 소미미디어 출판 |
'나오이 레이토'는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할머니와 살아왔다.
변변한 기술 없이 주위의 무시를 받으며 근근이 살아가던 레이토는 자신이 다니던 회사에서 부당하게 퇴직금도 받지 못 한 체 해고를 당하자 부당한 일에는 절도를 해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 절도를 계획하지만 결국 주거 침입, 기물 파손, 절도 미수로 경찰서에 붙잡힌다.
그런 그에게 어머니의 이복 언니 치후네의 변호사가 찾아오고, 녹나무의 파수꾼이 되는 조건으로 도움을 받아 풀려나게 된다.
야나기사와 가는 부지 안에 자리 잡은 월향신사의 녹나무를 돌보는 일을 꾸준히 해왔고,
치후네는 그런 야나기사와 가의 당주로 녹나무 파수꾼으로 서의 사명을 우선으로 하는 사람이었다.
녹나무의 파수꾼은 녹나무 기념의 모든 준비와 절차를 관장하는 사람을 말한다.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다음부터는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분명한 자기 의사에 따라 답을 내는 게 좋아. 동전던지기 따위에 기대지 말고."
치후네는 레이코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도 같이 알려주고 있었다.
“왜 기념(祈念)이라고 하지? 소원을 비는 거라면 보통은 기원(祈願)이라고 하잖아.”
"기죽을 필요 없어요. 나는 이런 자리에 서는 게 당연한 사람이다, 라고 당당하게 나가면 됩니다. 다만 허세를 부려서는 안 돼요. 인간이란 허세를 부리는 사람보다 그런 게 없는 사람을 더 두려워하는 법이니까요. 어디까지나 자연스럽게, 알겠어요?"
레이코는 이렇게 자신에게 당당하라고 하는 말을 들어본 것이 처음이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했습니다. 오늘까지 그랬으니까 분명 내일부터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잃을 게 하나도 없기 때문에 두렵지도 않습니다.
"자식은 부모가 모르는 사이에 어른이 된다더니만."
"그건 부모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 아닐까요?
좋은 모범 사례가 가까이에 있지 않고서는 그렇게 안 될 것 같은데요."
희망없이 살아가던 불우한 환경의 '레이토'가 녹나무의 파수꾼이 되고 나서 갑자기 바르고 똑똑한 청년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녹나무의 여신
![]() |
![]() |
2024년 양윤옥 옮김 소미미디어 출판 | 2024년 양윤옥 옮김 소미미디어 출판 |
「녹나무의 여신」은 「녹나무의 파수꾼」이후 4년 만에 나온 후속작이다.
「녹나무의 파수꾼」에 비하면 「녹나무의 여신」은 추리적 요소가 좀 더 가미되었다.
「녹나무의 파수꾼」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일반적인 추리소설을 생각하며 읽었기 때문에 처음에 다소 거부감도 있었지만 읽으면서 잔잔히 전해지는 편안함과「나미야 잡화점」이 생각나면서 어느새 책의 중반을 넘길 정도로 빠져들어 읽었다면,「녹나무의 여신」은 그런 면에서 소설의 느낌을 알고 찾아 읽었기 때문에 거부감도 없었고, 나에게는 이번 작품을 읽을 때가 더 편하고 좋았다.
녹나무 파수꾼으로 일하는 레이토에게 여고생 하야카와 유키나와 동생들이 자기들이 직접 만든 시집을 진열해서 판매해 달라고 부탁한다.
헤이, 녹나무
멀고 먼 곳에서 너를 보러 왔어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사막을 걸어 너를 만나러 왔어
그랬더니 뭐야, 너는 아주 거만하게 서 있구나
...
하나의 이야기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연결되고 또 다른 하나가 되었다.
잠들면 그때까지의 기억이 사라지는 불치병을 앓고 있는 모토야의 애틋한 일기
‘내일의 나에게’
과거의 나는 재미없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정말 그럴까. 하지만 오늘은 더 이상 시간이 없다. 오늘의 나는 여기까지. 내일 일은 내의 나에게 맡긴다. 잘 자.
미래의 일은 미래의 나에게 맡길 수밖에 없으니까.
"차례차례 잊어 가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닌지도 모르겠군요. 어차피 별로 대단한 기억도 아니니까요."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찹쌀떡을 먹었던 날의 나도 행복했겠지만, 아마 오늘의 내가 더 행복한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그렇게 달렸는데도 힘이 하나도 안 들었다.
슬프지만 따뜻해서 더 슬프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런 이야기였다.
대단하다거나 최고를 외치듯 내세울 소설을 읽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그저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책이었다.
일반적이고 뻔한 주제로 예측 가능한 결과들이 일어났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방법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공허하고 깊은 여운이 남았다.
작품 속의 인물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다 어느 순간 나를 돌아보고 지금의 내가 행복하거나 행복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을 가지게 했다.
지루하지 않고 편하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마음에 뭔가를 느끼게 하는 작품을 찾는다면 녹나무 시리즈를 적극 추천한다.